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25) - 아미타 부처님의 몸을 관하는 관법(1) >
1. 가마쿠라 대불
일본 가마쿠라 막부 무사 정권이 시작된 가마쿠라.
가마쿠라에 가면 가마쿠라를 상징하는 가마쿠라 대불이 있습니다.
가마쿠라 대불은 지금부터 약 1000년 전인
1200년경 일본에서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아미타불 좌상입니다.
가마쿠라에 갔을 때
엄정한 상호의 가마쿠라 대불 부처님인
아미타 부처님의 크신 몸의 장엄에 환희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내 마음 속에서 아미타 부처님의 기운을 느끼며
환희로운 감동 속에서 <나무아미타불> 기도를 올렸습니다.
<관무량수경>에는 극락 세계를 관하는 16개의 관법 수행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아미타 부처님의 몸을 관하는 2가지 관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몸의 형상을 관하는 제8 '상관(像觀)'이고,
다른 하나는 세부적으로 몸과 광명에 대해 관하는 제9 '진신관(眞身觀)'입니다.
2. 아미타 부처님의 몸의 형상을 관하는 상관(像觀)
먼저 아미타 부처님의 몸의 형상에 대해 관하는
'상관(像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일체의 세계인 법계를
몸으로 하는 법계신(法界身)이니
일체 중생들의 마음 속에 두루 다 들어가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마음 속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32상 80종호인 것이니라.
그 마음으로 부처님을 짓고,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
(시심시불 시심작불 是心作佛 是心是佛).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지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생각을 바르게 하여
아미타 부처님과 그 지혜 공덕을 깊이 관조해야 하느니라.
정토 신앙, 특히 <관무량수경>의 신앙은
유식(唯識)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유식적인 접근 속에서 자신의 의식 속에
극락 세계와 불보살님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과 관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아미타불' 칭명 염불을 통해
극락 왕생의 염원을 의식 밑 마음 세계에 깊이 각인시킵니다.
이러한 관법과 염불에 오롯이 집중해서 마음의 안정과 평안,
더 나아가 염불(관불) 삼매와 신앙 체험을 통해
극락 왕생의 확신을 얻는 일종의 요가 수행적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3. 법계신
<관경>의 부처님 형상을 관하는 '제8상관'을 살펴보면
모든 부처님은 법계를 몸으로 하는 법계신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의 마음 속에 들어가 계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관경>의 부처님 형상을 관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전제입니다.
대승불교에서 '법계'는 '진여', 즉 '진리(법)'의 세계를 말합니다.
특히, 화엄경은 '사물 현상(事)의 세계'와 '진리(理)'는
둘이 아니라는 철학을 전개합니다.
즉, 1) 사법계(사물 현상세계),
2) 이법계(진리의 세계),
3) 이사무애법계(진리와 사물 현상세계가 교류 융합하는 세계),
4) 사사무애법계(사물 현상세계가 서로 교류 융합하는 세계)의
'4법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화엄경의 4법계의 측면에서는
우리가 보는 삼라 만상과 우주는 진여(眞如) 그 자체이고,
진리의 펼쳐짐인 법계(法界)입니다.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모든 부처님은 법계를 몸으로 하신다고 합니다.
즉, 온 세상에 두루하여 삼라만상과
우주 그 자체인 법계가 부처님의 몸입니다.
온 우주 법계를 몸으로 하는 법계신의 부처님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들의 마음 속에도 부처님이 들어와 있습니다.
4. 시심작불 시심시불
우리는 보통 '내 마음에 너 있다'라고 하지만,
<관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내 마음에 부처님 있다'가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을 짓고,
내 마음이 곧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시심작불(是心作佛) 시심시불(是心是佛)'의
유명한 말씀이 바로 <관무량수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시심작불 시심시불'을
유심정토(唯心淨土)의 선적인 가르침으로 이해합니다.
'모든 중생에게는 본래 청정한 불성을 소유하고 있고,
그 청정한 마음이야말로 바로 부처이며,
청정한 마음이야말로 바로 불국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정한 마음 외에는 따로 극락이 존재하지 않고,
아미타 부처님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문제는
<관무량수경>을 비롯한 정토삼부경에서 설하는 극락 정토나
아미타 부처님의 실존의 존재는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오직 마음, 마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관무량수경>의 '시심작불 시심시불'과는
뉘앙스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관경>의 '시심작불 시심시불' 논리의
출발의 전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온 우주 삼라 만상의 법계를 몸으로 하는
진여법신의 부처님(법계신)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 마음이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을 만들고,
부처님을 만든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진여법신의 법계신의 부처님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을 보고 생각하면 부처님을 만들고
부처님을 만든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5. 상관(像觀)과 관불(觀佛) 삼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관하게 됩니다.
저 아미타 부처님을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부처님의 형상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눈을 뜨거나 감거나 한결같이 하여
염부단금의 자마금색과 같이 찬란한 하나의 부처님 형상이
저 연꽃 위에 앉아 계신 모습을 관조해야 하느니라."
‘저 연꽃’은 제7 화좌관에서 말한 보배로 이루어진 연꽃을 말합니다.
연꽃 보좌의 생각이 무르익게 되면
자연히 그 위에 계신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모습이 연꽃 위에 앉아 계심을 보게 되면(見像),
마음의 눈이 열려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극락국의 칠보로 장엄 된 보배 땅,
보배 연못, 줄지어 서있는 보배 나무,
모든 하늘의 보배로 장식된 비단이 나무 위를 덮고 있는 것,
온갖 보배가 달려있는 그물이 허공에 펼쳐져 있는 것들을 보게 된다.”
여기서 하나의 관상이 또 다른 관상을
연상하게 만드는 관상의 확장을 보게 됩니다.
극락의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인위적으로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되면
어느 순간 마음의 눈인 심안이 열려서
극락 세계가 자기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관상이 잘 되게 되면 극락과 사바 세계 사이의
거리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나서는,
다시 마땅히 하나의 큰 연꽃이 부처님 왼쪽에 펴있다고 생각하라.
그 연꽃은 앞에서 말한 연꽃과 똑같아서 다름이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큰 연꽃이 부처님 오른쪽에 있다고 생각해라.
한 분의 관세음 보살이 왼쪽 연꽃 위에 있으면서
금빛 광명을 놓고 있음을 생각하고,
한 분의 대세지 보살이 오른쪽 연꽃 위에 있으면서
금빛을 놓고 있음을 생각하라.”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졌을 때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두 아름다운 빛을 놓고 있는데,
그 빛은 금색이며 모든 보배 나무를 비추어 주신다.
하나하나의 보배 나무 아래에도
역시 세 송이 연꽃이 피어 있으며,
그 연꽃 위에 각기 한 분의 부처님과 두 분의 보살이 계시면서
두루 그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이루어져 졌을 때,
수행자는 마땅히 빛을 내며 흐르는 물,
모든 보배 나무, 기러기, 원앙들이
모두 훌륭한 법을 설하는 것을 들어야 할 것이며,
선정에 들어 있을 때나 선정에서 나왔을 때나
항상 훌륭한 법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관상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집중하게 되면 관상 수행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로 돌아왔을 때조차도 극락세계의 물, 새, 나무들이
설하는 법을 늘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일상에서도 물이 흐르고,
새가 울고, 나무가 꽃피는 모습 속에서
극락의 법의 세계를 느끼며
법열에 젖어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열의 마음 세계에 있게 되니
그야말로 '관불 삼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아미타불(27) - 호넨 스님과 선택본원염불집 (0) | 2025.02.17 |
---|---|
나무아미타불(26) - 아미타 부처님의 몸을 관하는 관법(2) (0) | 2025.02.04 |
나무아미타불(24) - 원효 대사의 미타증성게 (1) | 2025.01.27 |
나무아미타불(23) - 작은 아미타불 (0) | 2025.01.24 |
나무아미타불(22) - 아미타 여래의 진여법성과 방편법성 (1) | 202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