<불교인물사(27)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3) - 고려 불교의 문제점(3)>
(3) 무신 정권의 등장과 불교계의 위기
1) 무신 정권의 등장과 교종 불교의 탄압
무신 정변에 의해 왕과 문신들이
살육을 당하고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었습니다.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귀족 불교 세력은
무신 정권에 대해 반발했고 항거하여 일어났습니다.
1174년 화엄종의 귀법사 승려 100여명이
무신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궁궐로 들어가 궐기하였으나
이의방의 군사에게 수십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뒷따라 중광사, 홍호사, 귀법사, 흥화사 등
여러 절의 승려 2천명의 승려가 봉기하여
궁궐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다시 이의방 군사들에게 1백여명이 참살당했습니다.
이의방은 이들 승려들이 머물던 6곳의 절을 불태워버렸는데,
이들은 왕권을 보호하려는 교종 계열의 승려들이었습니다.
한편, 1217년에는 권력자 최충헌을 타도하기 위해
흥왕사, 왕륜사 등의 절에서 거란군을 방비하도록 동원된 승려들이
종군 도중 발길을 돌려 최충헌의 집을 급습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격을 당해
800여명의 승려가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무신 정권은 왕실과 문벌 귀족들이
후원하던 교종 세력인 화엄종과 법상종을 억압하였습니다.
기존 교종 불교의 토지, 재물 등 기득권도 박탈하고,
산 속에서 지내던 선종을 후원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편, 12세기 중엽부터 민중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무신 정권의 등장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으로
농민과 천민을 비롯한 하층 민중들이 일으킨 민란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였습니다.
2) 민란과 불교계의 동향
대토지를 소유하며 기득권 집단이었던 불교 사찰들은
이들 민중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예를 들어,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 망소이의 난 때
덕산에 있는 가야사를 노략질하고
직산 홍경원을 불사르고 많은 승려들을 살해했습니다.
1177년 평안도 지방에 민란이 발생하였을 때는
민중들이 묘향산의 여러 절을 털고,
영주 영화사를 공격하여 그 안에 있던 승려들을 봉기군으로 징발하기도 했습니다.
1181년에는 농민봉기군이 왕실의 원찰인
한양 인근의 봉은사를 습격하여 태조의 초상화와 은병을 빼앗았습니다.
이와 같이 무신들의 쿠테타를 전후한 고려 사회의 혼란과
불교의 위기 상황에서 지눌(1158~1210) 스님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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