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24) - 원효 대사의 미타증성게

아미타온 2025. 1. 27. 11:48

<나무아미타불(24) -  원효 대사의 미타증성게>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아미타 부처님>

 

1. 정토 신앙과 원효 대사

 

원효 대사는 천촌만락을 누비면서

민중들에게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원효 대사가 정토 신앙을 밝힌 저술 중에

오늘날 남아 있는 저술은 세개가 있습니다.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그리고 <미타증성게>입니다.

 

<유심안락도> 또한 원효 대사의 저술로 알려져 있지만,

<무량수경종요>를 기반으로 후대의 학인이 찬술한

논서라는 것이 학계에서 바라보는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무량수경종요>와 <아미타경소>는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 대한 원효의 견해를 밝힌 긴 논서입니다.

 

반면 <미타증성게>는 짧은 시로 되어 있습니다.

 

'미타증성게(彌陀證性偈)'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본래 성품을 

나타내심을 찬탄하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강진 백련사>

 

2. 강진 백련사와 원묘국사 요세 스님

 

겨울에 피는 붉은 동백으로 유명한 강진 백련사가 있습니다.

 

백련사는 동백 꽃밭으로 유명한 도량이지만,

불교사적으로는 원묘 국사 요세 스님의 염불 모임인

백련 결사가 이루어진 도량으로 유명합니다.

 

원묘국사 요세 스님은 천태종 승려였습니다.

 

그러나, 극락 왕생을 발원하며

강진 지역의 승려, 호족, 일반 백성 등 

승속을 가리지 않고  수백명과 함께 

염불 결사 모임인 백련 결사를 결성하여

다함께 열심히 염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원묘국사 요세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원묘국사비가 백련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 비석에 의하면 요세 스님은

원효 대사의 '미타증성게'를 깊이 사모했다고 합니다.

 

83세로 입적에 들기 전, 

요세 스님은 앉으나 누우나 끊이지 않고 미타증성게를

독송하고 생각하며 6일동안 계속하다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찬 겨울에 핀 붉은 동백처럼,

요세 스님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미타증성게'를 붙잡고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이 생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요세 스님이 입적에 들기 전에

그렇게 소중히 여기며 독송했던

<미타증성게>는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일까요?

 

<강진 백련사 원묘국사비>

 

 

3. 미타 증성게

 

<미타증성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왕과거구원세(乃往過去久遠世)   

    아주 오래고 먼 옛날 과거세에 

유일고사호법장(有一高士號法藏)  

   법장이라 불리는 고결한 인물이 있었네.

초발무상보리심(初發無上菩堤心)  

   위없는 보리심을 처음 발원했을 때

출속입도파제상(出俗入道破諸相)   

  곧바로 세속을 벗어나 모든 상을 타파한 도에 들었네. 

 

수지일심무이상(雖知一心無二相)   

    비록 두 개의 상이 없는 일심을 알았지만 

이민군생몰고해(而愍群生沒苦海)   

   중생들이 고해에 빠져 있는 것을 가엾이 여겨

기육팔대초서원(起六八大超誓願)   

   크고도 탁월한 48대원을 일으키고

구수정업이제예(具修淨業離諸穢)   

  정업을 갖추어 닦아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더러움을 떠나게 하였네

 

법계신상난사의(法界身相難思議)    

  저 부처님의 법계신(법계의 몸)과 그 모습은 말하기 어렵지만

적연무위무불위(寂然無爲無不爲)    

  적연히 하는 일 없어도 하지 않음 또한 없도다.

지이순피불신심(至以順彼佛身心)   

  저 부처님의 몸과 마음(본원)을 따르기만 해도

필불획이생피국(必不獲已生彼國)  

  반드시 그 나라(극락 세계)에 왕생해 있으리라.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삼존불>

 

4. 법장 보살

 

미타증성게는 7언4구로 된 세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게송은 아미타 부처님의 전생인

법장 보살의 보리심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처음에는 세속의 왕으로서 거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세자재왕 부처님을 친견하고

도를 위해 신명을 바치고자 하는 위없는 구도심(보리심)을 일으켜

출가하여 세속적 삶을 버리고 사문 법장이 되셨습니다.

 

즉, 거사에서 사문으로의 삶의 전환의 핵심은

'무상보리심'에 있다고 찬탄합니다.

 

위없는 보리심 속에서 사문 법장은

세속적 욕망의 끈을 완전히 잘라버리고 출세간하여

생과 사의 대립, 나와 남의 대립의 모든 상을 타파해 버린

구도자로 우뚝 섰다는 것입니다.

 

즉, 아미타 부처님의 출발은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법(진리)를 위해

신명을 바치는 위없는 보리심에 있다는 것을

<미타증성게>에서 원효 대사는 깊이 찬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효 대사는  극락 왕생의

정인(正因, 근본 원인)을 보리심으로,

조인(助因, 보조 원인)을 염불로서 본 이유를

첫번째 게송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강진 백련사의 붉은 동백꽃>

 

5. 보살심

 

두번째 게송은 아미타 부처님의 보살심을 깊이 찬탄하고 있습니다. 

 

법장 보살은 보리심을 내어 세속에서 벗어나 모든 상을 타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생과 사의 대립, 나와 남의 대립,

더럽고 깨끗함의 대립에서 벗어난

일심의 큰 바다의 마음 세계를 아셨지만,

중생들을 향한 대자비의 마음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법장 보살은 모든 수행에 정진하여 정토를 보았을 때,

일체 중생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고해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부처님의 세상인 정토로 이끌고자 하는 대비의 마음과 간절한 서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보리심을 발한 법장의 사유는 중생 제도의 대자비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미타증성게>의 2번째 게송은

바로 법장보살의 보살심과 보살행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대자비는 큰 사랑입니다.

중생에 대한 큰 사랑에서 크고도 탁월한 서원인 48대원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뛰어넘는 큰 원을 세우리라.

반드시 위없는 도에 이르리라.

이 서원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결코 정각을 이루지 않으리라"는

중생 구제의 서원에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을 내시고 바라밀행의 정업을 닦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법장 보살은 아미타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은 보신(報身)의 부처님입니다.

 

큰 서원을 통해 보살행의 성취의 과보로서의 몸인

보신의 부처님, 아미타불이 되신 것입니다. 

 

중생들의 원함을 이루어주고

중생들을 고해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중생들을 더러움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신

고마운 부처님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덕산에서 바라본 강진 백련사>

   

6.  법성 법신과 방편 법신

 

세번째 게송은 아미타 부처님의 법신(法身)과

보신(報身)의 두 가지 덕성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신은 법성 법신과 방편 법신의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본체는 진여이며 적멸이며

상(相, 모양)에서 벗어난 법성(法性) 법신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을 구제하시기 위한 자비심에서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내시어 중생들을 구제하시는

방편 법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적연하여 하는 일이 없는듯 하지만,

하지 않음도 없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법성 법신과 방편 법신,

즉 법계신의 체와 상과 용의 묘함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원효 대사는 깨달음의 세계에는

움직임도 고요함도 없고, 차안도 피안도 없으며,

예토와 정토가 본래 일심이며,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깨달음의 세계, 일심의 세계에 머무십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오탁악세의 중생들을 제도하고,

아미타 부처님은 극락 세계에 계시면서 9품 중생들을 왕생하도록 이끄십니다. 

 

따라서, 아미타 부처님의 체와 상과 용의

묘한 덕성을 자신이 믿고 따른다면

자신은 반드시 극락 왕생할 수 있슴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요세 스님은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를 노래한

원효 대사의 <미타증성게>를 죽기 전에

골수에 사무칠 정도로 각인하며 아미타 부처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오롯이 아미타 부처님에 집중했고,

오롯이 아미타 부처님을 찬탄하고 그리워했습니다.

 

이러한 원묘국사 요세 스님이 맞이한 죽음은 어땠을까요?

 

저 비석의 연꽃처럼 아름다운 극락행 연화좌가 

요세 스님 앞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