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32) 성취를 이룬 앗따닷타 비구 이야기
< 법구경(132) 성취를 이룬 앗따닷타 비구 이야기 >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앗따닷타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166번을 설법하셨다.
부처님께서 앞으로 석 달 안으로
열반을 실현하시겠다고 대중에게 선언하시자
많은 수행의 결과를 얻은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여 어쩔 줄 몰랐다.
그들은 부처님 곁에 가까이 있어야만 좋으리라 생각하여
잠시도 부처님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앗따닷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비구만은
부처님 곁에 얼씬도 하지 않은 채
구석진 자기 방에 남아서 수행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아직 세상에 머물러 계실 때
아라한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비구들은 그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부처님에게 데리고 가서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비구는 부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자기만을 아낄 뿐입니다."
그러자 앗따닷타 비구는
자신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물러 계실 때
아라한 과를 성취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여
열심히 좌선 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진실로 여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마땅히 저 앗따닷타 비구처럼 행동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가 여래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꽃이나 향수를 바치고 향을 사르면서
여래의 곁에 하루 종일 앉아서
여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옳지 않으니라.
너희는 여래가 너희에게 가르친
불법의 진리와 계율을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세간을 뛰어 넘는 도(道)를 성취해야 하나니,
그때에 이르러서야 참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예배하였다 할 수 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크든 작든 간에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한답시고
자기의 참다운 이익을 소홀히 말라.
자기의 참다운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으면
최선의 노력으로써 그것을 성취하라.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앗따닷타 비구는 아라한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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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칼리 비구 이야기
유명한 <박칼리 비구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칼리 비구는 부지런히 수행했지만,
나이가 듷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박칼리 비구는 자신은
비록 수행의 과위는 얻지 못했지만,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부처님을 뵙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가까이 있던 도반이 부처님께
그의 뜻을 전하자 부처님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부처님은 병이 들어 죽게 된
박칼리 비구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격한 박칼리 비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소원은 죽기 전에
부처님을 한번만 더 뵙는 것인데,
부처님께서 이렇게 오셔서
직접 저를 위로해 주시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참 착한 사람이고,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깊은 박칼리 비구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박칼리 비구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비구여!
이 허물어질 육신을 보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이냐?
너는 출가할 때 나의 이 육신을 보기 위해 출가한 것이란 말이냐?
너가 좋아하는 이 여래의 몸도 늙고 병들어 허물어질 것이다.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일체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슴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다르마(법)를 보는 자가 곧 나를 보는 자이고,
나를 보는 자는 다르마(법)을 보는 자이다."
그러자, 이 박칼리 비구는
부처님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죽기 전에 수다원 과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앗따닷타 비구 이야기나
박칼리 비구 이야기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비슷합니다.
2. 성취
부처님을 존경하고 좋아하고
옆에 있고자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법화경>을 보면
어린 아이가 놀면서
장난으로 모래를 가지고 탑을 쌓고
나뭇가지로 불상을 그려도
언젠가는 불도를 성취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장난으로라도 탑을 쌓고
불상을 그리는 것이 재미있고
절에 가서 부처님이나 보살님 상호만 바라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작은 공덕이 나중에 불법과 큰 인연이 되어
미래세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부처님이 좋아서 죽기 전에
부처님을 한 번 뵙는 것이 소원이었던
박칼리 비구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수다원 과를 얻게 되는 인연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앗을 뿌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다르마를 보는 자가 나를 본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그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결실을 맺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법구경 게송에서 말하는
"자신의 참다운 이익"이란
바로 이렇게 수행의 결실을 맺는 것,
즉 도의 과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부와 수행을 통해 다르마를 보고,
해탈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참다운 이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으면
최선의 노력으로써 그것을 성취하라."
이 부처님 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부처님이 3개월 내에
열반에 드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이 입멸하기 전에
아라한 과에 도달하겠다는 마음을 낸 앗타닷따 비구!
다르마를 보는 자가
곧 여래는 보는 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죽음 직전에 수다원 과에 이른 박칼리 비구!
두 수행자는 자신의 참다운 이익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안 사람입니다.
자신의 참다운 이익이
다르마를 보고 수행의 결실을
맺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으로 정정진하여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물에 데려다 주는 것은
부처님이나 스승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먹고 안 먹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를 선명하게 알고
수행의 결실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