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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18)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6) - 법성게(1)

by 아미타온 2024. 4. 26.

<불교 인물사(18)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6) - 법성게(1)>

 

<법성게>

 

1. <법성게>의 가치

 

의상 대사는 원효 대사처럼 방대한 저술을 거의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출가자로서 계율을 지키고 본분을 다하는 모습,

선묘의 헌신적인 사랑의 전설 등의 훌륭한 스토리도 있지만,

<화엄일승법계도>, 흔히 <법성게>라고 불리는

210자의 짧은 게송에서 품어져나오는 내공의 위력 때문입니다.

 

의상 대사는 중국의 법장이나 일본의 명혜와 같은

화엄학의 대석학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우리 나라에서 화엄경과 관련하여

"해동 화엄의 초조"라고 불릴 정도로 화엄의 대가입니다.

 

화엄경은 60권 화엄 또는 80권 화엄으로 그 분량이 방대합니다.

 

그런데, <법성게>는 이 화엄경의 사상을

의상 대사의 각성을 바탕으로

단 210자의 짧은 게송으로 압축하여 간결화시킨 것입니다.

 

<법성게>는 의상 대사가 중국 유학 중에

자신이 공부한 것을 대승장(大乘章) 10권으로 엮어 갈고 닦다가

670년 신라로 귀국하여 대승장 10권을 부처님 전에 불살라

남은 글자 210자로 응축시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글입니다.

 

즉, 의상 대사 자신이 체득한 화엄의 이치를

210자로 간결화하여 나타낸 화엄의 정수인 셈입니다. 

 

보통 경전의 깊은 뜻을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풀어쓴 주석서가 사람들의 불교 이해에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법성게와 같은 불교 사상을 축약하여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시적인 게송이 더 큰 감동과 맛을 주기도 합니다.

 

<반야심경>, <신심명>, <법성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해인사 영산회상도>

 

이러한 짧은 글들은 간결하지만,

뜻이 풍부하여 암송하여 수지 독송하면

공부에 큰 도움을 주는 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성게>는 화엄적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의 실상(본질)은 어떠하며,

이러한 세계의 실상을 알게 된 존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힌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라고 하는 것은 

겉모습이나 밖에 드러나는 모습에 천착하지 않고

그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이나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흔히 '반야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법성게에서는 이러한 반야적 지혜로 바라본

세계의 모습을 "해인삼매"에 비친 세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인(海印)"이란 우리의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바다는 한번 보면 마음이 툭 트일 정도로 넓고 깊습니다.

 

바다는 온갖 보배로운 것이 무궁무진하게 들어 있고

바다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고요하고 깨끗하여 모든 현상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따라서, 우리의 고요한 마음을

끝없이 넓고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용하는

청정하고 고요한 바다에 비유하여 흔히 "해인 삼매"라고 합니다.

 

<법성게>는 해인삼매에 든 깨달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실상(본질)은 어떠한 것이며,

해인삼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과 힘을

갖춘 사람은 어떠한 실천을 하고 살아가야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의상 대사의 사상과 삶의 기저를 담고 있는 화엄의 사상을 축약한

<법성게>의 의미를 살펴보며 의상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화엄경의 해인삼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법보사찰 가야산 해인사>

 

2. 법의 성품과 연기적 관점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이 아니로다.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변함없이 본래가 고요한데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想絶一切)     이름 없고 모습 없어 일체 분별 끊겼으니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깨닫는 지혜일뿐 지식으론 알 수 없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하고 오묘하니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기 성품 벗어나서 인연 따라 이어지니

 

깨달음의 세계에서 바라본 이 세계의 실상(본질)을

의상 대사는 "법성(法性)" 또는 "진성(眞性)"이라고 표현합니다.

 

법성은 둥글고 두루하여 모나지 않으며 두 가지 모양이 없고 ,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며 이름도 모양도 없어 일체가 끊어졌으니

이것은 깨달음의 지혜로만 알 수 있는 세계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인삼'이 있습니다.

인삼은 약인가요? 독인가요?

 

인삼은 허약하고 효능에 맞는 사람에게는 약이지만,

장에 열이 있는 사람이나 인삼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인삼 성분 자체는 '약'이라 할 것도 '독'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어떤 조건에 처했을 때는 약성이 나타나고,

어떤 조건에 처했을 때는 독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약이 됐다가,

독이 됐다가 한 것이나

약이기도하고 독이기도 한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존재일 뿐입니다.

 

<해인사 감로탱화>

 

예를 들어, 여러분은 좋은 아빠인가요?

나쁜 아빠인가요?

 

자식에게 유익을 주고 좋은 가르침을

베풀 때에는 좋은 아빠입니다.

 

그러나,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자식을 어긋나게 키울 때는 나쁜 아빠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하나의 존재이지만,

자식과의 관계에서 어떤 인연(업)을 짓는가에 따라

좋은 아빠가 되기도 하고 나쁜 아빠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생각의 울타리(상)에만 빠져 

이러한 인연과 관계적 모습을 무시하고

그 존재에 대해 이러한 모습이라고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이와 같은 상(相)에 빠진 존재를

<법성게>에서는 지식(분별)으로는 알 수 없고

존재를 바르게 바라보는 지혜로서만 통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성품 벗어나서 인연따라 이어지니' 라는 말은

존재를 고립된 것이나 자기 주관적 관념과 생각에 빠져 재단하지 말고,

존재는 관계와 인연을 통해

상호 연관되어 변화한다는 연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의 세계(지혜의 눈)에서 바라본 이 세계의 실상인 법성은

모든 것이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는 연기적인 관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