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54) 한 재가 신자 이야기>
부처님께서 알라위 지방의
한 마을에 잠시 머무르시던 어느 때,
한 재가 신자와 관련하여 게송 203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알라위 지방의 한 가난한 농부가
수다원 과를 성취할 인연이 성숙되었음을 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사왓티로부터 약 30요자나* 떨어진 곳인 알라위 지방으로 가셨다.
*요자나 : 거리의 단위, 손수레로 갈 수 있는 하루의 거리. 약 14킬로.
이때 알라위 지방에 살고 있는 가난한 농부는
부처님께서 도착하신 것을 알고 일을 빨리 끝낸 다음 부처님을 뵈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자기의 유일한 큰 재산인 황소가
간밤에 고삐를 풀고 집을 나가 버린 것을 알고
먼저 소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소를 찾아 온 들판을 헤매었다.
농부가 이처럼 소를 찾아 헤매는 동안
이 지방의 한 신자의 집에 머무르신 부처님께서는
제자 비구들과 함께 공양을 끝내셨다.
그런데 공양 공덕을 찬탄하고
설법을 시작하실 시간이 되었는데도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침묵을 지키신 채
농부를 기다리시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 간신히 소를 찾아
마구간에 매어 놓은 농부가
급하게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와서
신자들이 자리잡은 맨 뒤에 조용히 앉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집 주인에게
공양을 올리고 남은 음식이 있는지 물으시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농부에게 주도록 부탁하셨다.
그런 뒤 농부가 식사를 다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야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단계적으로 베푸셨다.
부처님은 계행을 지키는 것과,
보시 공덕을 짓는 일,
좌선 수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하여 농부와 공양 올린 집 주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설법이 끝난 다음 부처님과 비구들은 기원정사로 향했다.
도중에 비구들은 부처님께 설법을 시작하시기 전에
농부에게 음식을 먼저 먹도록 하신 것은
참으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의 지적은 옳으니라.
너희는 여래의 그같은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는 여래가 30요자나나 되는 먼 길을
무엇 때문에 간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도다.
여래는 그 가난한 농부가 이제는 진리를 받아들일만큼
성숙한 것을 알고 그를 위해 그곳까지 갔던 것이니라.
그런데 만약 그가 여래의 법문을 듣다가
배고픔을 느낀다면 그는 배고픔 때문에
여래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여래는 먼저 그의 배고픈 고통부터 해결시켜 준 것이다.
그 농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설법하는 곳으로 오려고 했으나
황소를 찾느라고 들판을 헤매다가 도착한 것이니,
얼마나 피곤하며 또 배가 고팠겠느냐?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서 배고픔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도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배고픔은 으뜸가는 질병
무상한 몸은 으뜸가는 둑카
지혜로운 사람은 이같은 진실을 알아
으뜸가는 행복 니르바나(열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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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려깊음
부처님 당시에 '박칼리'라는 비구가 있었습니다.
몹쓸 병에 걸려 냄새나고 더러워서
아무도 돌보지 않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비구 스님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비구 스님을
손수 깨끗히 씻겨서 안정을 취하게 하신 뒤
법을 설하시고 죽음 직전에 수다원 과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번 법구경 이야기에서 부처님은
한 가난한 농부에게 수다원 과를 이루게 해주시려고
수백리 길을 걸어 그 농부의 마을로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도망간 황소를 찾아오느라고
배가 고프고 지친 그 농부가 기력을 회복하여
가르침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밥을 먹이신 다음 법을 설하십니다.
참으로 사려깊은 교화의 모습입니다.
이 두 장면을 보면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중생들에게
다르마와 인연이 있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은 그야말로 법을 가르치려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충만하신 법신(法神)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자비로운 전법의 길
부처님은 열반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을 찾아온 마지막 제자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법을 설하셨습니다.
남은 제자들에게 더 이상 법에 대해 의문이 없느냐고 물어보시고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법을 설하시면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전법을 결심하신 이후부터
열반에 드시기 전까지 길에서 길로 다니시며
법을 설하시다 길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일생은
다르마(진리)를 가르치려는 끝없는 자비심과 열정을 느끼게 합니다.
몹쓸 병에 걸려 냄새 나는 비구는 몸을 깨끗히 씻기시고,
배가 고파 기력 없는 농부는 밥을 먹여 기력을 회복한 후에
법을 설하시는 부처님의 사려깊고 자상한 모습 속에서는
법을 듣는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를 배려하시는
부처님의 섬세하고 세심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3. 법의 자리에 오는 준비 자세
이 장면을 통해 법을 듣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은
어떻게 법의 자리, 수행의 자리에 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법을 배우는 자리를 허둥지둥 아무 생각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받아지닐 수 있는 가장 좋은 몸의 컨디션 상태로 오고
수행을 통해서 집중과 해방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몸 상태를 준비하는 것이
법을 배우고 수행을 하려는 사람의 기본 자세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나중에 기원정사로 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부처님의 게송이 참 흥미롭습니다.
4. 부처님 게송의 의미
배고픔은 으뜸가는 질병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며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난민의 모습을 볼 때
불법을 공부할 수 없는 가난의 고통을 자각하게 합니다.
생존을 위한 기본 토대인 먹을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먹고 살기에 급급한
이 아프리카 난민들의 삶에서 삶의 질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상한 우리 몸은 으뜸가는 둑카(苦)라고 하셨습니다.
추위나 더위, 배고픔이나 목마름,
벌레와 맹수의 위협, 병고의
여러 조건들 속에서 우리 몸은 취약합니다.
늙고 병든 조건 속에서 무상한 몸이야말로
으뜸가는 둑카(고)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이산 혜연 선사 발원문에
"배고픈 이에게는 쌀이 되어 구제하고,
병든 이에게는 약풀 되어 구제한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배 고프고 병든 이의 몸의 고통이야말로 제일 먼저 구제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같은 진실을 깨달아
으뜸가는 행복, 니르바나(열반)를 이룬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우리 몸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배고프고
늙으면 병이 들고 죽음을 면할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을 안다면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요?
부유함과 건강과 젊음을 자랑하고
이것을 추구하다 죽고 마는 인생이 아니라,
이러한 조건 지어진 것들의 허망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
설산 동자의 게송 후반부에 나오는 열반적정의 즐거움.
참된 행복의 길을 찾으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 설산동자 게송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제행무상)
이것은 생하고 멸함이 있는 괴로운 생멸법이다. (시생멸법)
이러한 무상하고 괴로운 생멸의 길에서 벗어날 때 (생멸멸이)
그 때야말로 진정한 열반의 행복이 있다. (적정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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