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38) - 왕생론주와 타력도

아미타온 2025. 6. 18. 05:26

<나무아미타불(38) - 왕생론주와 타력도>

 

 

 

1. 담란 스님과 왕생론주

 

용수 보살을 깊이 사랑하고 공경했던 정토 조사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담란 스님입니다.

 

중국 북방 오대산 근방에서 태어난 담란은

어릴 때부터 용수 보살의 논서를 공부했습니다.

 

용수 보살의 <중론>, <십이문론>, <대지도론>과

용수 보살의 제자인 제바의 <백론>까지 깊이 연구해서

중국 '사론종'의 대가로 불렸던 분이 바로 담란 스님이었습니다.

 

용수 보살의 중관 불교를 더욱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오래 살고 싶어 했고,

병에 걸려 도교의 불로 장생을 배우다가 정토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담란이 쓴 유명한 정토 논서가 <왕생론주>입니다.

<왕생론주>는 세친 보살의 <왕생론>에 대한 논서입니다.

 

담란은 <왕생론주>에서 

'왕생론의 근본 뜻(본의)'를 밝히는 서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용수보살께서

<십주비바사론>에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아비발치(불퇴전지)를 구하는데 2가지 길이 있다"고 하셨다.

 

첫째는 행하기 어려운 난행도이고,

둘째는 행하기 쉬운 이행도이다.

 

행하기 어려운 난행도는 5탁의 악한 세상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기에

아비발치(불퇴전지)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어려운 길에는 많은 장애가 있는데,

5가지를 들어 그 뜻을 나타낼 수 있다.

(중략)

 

행하기 쉬운 길이란 부처님을 믿는 인연으로써

청정한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곧 저 청정한 국토(정토)에 태어날 수 있슴을 말한다.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대승의 정정취에 들어간다.

비유하면 물 위에서 배를 타면 즐거움이 있는 것과 같다.

 

<왕생론>은 한마디로 대승의 극치이며,

뒤로 물러나지 않고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것이다.

 

담란은 <왕생론>의 해석을 용수 보살의

이행도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시작하고 있습니다.

 

<왕생론>의 근본 뜻은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마치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것처럼

 용수 보살의 이행도에 입각해 불퇴전지에 이르는 

대승의 극치를 나타냄이라고 보았습니다.

 

담란은 용수 보살의 '이행도'에

'부처님의 원력'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더욱 심화시켜

'타력도(他力道)'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즉, '타력'이라는 개념을 제일 먼저 사용한 정토 조사가

바로 담란 스님입니다.

 

 

2. 타력

 

담란 스님이 이야기한 '타력'은 어떤 개념일까요?

 

왜 담란은 용수 보살의 '이행도' 대신 '타력'이라는 신개념을 만들었을까요?

 

<왕생론주> 마지막에 가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담란은 세친 보살이 <왕생론>에서 말한 5념문의 수행을 닦아

극락에 태어나게 되면 불퇴전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5념문은 무엇인가요?

 

몸으로 아미타 부처님께 예배하여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예배문,

입으로 아미타 부처님을 찬탄하고 염불하여 극락 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찬탄문,

생각으로 극락 왕생을 향한 흩어지지 않는 발원의 사마타(止)를 닦는 작원문,

극락 세계의 장엄과 아미타 부처님의 덕상을 위빠사나((觀)로 관찰하는 관찰문,

일체 고뇌하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고 구제하고자 하는 자비심을 닦는 회향문입니다.

 

이 5념문을 닦음에 의해 극락 왕생하여 불퇴전지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극락에 태어나는 것과 보살이 왕생하여 얻게 되는 불퇴전지는

정토 행자의 자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의 원력에 의지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즉,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에 입각하여 5념문을 닦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8대원 중에서 특히, 3가지 원을 통해 부처님의 원력의 성취에 의해

극락 왕생을 하고 불퇴전지에 올라 보살도를 갈수 있슴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 3가지 원은 제 11, 18, 22대원입니다.

 

제11원은 정토에 왕생한 자는 '정정취',

즉 불퇴전의 경지에 머물게 한다는 원입니다.

 

제18원은 지극한 마음으로 환희심을 내어

아미타 부처님을 10번만 불러도 극락왕생한다는 원입니다.

 

제22원은 보현보살과 같은 보살행을 닦고,

시방 세계의 중생들을 교화하여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도를 행하게 하겠다는 원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제18원의 원력의 힘으로  극락 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며,

극락에 왕생한 후에는 제11원의 원력의 힘으로 불퇴전의 경지에 들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22원의 원력의 힘으로 보현보살과 같은 보살행을 닦고,

시방 세계의 무량한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의 중생 구제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담란 스님은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의 원력에 힘입어

불퇴전의 보살도를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5념문의 정토행자는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에 힘입어 

불퇴전지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담란 스님은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을

'자력(自力)'과 반대되는 '타력(他力)'으로 개념지었습니다.

 

 

3. 타력의 비유

 

그리고, 재미있는 비유를 통해 타력의 의미를 밝혀 주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삼악도를 두려워한 까닭에 계율를 수지하고,

계율를 수지한 까닭에 선정을 닦을 수 있었다.

선정이 있는 까닭에 신통을 닦아 익히고,

신통이 있는 까닭에 사천하(四天下)를 유람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자력'이라 부른다.

 

또 예컨대 열등한 범부가 당나귀 등에도 올라탈 수 없지만

전륜왕을 따라 다니면 허공을 타고 사천하를 유람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이런 것들을 '타력'이라 부른다.

 

어리석구나. 후대의 학자들이여!

타력에 올라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면

마땅히 신심을 내어 스스로 자신의 몫을 국한시키지 말지어다.

 

이 대목은 <왕생론주>의 마지막에 있는 내용인데,

<왕생론주>의 결론에 속합니다.

 

어떻게 결론 짓는가?

 

<왕생론>의 5념문은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입각한 타력문임을 밝히고,

그 목적은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 특히 제11,18,22대원에 의지하여

극락 왕생하여 불퇴전지에 올라 중생구제의 보살도를 가기 위함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자력과 구별되는 타력의 비유를 통해 타력이 무엇인지를 납득시키고,

자력에 집착하지 말고 타력의 배에 올라타려는 신심을 내라는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담란 스님이 말한 '타력'의 비유는 무슨 뜻인가요?

 

'사천하'는 불교의 우주관에서 말하는 4개의 세계를 말합니다.

 

절에 가면 독경할 때 우리가 사는 세계를 '남섬부주'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수미산의 사면에 각각 4개의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동승신주, 서우하주, 남섬부주, 북구로주입니다.

사천하를 유람한다는 것은 바로 이 4개의 세계를 유람한다는 뜻입니다.

 

‘사천하를 유람하는’ 일을 완성하려면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자력에 의지하는 것이고, 하나는 타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력에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한 사람이 삼악도에 떨어지기 싫어서

도를 구하는 마음을 발하고 계율을 잘 지킵니다.

계율을 잘 지켜 나가게 되면 집중할 수 있는 선정의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선정의 힘을 통해 '신족통'과 같은 신통력이 생기게 됩니다.

 

즉, 진정한 신통력은 지계와 선정의 기초 속에서 이루어지며,

긴 시간 닦은 지계와 선정의 힘 속에서 신통력을 얻어 사천하를 주유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이 바로 '자력'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방식은 타력에 의지하는 방식입니다.

 

"열등한 범부가 당나귀 등에도 올라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약하냐 하면 당나귀 등조차도 올라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나귀는 키가 작고 비교적 온순해서 가장 올라타기 쉬운데,

열등한 범부는 아무리 애써도 당나귀 등에도 올라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열등한 범부도 전륜성왕을 만나게 되면

하룻만에 사천하를 주유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륜성왕은 '윤보(輪寶)'라는 엄청난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윤보'라는 수레에 타면 하늘을 날고 어디라도 빠르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등한 범부는 하루 사이에 사천하를 두루 유람하였습니다.

이것은 열등한 범부의 힘이 아니라, 전륜성왕의 타력에 의지한 것입니다.

 

전륜성왕에게는 대단히 큰 위덕이 있어서

누구라도 그 분의 위덕과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설사 계율을 수지하고 선정을 닦지 못하고 신족통이 없더라도

똑같이 하루에 사천하를 유람하는 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자력에 의지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타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매우 뚜렷한 대비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의 원력의 힘인 타력에 의해

범부라도 극락 왕생하여 불퇴전지에 올라 보살도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행품>에서 용수 보살은 이행도를 묻는 질문자를 크게 꾸짖습니다.

 

“그대는 연약하고 비겁하며 큰 마음이 없는 것으로,

이는 장부로서 기개가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질문자도 역시 열등한 범부로서

큰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열등한 범부였습니다.

 

생사의 문제 앞에서 우리 대부분은

당나귀의 등도 올라탈 수 없는 열등한 범부 아닌가요?

 

'아미타 부처님'과 같은 전륜성왕에 의지하고, 

'나무아미타불'의 윤보에 의지하면

당나귀 등에도 올라탈 수 없는 범부라도 극락 왕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불력(佛力)

 

그런데, 사람들은 타력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력 갱생하려는 고정 관념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낸다는 고정 관념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자체가 타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자가용을 운전하고, 버스를 타고,

핸드폰을 하고, TV를 시청하고, 누군가 짠 옷을 입고,

아프면 의사에게 진료 받고, 부모님 힘으로 자라나고,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고 등등....

 

타력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 가득 차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에는 거의 모두 타력이 존재합니다.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타력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유독 생사 해탈이라는 중대사만큼은 타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이라는 '타력'에

의지하는 것을 하열하다고 합니다.

 

담란 스님은 이렇게 생사의 문제에 대해

'자력'만을 이야기하는 학자들에게 경고장을 날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원력'이라는 타력, 불력에 의지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면

마땅히 신심을 내어서 타력, 불력에 의지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거만하게 '자력'만을 말하면서 '타력','불력'을 얕보는 것이냐?

 

태어나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 한가지 일 조차도

다른 존재의 타력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타력 속에 살고 있슴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어찌 유독 생사의 큰일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힘마저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인가?

 

이렇게 경고장을 날리며 타력(불력)에 의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