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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40) - 호넨(법연) 스님과 일지소소식

아미타온 2025. 7. 13. 05:01

< 나무아미타불(40) - 호넨(법연) 스님과 일지소소식>

 

<일본 교토 지온인의 호넨 스님 동상>

 

1.  호넨(법연, 法然) 스님 

 

일본 정토 불교 조사 중에

호넨(법연, 法然) 스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려 중기에 해당하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 때 출현한 정토 조사입니다.

 

호넨 스님은 일본 정토종을

하나의 독립된 종파로 성립시킨 스님입니다.

 

그래서, 일본 정토종의 산맥은

'호넨'이라는 큰 산에서 시작합니다.

 

마치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의 산맥이

뻗어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본 정토종파인 정토종, 정토진종, 시종 등의

각 종파에서 그 원류로 추앙하는 스님입니다.

 

호넨 스님은 중국의 정토조사 선도 대사가 쓴

<관무량수경소>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호넨 스님은 오탁 악세를 살아가는

말법 시대 중생은 오롯이 염불하여

극락 왕생하는 것이 성불을 향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정토종 본산 지온인 어영당>

 

2.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호넨 스님의 <선택본원염불집>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탁의 악한 시대인 말법 시대다.

정토문이야말로 우리가 깨달음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호넨 스님이 '정토문'에 오롯이 귀의하는데는

두 가지 중요한 자기 성찰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사는 세상(시대)에 대한 성찰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성찰입니다.

 

어떻게 세상과 자신을 성찰하였을까요?

 

호넨 스니믄 오탁 악세의 어둠 속에서

죄와 악으로 오염된 세상을 성찰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현생에서 수행의 성취를 못하는

자신의 보잘것 없슴을 성찰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된 노력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사는 세상과 자기 자신을 솔직히 성찰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성찰을 통해

자신이 가야할 길을 냉철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호넨 스님은 죄와 악으로 오염된 세상을 보았고,

현생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호넨은 세상과 자신을 보고 절망했지만,

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인

타력에 의지하여 극락 왕생하는 길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와 구원의 바다에 들어가

아미타 부처님께서 본원(서원)으로 약속해 준

염불의 행을 선택해 들어가서 마음이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호넨의 깨달음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함으로서

일본 정토문이 '정토종'이라는 독립된 종파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독립된 종파로서 '정토종'은 없습니다.

 

염불하는 분들은 많지만,

오롯이 정토문의 한 길을 선택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선택하는 종파적 불교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아미타불>

 

3. 정토 신앙의 정체성

 

정토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염리예토 흔구정토'의 신앙입니다.

예토를 떠나고 정토를 구하는 신앙입니다.

 

그 정토신앙의 밑바탕은

창조적인 절망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호넨 스님이 인식한대로 고와 악으로 오염된 세계 속에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한 존재들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불안정한 운명을 스스로 완성하고자

용기 있게 나아가는 신앙이 바로 정토 신앙인 것입니다.

 

스스로의 자력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로운 타력에 의지하여

극락 정토를 간절히 동경하며 염불하며

힘차게 나아가는 신앙이 바로 정토 신앙입니다.

 

따라서, 정토 신앙은 절망자들의 나약한 신앙이 아닙니다.

 

타력에 의지한다고 해서

자신을 포기한 나약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시대)과 인간의 깊은 숙업을 바라본 인간이

선택한 강인한 실천의 신앙입니다.

 

호넨 스님은 이러한 강인한 정토 신앙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호넨 스님은 온후한 인격자였지만,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정토문을 선택한 호넨 스님은

생전에 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 살았습니다.

 

기존 불교 세력의 견제 속에

승림원에서 '오하라의 대론'을 펼쳤고,'

말년에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염불 금지령'의 법난(法亂)을 당해 귀양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석이 갈고 닦아져 보석이 되는 것처럼

호넨 스님은 수많은 시련 속에서 성숙해졌습니다.

 

<일본 정토종 총본산 지온인>

 

4. 일지소소식

 

호넨 스님은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귀의와

극락 정토를 그리워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상남자였습니다.

 

호넨 스님이 남긴 글 중에 내가 좋아하는 글이 있습니다.

 

귀양에서 돌아와 후학들을 위해 남긴

'일지소소식'이라는 한장의 작은 편지입니다.

 

"말법 시대의 중생들을 극락 왕생의 수행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수행이 적다하여 극락 왕생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일념십념이면 족하다.

 

죄인이라고 해서 의심해서도 안 된다.

죄의 뿌리가 깊은 자라 할지라도

아미타불은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가 기울었다고 해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법이 멸한 이후의 중생들도 왕생하거늘

하물며 요즈음 말법 시대의 사람들이겠는가?

 

자신이 악하다고 왕생을 의심해서도 안 된다.

선도 대사도 자신은 번뇌로 가득찬 범부라고 했다.

 

시방에 정토가 많아도 서방 극락 정토를 염원하는 것은

십악오역의 중생들도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부처님 가운데서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것은

열번만 염불해도 임종시에 아미타불이

친히 오셔서 맞아주시기 때문이다.

 

여러 행 가운데서 염불에 의지하는 것은

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미타불의 본원에 올라타서 왕생을 바라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이기에 성취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본원을 타는 것은 오직 믿음(신심)의 깊이에 달려 있을 뿐이다.

 

받기 어려운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 어려운 본원을 만나

일으키기 어려운 믿음을 일으켜 떠나기 어려운 윤회의 마을을 떠나

태어나기 어려운 극락 정토에 태어나는 것은 기쁜 일 가운데서도 기쁜 일이다.

 

십악오역의 무거운 죄를 범한 사람도

정토에 태어난다고 믿을지라도

조그마한 죄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죄인도 태어나는데 하물며 선인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일념십념의 행도 부질없는 것이 아님을 믿고

부단히 염불을 닦아야 한다.

 

일념이라도 태어나거늘 하물며

다념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호넨 스님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고,

정토 신앙인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편지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와 본원인 타력(他力)에 의지하는

정토행자의 뜨거운 마음 세계를 노래한 편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