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10) 여러 청년들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여러 청년들과 관련하여 게송 131번과 132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왓티 시내를 탁발하시며
이곳저곳을 다니시다가
여러 청년들이 막대기로 뱀 한 마리를 두들겨 패는 것을 보셨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는가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뱀이 자기들을 물까 봐 겁이 나서
뱀을 막대기로 두들겨 패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희가 해침을 당하고 싶지 않거든
너희도 다른 이를 해쳐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너희가 다른 이를 해친다면
너희는 다음 생에 행복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은 다음의 게송 두 편을 읊으셨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는 다음 생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는 다음 생에 반드시 행복을 찾으리.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그 청년들은 모두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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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경제의 명상
부처님의 어린 시절인
싯다르타 태자의 10살 때의
농경제에서의 체험이 있습니다.
왕을 비롯한 대신들은 편안하게 앉아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제사인
농경제 준비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농경제가 시작되자 많은 농부들이
소를 끌고 힘겹게 땀을 흘리며 땅을 갈았습니다.
땅 속에서 벌레가 파헤쳐 나오고,
벌레를 발견한 작은 새가 벌레를 잡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새는 하늘을 날으는
독수리에게 잡혀 먹는 모습을 보았다.
이 장면을 보고 깊은 감수성의 싯다르타 태자는 깊은 동정심을 느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는 삶의 실상에 대해 깊이 고뇌했습니다.
"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함부로 해치고 착취하고 잡아먹어야 하는가?"
불교의 출발은 어린 싯다르타 태자의
자비심에 바탕한 고뇌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싯다르타는 이러한 고뇌 속에서 어떤 명상을 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의 도움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저 농부의 노동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다른 동물, 식물들의 희생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다른 존재의 도움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숙명이면서도 이율배반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의 도움과 희생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다른 존재의 도움과 희생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른 분별이다.
아울러 나는 나 자신이 살기를 원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다른 인간들도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고 행복을 원한다.
그것은 동물이나 미물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아무 죄가 없는 동물과 미물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사유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자비
부처님이 길을 가시다가
뱀을 몽둥이로 마구 때리고 있는 청년들을 보셨습니다.
뱀이 자신들을 물어서 피해를 줄 것이라고
뱀을 강하게 거부하고 혐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이러한 혐오감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뱀을 마구 패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이라는 존재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생명을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청년들에게 이성적으로 물으십니다.
"나의 생명과 행복이 소중한만큼
다른 존재의 생명과 행복도 소중하지 않느냐?
그것은 너희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뱀도 예외가 아니다.
너희들이 만약 뱀이었다면 단순한 혐오감에서
사람들이 너희들을 죽여야 겠다고 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이겠느냐?
뱀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겠는가?
그러니 뱀이 너희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뱀을 옮기든지,
너희들이 뱀을 피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 아니겠는가?"
청년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면서
다른 존재를 해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인과가 따를 것이라는 진리를 설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의 인과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청년들이 수다원과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악업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성내는 마음, 혐오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를 해치려는 것이 악업입니다.
어떻게 해야 누군가를 해치려는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내는 마음, 혐오하는 마음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성내는 마음, 혐오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요?
자비심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명과 행복이 소중한만큼
다른 존재의 생명과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이처럼 나와 남을 역지사지할 수 있는 자비심이야말로
성내는 마음, 혐오하는 마음을 버리고
남을 해치려는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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