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기행

풍류 기행(38) 합천 해인사

아미타온 2025. 3. 28. 05:02

<풍류 기행(38)  합천 해인사>

 

 

 

1. 가야산

 

가야산 해인사.

 

팔만 대장경이 있는 우리나라 법보 사찰입니다.

 

가야산은 기암 절벽의 멋진 산입니다.

가야산의 주봉은 해발 1400미터가 넘습니다.

 

산 이름도 가야이니,

불법과 인연이 깊은 곳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대가야국이 있던 곳이어서 가야산이라고 했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부다가야에서 따온 이름이든,

다 불교와 관련됩니다.

 

 

 

해인사는 의상 대사의 법손인

이정, 순응 두 스님이 창건한 화엄 십찰중의 하나입니다.

 

해인사의 '해인'은

'바다에 온 만물이 비친다'는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나온 말입니다.

 

의상 대사가 입적한지 100년쯤 뒤에 창건한 절이기에

의상 대사가 직접 관장한 사찰은 아니지만,

그의 제자인 신림 스님에게서 배운 순응 스님이 창건하였기에

의상 대사의 법맥을 이은 화엄사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화엄십찰은 신라시대에 부석사를

비롯한 열 개의 화엄사찰을 지칭합니다.

 

그렇다고 꼭 10개의 사찰은 아니고,

불교에서 10이 완전한 수이기에

의상 대사 사후에 창건된 절까지 다수 포함해서

10을 맞춘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라 불교의 중심지였던 경주를 떠난 지역에

화엄경과 화엄사상을 종지로 한 큰 절을

지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면 될 것입니다.

 

 

2. 성보 박물관

 

해인사 성보 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먼저 성보 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해인사는 팔만 대장경이 있는 법보 종찰이라서

박물관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AI, 인공지능의 시대.

 

AI 로봇에도 불성이 존재할까?

 

AI가 안이비설신의의 6근을 갖고

색성향미촉법의 6경을 대상으로

인간처럼 사유하며 인지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 간다면

인지 능력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중국, 미국의 세계 열강의 무분별한 AI 개발로

앞으로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년 전 국립 중앙 박물관

<대고려전>에서 뵈었던

해인사의 화엄종주 희랑 대사 상입니다.

 

멋집니다.

 

너무 생생해서 모조본인가 했는데,

국보 진본입니다.

 

희랑 대사 가슴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은

해인사에 모기가 많아서 스님들이 살생하고

수행에 방해가 되자 스스로 가슴에 구멍을 뚫어서

모기가 드나들며 피를 빨아먹게 위해서라고 합니다.

 

모기에게까지 자비심을 발한

희랑 대사의 큰 법력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일본 나라 당초제사에 가면

중국 당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와

계율 수계를 해 준 감진 스님 상이 있습니다

 

눈이 멀어 눈을 감고 선정에 잠긴

엄정한 표정의 율승 감진 스님과는 달리

희랑 대사상은 훨씬 밝고 자애로운 얼굴입니다.

 

일본 당초제사 조사당에

감진대사 상을 모셔 놓았는데,

해인사도 희랑 대사상을 박물관이 아닌

절 안 조사당에 모셔 놓으면 훨씬 더 신앙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해인사 영산회상도입니다.

 

법화경 <서품>에서

부처님의 광명과 함께

수많은 대중들이 운집하며 영산회상의

법화경의 웅장한 설법 장면을 연상하게 해서 좋았습니다.

 

 

부처님 8상 성도 그림 중

부처님 탄생의 불화입니다.

 

푸른 신록의 봄날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 부인의 허리에서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5월 초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부처님 오신날이 멀지 않았는데,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의 이미지를

잘 느끼게 해 주는 재미있는 불화였습니다.

 

 

중국 명나라에서 수입해온

옥으로 만든 꽃 장식이라고 합니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시들지 않는 꽃공양을 위해

옥으로 만든 꽃을 부처님께 공양한 것입니다.

 

옥으로 만든 꽃을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3. 홍류동 계곡과 최치원 선생

 

가야산은 고운 최치원 선생과도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최치원 선생은 말년에 세속을 떠나

신선이 되어 사라지셨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가야산입니다.

 

해인사 입구 계곡이 있는 홍류동은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가을에 오면 가을 단풍으로 유명합니다.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 입구 홍류동 계곡에서

지었다는 시가 남아 있습니다.

 

‘첩첩 바위 사이 거세게 달려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늘 들릴세라,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쳤네.’

 

물소리가 산을 둘러쳤다고 하는

감각적인 표현이 매력적입니다.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거세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온 산에 가득하고

나는 시비분별을 다 쉬고 생각이 뚝 끊어진 자리에

고요하게 깨어있는 상태가 그려집니다.

 

 

 

4. 비림과 사리탑

 

절 입구에 비림(碑林)이 있습니다.

 

중국 서안에 가면 유명한 명필들의

'비석의 숲'인 비림이 있습니다.

 

해인사에도 비림이 있어 반갑습니다.

 

 

 

비림 옆에는 해인사에서 주석하셨던 최근의 큰스님들,

성철, 혜암, 자운스님의 사리탑이 조성돼 있습니다.

 

성철 스님 사리탑은

일반적인 사리탑 양식을 깬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조성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5.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까지

길 양옆으로 선 나무가 훤칠하게 멋집니다.

 

해인사는 그 유명세에 비해 자주 가게 되지 않는 절입니다.

 

위치가 애매한 곳인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람 불사가 뭔가 어색하고 멋스럽지 않아

가고 오는 수고로움에 비해 만족감이 크지 않아서입니다.

 

그래도 해인사가 절로써 멋진 그림은

일주문부터 봉황문을 지나 국사당 위 해탈문까지입니다.

 

'아! 내가 법보사찰인 해인사에 왔구나' 하는 기분좋음이 훅하고 다가옵니다.

 

 

 

여기엔 창건 당시부터 서 있던 고사목도 남아 있습니다.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수행하시던 곳을 기념하여 왕실에서 심은 나무였다 합니다.

 

1940년대까지 1200년 간 생명력을 이어왔다 하니

해인사 탄생부터 오늘까지를 다 지켜본 나무였던 것입니다.

 

 

6. 국사단

 

해인사는 문을 지나면 국사단이라고 하는 특이한 전각이 맨 처음 나옵니다.

가야산의 지모신을 모신 곳입니다.

 

 

 

정견모주. 

깨달음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해인사가 법보종찰이 되고,

선승들이 많이 배출된 것도

다 이런 오래고 깊은 인연이 있어서인가 봅니다.

 

이 여신에게 두 아들이 있어,

 한 아들은 대가야를 세우고,

다른 아들은 금관가야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견모주여신은 바로 김수로왕의 어머니이기도 한 것입니다.

 

 

7. 구광루

 

해탈문입니다.

 

해탈문을 지나면 구광루가 나오고,

이제 본격적으로 도량이 펼쳐집니다.

 

 

 

해인사는 화엄십찰, 법보종찰이라는 위상,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곳이라는 성보도량으로서의 가치,

최근세에 고승들을 배출한 수행도량이라는 사격에 비해

도량 자체는 최근에 조성된 전각이 많아서 고풍스런 맛은 없습니다.

 

최근에 조성된 구광루 1층은 카페로서 

대중들에게 개방되어 차분히 커피 한잔 하면 좋습니다.

 

 

 8. 대적광전

 

해인사의 중심인 대적광전입니다.

 

고색창연한 석탑과 석등이 있어

통일 신라시대 화엄십찰의 위용을 말해줍니다.

 

 

 

해인사는 기운이 세고 강한 곳이라고 합니다.

눈 푸른 납자라고 할 때의 서슬퍼런 느낌이 도는 곳입니다.

 

 

대적광전은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문수 보살과 보현 보살 두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의 주불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입니다.

 

상호가 부드러우면서도 엄정한 느낌이 듭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렸습니다.

 

 

9. 비로전

 

대적광전 옆의 비로전에 들렀습니다.

 

보물인 목조 비로자나불상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비로전은 낙성식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인사에 왔다가 이 목조 불상을 보고,

두 분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전각을 마련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더랬습니다.

 

화재가 나면 불상이 자동으로 지하로 내려가 화마를 피할 수 있게

최첨단으로 설계된 전각으로 당시에 화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 불상입니다.

 

두 분 상호가 닮았으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아주 우아하게 잘 생기셨습니다.

 

 

10. 장경판전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조선시대 건물인 장경판전입니다.

 

해인사는 유독 화재가 빈번한 절중 하나인데,

이 장경판전은 한번도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아래의 대적광전이 활활 탈때도

그 불씨가 위에 있는 장경판전으로는 날아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목판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통풍과 습기, 해충 피해를 막는 기능을

건물이 갖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특이합니다.

 

 

 

아랫창보다 윗창이 큰건

이렇게 해야 볕과 통풍 기능이 월등해지기 때문이랍니다.

 

근데 반대편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큽니다.

 

습도와 일조량과 공기 순환의 물리법칙을

설계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지은 것이 아니라

해발고도, 일조량, 풍량등을 모두 고려해서 두 동의 건물을 지은 것으로

창 뿐만 아니라 건물과 건물의 간격까지 계산해서 건축했다는 것입니다.

 

이 장경판전과 안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을

보기 위해 관심있는 외국인들이 오는 것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일본인들과 서양인들이 꽤 있었습니다.

 

 

 

해인사가 화엄십찰중 하나라는건 모르는 불자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인사에 대장경판이 있다는걸 모르는 불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해인사 하면 팔만대장경이고, 팔만대장경 하면 해인사입니다.

 

해인사에서 우리 불교의 국보 중의 국보인

장경판전을 보는 즐거움을 기대했고 기대만큼 만족스러웠습니다.

 

저는 대여섯 번쯤 장경판전을 본 것 같은데,

볼수록 좀 더 가까워지는것 같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이 경판을 만들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전보다 조금 더 느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을 본 것만으로

해인사를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