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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68

불교 인물사(15)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2) - 유학 1. 지엄 화상과 화엄 불교 의상 대사는 중국에 와서 앓은 병이 완쾌된 후 당시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장안은 화엄, 유식, 밀교, 율종 등의 다양한 종파 불교가 꽃피우던 곳이었습니다. 의상 대사는 장안 남쪽에 있는 종남산으로 갔습니다. 종남산의 화엄 도량인 지상사에서 중국 화엄학의 대가로 중국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 화상의 문하에 들어가 8년간 화엄학을 공부했습니다. 지엄 화상이 제자인 의상 대사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옵니다. "중국 화엄의 대가인 지엄이 어느날 종남산에서 꿈을 꾸었다. 해동에서 큰 나무가 나타나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중국 전체를 뒤덮고 그 위에 봉황의 집이 있어서 가지를 헤치고 올라가 보니 마니보주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2024. 4. 8.
불교 인물사(14)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1) - 출가 1. 해동화엄 초조, 의상대사 이번 시간부터 의상 대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의상 대사(625~702)는 원효 대사와 더불어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의상 대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라고 흔히 일컫어집니다. 이 땅에 화엄 불교을 널리 일으켰던 분입니다. 의상 대사의 일생을 보면 화엄의 불교를 대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제자 양성과 대중 교화를 활발히 함으로써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힘썼던 훌륭한 스님이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2. 출가 의상 대사는 신라 진평왕 47년(625년)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속성은 김(金) 씨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한신(漢信)입니다. 신라 골품 사회에서 진골(眞骨) 출신에 해당하는 아주 높은 신분이었습니다. 진골은 신라 신분제 사회(골품 사.. 2024. 4. 5.
불교 인물사(13) - 신라 불교의 새벽별, 원효 대사(13) - 무애 1. 원효의 무애한 행적과 모습 에서는 원효의 행적과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 발언은 미친 듯 사나웠고 예의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드러난 행동은 상식의 선에서 벗어났다. 거사와 함께 주막이나 기생집에도 들어가고 저 양나라 지공처럼 금빛 칼 달린 석장을 갖고 다녔다. 혹은 주석을 지어 화엄경을 강의하는가 하면 혹은 사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거나, 여염집에서 유숙하기도 하고, 혹은 명산대천에서 좌선을 하기도 하였다. 계기를 따라 마음 가는대로 하는데 도무지 정해진 틀이 없었다." 에 실린 이러한 원효 대사의 삶을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무애'입니다. '무애'는 어떤 고정 관념 또는 일정한 규범적 행동양식에서 벗어나서 즉,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이미.. 2024. 4. 1.
불교 인물사(12) - 신라 불교의 새벽별, 원효 대사(12) - 일심 1. 해골물 깨달음의 게송 이번 시간에는 원효 대사의 2번째 키워드인 "일심(一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일심은 원효 대사의 화쟁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원효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해골물의 게송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삼계유심 三界唯心) 만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만법유식 萬法唯識)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심생고종종법생 心生故種種法生) 마음이 사라지면 감로수와 해골물이 둘이 아님을. (심멸감분불이 心滅故龕墳不二) 모든 법은 마음에 있는데 달리 어디서 구하겠는가. (심외무법 心外無法, 호용구법 胡用別求)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아불입당 我不入唐) 원효 대사의 해골물 깨달음은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 2024.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