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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82) 사리불 존자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8. 4.

<법구경(82) 사리불 존자 이야기>

 

<당진 안국사지 미륵 삼존불>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사리불 존자와 관련하여 게송 97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 날 서른 명의 비구들이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기원정사에 도착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이들이

모두 아라한이 될 시기가 되었음을 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존자를 부르시어

서른 명의 비구 앞에서 이렇게 질문하셨다.

 

“여래의 아들 사리불이여!

그대는 감각 기관을 대상으로 마음 집중(위빠싸나)을 하면

니르바나(열반)를 성취하게 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느냐?”

사리불 존자가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감각 기관을 대상으로 마음을 집중시켜

니르바나(열반)를 깨닫는다는 진실을 저는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에 대한 저의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진실을 받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이 같은 사리불 존자의 대답을 들은 비구들은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이렇게 수근거렸다.

 

“사리불 존자는 잘못된 견해를 말했다.

그는 부처님에 대하여 진실한 신심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리불 존자가

한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주시었다.

 

“비구들이여!

사리불의 대답은 이런 뜻이니라.

그는 감각 기관을 대상으로 하여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통하여

니르바나(열반)를 성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니라.

그러나, 그 받아들임은 그 자신이 그같이 수행하여

깨달음에 도달한 체험에 의한 것이지,

여래가 그렇게 말하였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였기 때문이 아니니라.

비구들이여, 사리불은 여래에 대한 신심이 깊으며,

그는 또한 착한 행동과 악한 행동에 따르는 결과도 잘 믿고 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니르바나를 깨달은 사람은

*1)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는 생사윤회의 얽매임을 끊었고

그는 착하고 악한 행동의 결과를 파괴했으며

또한 모든 욕망도 던져 버렸다.

그는 실로 중생 속의 으뜸가는 성자일지니.

 

1)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

의심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사실에 입각한 확인이 있은 뒤에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에도 자주 나오듯이 부처님께서도 문제가 있는 비구를 부르시어

항상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는지를 알아보신 뒤에 판단하시었다.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서른 명의 비구들은 모두

아라한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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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다(見)

 

불교에서는 유난히 "본다(見)"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본다는 것은 감각적으로는 눈이 맡은 역할이지만,

불교에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알았다.' '깨달았다.'

'확실히 이해했다.' '진실을 발견했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우리 말에 있어서도 들어 본다. 먹어 본다, 만져 본다 등

본다는 말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듣고, 먹고, 만져도 모를 수가 있습니다.

 

긴가 민가 헷갈리고 알쏭달쏭해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리고

우왕좌왕하면 번뇌가 생기고 고민이 생기는 법입니다.

 

무엇이든 확실해서 번민이 없고,

갈등이 없는 앎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지리산 종주를 다녀오기 전에

지리산 종주에 대한 다른 사람 글을 여러개 읽었습니다.

 

지리산 종주를 다녀와야

지리산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글이었는데,

머리 속에서 이해와 상상은 되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와 닿거나 확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2박 3일간 배낭을 매고 지리산을 종주를 하고 나서야

"아! 지리산 종주를 통해 느끼는 지리산은 이러한 것이구나!"하는 

이전과는 수백배 생생한 앎이 나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체화되지 않은 정보와 지식으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에 의한 것이든,

명상과 깊은 사유에 의한 것이든

자신이 확고하게 납득하여

더 이상 번민과 갈등이 없는 앎에 대해 "본다"라는 말을 쓸수 있습니다.

 

이처럼 확실히 보아야지

진정한 지혜와 깨달음이 오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기 위해서는 앎에 대한 갈구와 의욕도 있어야 하지만,

보기 위해 떠나야 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추진력도 필요하고

자신이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컨디션 정리와 같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함께 해야만 머리 속의 앎이 아니라 참답게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바르게 본다"라는 의미의 정견(正見)이

팔정도 중에서도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설법 중에서도 "알고 보아라."는 말씀을 하시며

진실을 발견한다는 의미의 "봄(見)"을 유난히 강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장수와 선승 이야기

 

한 선사와 장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장군이 그 고을에서 유명하다는

선승을 찾아와서 '도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장군에게

"돼지 같이 생긴 놈이 도는 알아서 뭐하걔?"하고 고함을 버럭 질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엄청난 모욕감을 느낀 장군이

열이 받아 "이 미친 중놈이..."하면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순간 선승이 말했습니다.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지옥문이 열린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장군의 가슴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순간 장군은 칼을 내리고 무릎을 꿇고 선승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자 선승이 말했습니다.

 

"분노하는 그 마음을 버리는 순간 극락의 문이 시작됩니다." 

 

살아오며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적군과 싸우며

수없이 분노와 아픔을 느끼며 살아갈 때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승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장군은 도가 무엇인지,

지옥과 극락문이 어떻게 열리는지를 의심과 회의없이 확실히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각 기관을 대상으로 마음을 집중시켜

니르바나를 깨닫는다는 진실을 저는 받아들입니다."

 

사리불 존자의 이 말씀은 

마치 장군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봄으로써

더 이상 회의와 의심이 없이 지옥과 극락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느낌(受)'에 대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얻을 수 있다는 확고한 앎이자 봄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떤 위대한 성자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훌륭한 교단의 전통이기 때문에 등등으로

어떠한 권위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 별로 안 좋아하셨습니다.

 

불법의 진리를 자신이 보고 이해하고 납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함을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법등명과 함께 자등명이 마치 새의 양 날개처럼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날 수 있습니다.

 

아라한은 10가지 장애 중에

"의심과 회의"라는 장애가 완전히 사라진 존재입니다.

 

불교적 표현으로 하자면 "눈뜬 이",

"밝게 보는 이"가 바로 아라한입니다.

 

어두운 방은 등불을 밝히는 것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의심과 회의는 직접적 체험과 명상을 통해 보아야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