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61) 한 농부 이야기
<법구경(161) 한 농부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한 농부와 관련하여 게송 216번을 설법하셨다.
사왓티에 아직 불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머지않아 그가 수다원 과를 성취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를 찾아가시어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누시곤 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자기가 불교 신자가 아닌데도
부처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것을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농부는 부처님께 이렇게 청했습니다.
"고따마 사문이시여,
이 논에서 수확을 하면 제가 먹기 전에
당신께 먼저 햇곡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당신께 햇곡식을 바치기 전에는 단 한 톨의 곡식도 먹지 않으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농부가
올해에는 이 논에서 수확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으므로 그런 농부의 제안에 대해 다만 침묵하셨습니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농부가
벼를 거두어들이려는 바로 전날 밤에
엄청난 소낙비가 쏟아져서 곡식이
모두 홍수에 휩쓸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이로 인해 부처님께
햇곡식을 바치지 못한 것을 상심해 하였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농부를 방문하셨고,
농부는 홍수에 대해 사뢰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 농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농부여,
그대가 지금 겪고 있는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대는 아마도 잘 모르리라.
그러나 여래는 그 원인을 아나니,
그대에게 슬픔과 두려움이 일어난 원인은 바로 욕망 때문이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욕망은 슬픔을 낳고
욕망은 두려움을 낳는다.
욕망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은 슬픔이 없거니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농부는 수다원 과를 성취하고,
곧 부처님의 재가 신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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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괴로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8가지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구하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괴로움입니다.
(구부득고, 求不得苦)
난다 존자는 자신과 결혼할 아름다운 여인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출가 생활에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출가 생활이 괴로웠고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돈이 벌리지 않거나,
심지어는 실직을 하거나 파산을 하여 돈이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돈이 없는 괴로움을 맛봅니다.
농부는 풍요로운 결실을 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홍수로, 때로는 가뭄으로,
때로는 병충해로 한 해 농사를 망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큰 괴로움과 좌절과 슬픔이 농부의 가슴을 치고 듭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하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성취됨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원하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불행하게 살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행복해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삶을 수레바퀴처럼 되풀이하며 사는 것.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2. 윤회에서 벗어남
서원이나 수행처럼
선하고 좋은 동기와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 않아 괴로움에 빠진다면
자신의 원함과 구함이 삿된 욕망, 갈망의 길로 빠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즉, 자신을 괴로움에 빠지게 하는 원함과 구함을
우리는 욕망 또는 갈망이라고 개념 정리합니다.
불교에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욕망과 갈망을 이루고 성취됨이 아니라
욕망과 갈망을 버리고 비움으로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난다 존자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방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얻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자신의 인식의 무상함을 보고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욕망과 갈망을 버림으로서 해탈하였습니다.
즉, 더 이상 아름다운 여인에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농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홍수로 인한 농사 실패에서 오는 큰 괴로움과 슬픔과 근심이
풍작을 원하고 구하는 자신의 욕망에서 온 것이라는 것.
욕망의 성취에 기뻐하고 욕망의 좌절에
슬프하고 분노하는 것이 중생의 삶이라는 것.
참된 자유와 해탈은 욕망의 추구와 성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욕망을 버림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게 됨으로써
수다원과에 올랐습니다.
결론적으로 해탈은 욕망의 성취와 실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즉, 욕망의 속성을 바르게 이해하여
욕망을 버림에 의해 해탈이 가능합니다.
초기 불교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고
소욕지족하라는 가르침을 펴는 것도
모든 존재의 무상함과 덧없슴을 통찰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윤회의 원인인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을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3. 보왕삼매론의 가르침
<보왕삼매론>과 같은 대승의 가르침도
바라고 구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강조합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일이 쉽게 되기를,
이익이 분에 넘치게 바라고 원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역경 속에서 괴로움과 슬픔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깨닫고
마음을 단련하는 공부의 장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초기 불교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바라고 구하는 것의 성취와 실패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해탈의 경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튼 바라고 구하는 욕망으로부터 해탈하여
더 이상 괴로움과 슬픔이 없고 흔들림이 없는 경지.
이러한 무원해탈(無願解脫)의 길,
초월의 길, 부동의 길을
추구해나가는 수행자가 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