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31) - 의상대사를 통해본 바른 정토 신앙

아미타온 2025. 3. 17. 05:28

<나무아미타불(31) - 의상대사를 통해본 바른 정토 신앙>

 



1. 의상 대사와 영주 부석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량 중 하나인 부석사.

 

부석사는 9품왕생에 입각하여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무량수전을 향해 올라가는

축대와 계단을 결계 있게 조성해 놓은 멋진 도량입니다.

 

 

부석사를 창건하신 분은

우리나라 화엄종의 초조(初祖)인 의상 대사입니다.

 

의상 대사는 화엄의 가르침을 펼치기 위한 

근본 도량으로 부석사를 창건했습니다.

 

그런데, 부석사의 주법당을 무량수전으로 하고

극락 정토의 아미타 부처님을 본존으로 모셨습니다.

 

 

 

일반적으로 화엄종은 화엄경의

비로자나 부처님을 본존으로 모십니다.

 

무량수전은 남쪽을 향해 있습니다.

그런데, 무량수전 안의 아미타 부처님은

서쪽에 앉아 중생들을 맞이하고 계십니다. 

 

의상 대사는 서방에 계신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으로

평생 서쪽을 향해 앉으셨다고 합니다.

 

의상 대사가 어떤 정토 신앙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석사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아미타경>에 대한 주석서를 쓰신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토 신앙에도 공을 쏟으신 것은 분명합니다. 

 

 

 

2. 백화도량발원문

 

다행히 의상 대사의 신앙 세계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인 <백화도량발원문>이 남아 있다.

 

의상 대사는 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낙산사 동해 바다에 몸을 던진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 일화만으로 우리 한국 불교사에서

'신앙의 아버지'라고 불려도 좋은 분입니다.

 

<백화도량 발원문>은 의상 대사가

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하고 쓴 발원문입니다.

 

'백화 도량'은 관세음 보살님이 주처하신다는

'보타락가 도량'을 의미합니다.

 

극락 왕생처럼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

백화도량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쓴 발원문입니다.

 

 

“머리 숙여 귀의하옵고

저희 스승 관세음보살님의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우러르며

제자의 성정본각(性靜本覺)을 관찰하옵니다.

 

한가지로 근본이 같으므로 청정하며 밝아서

시방세계에 두루하오나 확연히 텅 비었으니

중생이라 부처라 할 모습이 따로 없고,

귀의의 주체니 대상이니 부를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미 밝고 깨끗하지만 비춤에 어긋남이 없으니,

삼라만상 가운데 몰록 나타나십니다.

 

저희 스승의 수월장엄(水月莊嚴) 및 다함없는 상호와

제자의 헛된 몸과 유루(有漏)의 형체 사이에는

의보와 정보는 정토와 예토, 즐거움과 괴로움이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 같은 대원경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거울 속 제자의 몸으로

제자의 거울 속에 계신 관세음 보살님께 귀명정례하여

진실한 발원의 말씀을 사뢰오니 가피를 바랍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제자는 세세셍생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며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부처님을 정대함과 같이

제자 역시 관세음보살님을 정대하여

십원육향(十願六向), 천수천안과 대자대비는

관세음보살님과 같아지며

몸을 버리는 이 세상과 새 몸 얻는 저 세상에서

머무는 곳곳마다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이

언제나 설법하심을 듣고 교화를 돕겠습니다.

 

널리 온 누리 모든 이웃들에게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게 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염송케 하여

다함께 원통삼매(圓通三昧)에 들게 하소서.

 

또한 관세음보살님께 원하옵나니

이 목숨 다할 때에는 밝은 빛을 놓아 맞아 주시오며

모든 두려움을 떠나서 몸과 마음이 쾌활하고

찰나에 백화도량에 왕생하여

여러 보살과 정법을 함께 듣고 진리의 흐름에 들어

생각생각 더욱 밝아져 부처님의 무생법인을 발하게 하소서.

 

모든 원을 발하며

관세음보살님께 귀명정례하옵니다." (백화도량 발원문)

 

 

3. 스승과 제자

 

의상 대사의 <백화도량발원문>을 읽다 보면

'관세음 보살님'을 '아미타 부처님'으로 바꾸고,

'백화도량'을 '극락정토'로 바꾸고,

'대비주'를 '나무아미타불'로 바꾸면

참 좋은 '극락정토 발원문'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석사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의상 대사의 정토 신앙의 세계는

<백화도량 발원문>을 <극락정토 발원문>으로

바꿔 읽으면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화도량 발원문>에 나타난 의상 대사의 신앙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관세음보살님을 '스승'으로, 자신을 '제자'라고 부르는 대목입니다.

 

발원문은 불보살님을 앞에 모시고

불보살님께 자신의 마음가짐을 사뢰고서, 

그 실천을 약속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불보살님과 나의 관계 설정이 중요합니다.

 

보통 발원문에서 불보살님은 '구제자'가 되고,

나는 '중생'이 됩니다.

 

<관음경>에도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는

구제자가 바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그런데, 의상 대사는 놀랍게도

관세음 보살님을 '스승'이란 호칭으로,

자신을 '제자'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을 '구제자'로서 바라보고,

나를 '중생'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신앙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관세음보살님! 도와주소서"가 됩니다.

 

그런데,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되면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돕는 쌍방적인 관계가 됩니다.

 

의상 대사의 발원문은

관세음보살님과 자신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로 했기 때문에

"관세음 보살님! 도와 주소서!"가 아니라,

"관세음보살님! 가르침을 잘 실천하겠습니다"를 넘어서

"관세음보살님! 잘 도와드리겠습니다."로 확장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몸을 버리는 이 세상과

새 몸 얻는 저 세상에서도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이 

언제나 설법하심을 듣고 교화를 돕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4. 전심전력

 

정토 신앙은 어떻게 해야 할까가?

 

우리는 정토 신앙도 일방적으로

아미타 부처님의 구원을 받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구제자로,

나를 중생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의

제18대원에 의지하여 무조건 쉽고 편하게

극락 가도록 도와달라고만 신앙합니다.

 

그렇지만, 의상 대사와 같은 마인드를 갖게 되어

발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미타 부처님이

48대원의 대자대비로 중생들을 구제하듯이

저도 또한 그 하나의 원이라도 나의 원으로 삼아

아미타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배우고 닦아서

몸을 버리는 이 사바 세계와 새 몸을 얻는 극락 정토에서

머무는 곳곳마다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이

언제나 설법하심을 듣고 교화를 도울 것입니다.

 

널리 온 누리 모든 이웃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게 하고

아미타 부처님을 염불하게 하여

다함께 염불삼매에 들게 하소서.

 

또한 아미타 부처님께 원하옵나니

이 목숨 다할 때에는 밝은 빛을 놓아 맞아 주시오며

모든 두려움을 떠나서 몸과 마음이 쾌활하고

찰나에 극락 정토에 왕생하여

여러 보살과 정법을 함께 듣고 진리의 흐름에 들어

생각생각 더욱 밝아져 부처님의 무생법인을 발하게 하소서."

 

가 됩니다.

 

 

불교 수행은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단계를 향해 향상해 나갈수 있습니다.

 

의상 대사의 마인드는 새로운 눈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의상 대사는 신앙 체험을 통해

관세음보살을 '구제자',

나를 '중생'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스승'으로,

나를 '제자'라는 바라보는 인식의 전변이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눈뜸입니다.

 

그래서, 스승이신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가르침을 실천하고,

서원의 길을 펼치는 것을 도와주는 삶에

전심전력을 다하겠다고 서원하셨습니다.

 

의상 대사는 화엄10찰을 세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펼쳐 나갔고,

3천이나 되는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었고,

이 땅에 관음 신앙이 뿌리 내리도록 끝까지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5. 바른 신앙

 

우리도 의상 대사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상 대사 발원문에

관세음보살의 수월장엄의 보신의 몸과

자신의 몸의 유루의 형체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상 대사의 삶을 보면 화신(化身)의 몸이지만,

중생들을 유익으로 이끄는 보신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법을 펼치고 도와주는 보신의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의 자각을 통해 새로운 입명(立命)의 삶을 펼쳐가야 합니다.

 

<백화도량 발원문>은 나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의상 대사의 신앙이 얼마나 어른 같이 성숙한 신앙이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신앙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제18원에 의지하여 극락가게 도와 달라고 

비는 것이 정토 신앙의 모든 것이 아니라,

내가 아미타 부처님의 서원에 상응하여 

그 서원의 길을 함께 걷는 전심전력의 길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바른 길에서 물러서지 않는 곧은 신앙입니다.

곧고 바르고 전심전력하는 신앙의 길을 가야 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