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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50) 부처님의 부족과 관련된 평화적 분쟁 해결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5. 5. 2.

 

 <법구경(150) 부처님의 부족과 관련된 평화적 분쟁 해결 이야기>

 

<수원 만석공원 저수지>

 

부처님께서 카필라 지방에 가시었을 때,

부처님의 부족들이 로히니 강물 문제로 서로 다투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평화롭게 화해시키신 뒤 게송 197번에서 199번을 설법하셨다.


까필라 성은 석가 족의 수도로서 부처님의 아버님이 다스리는 곳이었고,

콜리야 성는 콜리야 족의 수도로서 부처님의 외가가 있는 곳이었다.

 

두 부족의 농민들은 로히니 강물을 끌어대어 농사를 짓고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해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 농작물이 말라 죽게 되었다.

 

그러자 양쪽 강가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서로 자기들 쪽으로 물을 끌어가려고 다투기 시작했다.

 

콜리야 족 사람들은 자기들은 한 번만 물을 대면

수확할 수 있는 단계라면서 강물을 끌어가야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까삘라 성 사람들은 귀중한 물을 콜리야 족 사람들이

다 끌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그러다가 자기들의 농사가 망치게 되면

식량을 강 건너에 가서 사와야 하고,

그러려면 값진 물건들을 내다 팔아야 하는데,

자기네들에게는 값나가는 물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들 자기네들 쪽으로 물을 끌어가겠다고

맞서다가 험악한 말이 오가게 되었고,

차츰 나쁜 감정이 쌓여

서로가 상대방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이 양쪽 농민들이 충돌하자

나라의 책임자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임자들은 전쟁을 해서라도

자기들의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두 부족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부처님께서는 아침 일찍이

신통력으로써 세상을 널리 살펴보시다가

당신의 출신 부족과 외가측 부족이

로히니 강물 문제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아셨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은 당신께서 직접 나서시어

피 흘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시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즉시 허공을 날아

로히니 강물의 중간에 멈추셨다.

 

이때 양쪽 강가에 모여 있던 부처님의 부족 사람들과

외가 측 부촉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위대하신 신통력으로

고요히 허공에 머물러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는

모두 칼과 활과 창을 땅에 놓고 부처님을 향하여 인사를 올렸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양쪽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여!

강물이 더 소중한가,

그대들의 몸에 흐르는 피가 더 소중한가?

그 둘 중 어느 것이 더 값진가?

 

그대들이여!

사소한 강물을 가지고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느니라.

 

그대들은 왜 이같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려는 것이냐?

만약 여래가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대들의 귀중한 피가 지금 이 강을 채우며 흐르고 있었으리라.

그대들은 상대방을 적으로 여겨 증오하면서 사는구나.

 

그러나 여래는 그대들과 다르니

아무도 증오하지 않으며 아무와도 적이 되지 않느니라.

그대들이 지금 시작하려는 싸움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원인이며,

그대들은 이같은 싸움으로써 서로 회복하기 어려운 불행을 부르게 되느니라.

 

그러나 여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이하여

이에서 모두 해탈하였느니라.

참으로 여래에게는 일체가 평등하니라.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손에 다시는 칼과 활을 잡지 말지니라.

그대들은 감각적 쾌락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여래는 그런 것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나니,

여래는 모든 감각적 쾌락을 떠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이 같은 말씀을 듣고

로히니 강변 양쪽에 있던 농민과 시민들은

모두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각을 부끄럽게 여겨 무기를 버리고 화해하였다.

 

그들은 강물을 사이좋게 서로 나누어 대었으며,

농작물을 잘 관리하여 큰 흉년을 면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 세 편을 읊으셨다.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증오 속에서도 증오 없이
미워해야 할 사람 속에서도 미움을 버리고
우리 자유롭게 살아가자.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질병 속에서도 질병을 앓지 않고
병자들 속에서도 병듦 없이
우리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자.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쾌락된 환경에 물들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쾌락을 따르지 않으며

우리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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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로히니 강>

 

1. 다툼

 

농사 짓는 사람에게 물은 소중합니다.

 

특히, 가물어서 농작물이 타들어가기 시작하면

저 도랑 수준의 물도 없어서 저 물이라도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애가 타고 때로는 다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다툼까지 없다면 좋겠지만,

다투더라도 사소한 다툼 수준에서 멈추고

양보할 부분과 타협점을 찾아야 되지, 

증오가 되고 원한이 맺히고 집단화되면

사소한 다툼이 피를 부르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합니다.

 

94년 월드컵인가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 선수가

전 국민의 공적이 되어 광팬에 의해 총에 맞아 죽은 사태가 발생하고,

남미의 두 나라는 축구 승부 때문에 전쟁 직전까지 갔던 사건은

사소한 분노와 다툼이 폭탄이 되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노자 선생의 <도덕경>에

"성인의 도는 다투지 않음에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 깊은 의미가 담긴 말씀입니다.

 

사실 다툼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겉모습일뿐,

2탄 3탄으로 더 커지고 강력한 다툼을 준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싸우면서 정든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요?

 

다툼이 일상화된 부부나 커플과 친구는

콧배기만 봐도 징글징글한 관계가 됩니다. 

 

 

2. 평화

 

어떻게 해야 다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다툼과 싸움의 원인이 되고

다툼과 싸움이 계속되면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을 부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지나친 욕심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면

강물이나 축구 때문에 피를 부르는 것이 현명한가 하는

이성적이고 인과적 판단이 모호하게 됩니다.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고 타협하고

다시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어리석게 남 탓만 하고 욕심과 분노는 폭탄이 되고 불행은 증폭됩니다.

 

따라서, 다툼의 상황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마음 챙김과 마음 집중이 되어야 하고

이성적이고 사려깊어야 합니다.

 

마음 챙김과 마음 집중을 통해서든

자비로운 마음을 가꿈에 의해서든

탐진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닦는 수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법구경의 3편의 게송에 나오는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자."

이 말씀 속에서는 진정한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바라는

부처님의 절절한 심정이 담긴 것 같습니다.

 

참다운 행복과 자유와 평화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다툼이 없어야 가능합니다.

 

상대에 대한 증오를 버리고

미움 없는 평정심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남과 다툼 없이 살수 있을 때

참다운 자유와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툼없이 평화롭게 사는 길.

 

마음의 평화을 이루려는 사람이라면

꼭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