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기행(21) - 퇴계 태실>
1. 성임문
'퇴계 태실'은 퇴계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퇴계 선생을 잉태할 때 어머님이 공자 선생과
그 제자들이 집안 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인이 들어온 문이라고 해서 '성임문(聖臨門)'입니다.
퇴계 선생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남인의 태두로
퇴계 선생의 가르침과 덕행은 영남 선비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영남 남인 선비들이 공경하는
퇴계 선생이 태어난 특별한 곳입니다.
영남 남인 선배들에게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와 같은 가치를 갖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명당
퇴계 태실은 생각보다 단촐했습니다.
그러나, 나지막한 산이 뒤에 병풍처럼 있어
평안한 느낌을 주는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송당>이라는 큰 현판이 있는 정자가 있고,
안채에는 퇴계 선생이 태어난 태실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안동 가서 본 것이지만,
요즘 안동 양반 종택들은 숙박이나 카페를 운영하며
고택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방한 곳이 많았습니다.
퇴계 종택 안채도 숙박을 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룻밤 퇴계 태실에서 보내고 싶었습니다.
3. 노송정 이계양 공
퇴계 태실은 퇴계 선생의 할아버지인
이계양 공이 단종 2년에 건립한 가옥입니다.
풍수를 잘 보는 어느 스님이 이곳을 점지해 주면서
"여기에 집을 짓고 살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퇴계 선생이 태어났습니다.
이계양 공은 세조의 단종 찬탈을 보고 벼슬을 그만두고
자신의 호를 <노송정>이라고 짓고 수양을 했습니다.
추위가 와도 늘 푸르름을 간직하는 소나무는
선비의 덕을 상징합니다.
자연 속에서 긴 세월의 풍상과 곤란에도 굴하지 않고
늘 푸르른 노송처럼 살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올곧은 퇴계 선생의 노송정 할아버지였던 것입니다.
4. 옥루무괴
한석봉이 쓴 <노송정> 현판 아래에는
<옥루무괴>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집이 낡아 비가 새어도
하늘을 우르러 부끄러움이 없다' 는 뜻입니다.
<시경>에 나오는 구절이라는데,
가난 속에서도 올곧게 살아가는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퇴계 선생은 태어나자말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숙부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할아버지 이계양 공의 <옥루무괴>의 삶의 실천이
어린 퇴계 선생이 가난 속에서도 학문을 좋아하고
올곧게 살아가려는 마음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5. 퇴계 태실
안채에는 <퇴계선생태실>이 있습니다.
500여년전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퇴계 선생은
할아버지와 형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홀로 된 어머니가 과부 자식 버릇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어린 퇴계에게 학문에 힘쓰고 예절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어머니와 주변 분들의 삶을 보면서
퇴계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과 수양에 진지했다고 합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고 하고,
첫 부인과 사별하고 자식과 형도 잃는 곤란도 많았다고 합니다.
과거 시험만 치면 1등했던 율곡과는 달리
2번인가 과거에 낙방하고 30대 중반에 문과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관직 생활을 했지만 성리학의 맛을 본 50대 이후에는
고향으로 낙향하여 마음을 수양하고 후학을 기르는
선비의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호가 '고향 계곡으로 은퇴해서 물러나고 싶다'는 뜻의
'퇴계(退溪)'입니다.
말년에 도산서당에서 자신이 바라던 삶을 살았으니
퇴계 선생은 잘 산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작은 종택이지만,
퇴계 선생의 삶의 향기가 남아 있는
퇴계 태실에서 퇴계 선생의 향취를 느껴보니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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