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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근대사

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16) -승려의 앞날과 승려의 결혼 관계

by 아미타온 2026. 1. 6.

< 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16) -

승려의 앞날과 승려의 결혼 관계>

 

<포항 보경사>

 

 

1. 스님의 결혼을 허용하라

 

한편, 만해 스님은 스님의 결혼 문제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였습니다.

 

불교의 전통적 계율인 승려의 독신주의도

시대의 변화와 때에 맞추어 결혼을 허용해야 하며

현대에는 이러한 전통적 계율에서 벗어나

대승의 보살적 입장에서 세상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쳐나갑니다.

 

이 부분은 오늘날에도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으로

당시 일본 불교의 승려 결혼 허용에 영향을 받은 부분으로 보입니다.

 

 

누가 나에게 묻기를,

불교를 어떠한 방법으로 장차 부흥시킬 것인가 하고 말하면,

나는 반드시 대답하기를, 

승려의 결혼 금지를 해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비난하기를,

당신은 어째서 이러한 몰상식한 말을 해서

부처님의 계율을 더럽히는가 할 것이다.

.....

 

그러나 불교를 계율에서 구하는 것은

참으로 용을 한 잔의 물에서 낚고

호랑이를 개미굴에서 찾는 것과 같아서 

어찌 뜻을 이룰수 있겠는가.

 

진실로 결혼이 불도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

어찌하여 과거 칠불이 어느 부처님이든

자식이 없는 분이 없으시고 

무수히 많은 보살들이 많이 재가(在家)에서 나왔는가.

 

다만 소승의 근본 기틀이 천박해서

욕망과 쾌락으로 흘러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방편으로 자세한 계율을 만들어 그들을 제한한 것이다..

........

 

비록 결혼하는 것이

계율에 어긋나서 시행하기 어렵더라도

마땅히 결혼하는 것이 불교의 때와 기틀에 이롭다면

방편으로 결혼을 하도록 하여 때를 맞추고

다시 결혼하지 않는 것이 불교에 이로울 때가 되면

그 때 거두어서 옛날 방식대로 하면 그 누가 잘못이라 하겠는가.

 

 

2. 현대에 결혼을 금하는 것이 해로운 4가지 이유

 

그리고, 현대의 시대에 결혼을 금하는 것이

해로운 이유를 4가지 관점에서 해롭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혼을 금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까닭을

네가지로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1) 윤리에 해롭다.

사람의 죄 가운데는 불효의 죄가 크다고 하는데,

그것은 제사가 끊기고 자손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2) 국가에 해롭다. 

대저 국가라는 것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명한 국가에서는 모두 결혼을 허락하고 있어서

인구의 증가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진화의 쉬움이 불길이 들을 태우는 것과 같다.

 

(3) 포교에 해롭다.

불교에 들어왔다가 도리어 속세로 나가는 사람이 없는 절이 없으니

그 원인은 결혼 문제에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 불교인구가 줄어들어 포교하기가 어려우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구할수 있다는 말인가

 

(4) 교화에 해롭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마음이 식욕과 색욕인데,

이것을 억누르게만 한다면

고려 말년 이후 불교사를 보면 승려의 음난한 행위로

불교사를 손상시킨 일이 매우 많은데 이와 같이 교화에 해로운 것이다.

 

 

3. 결혼을 자유 의지에 맡기자

 

그러나, 자신의 주장이

모든 승려들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의사에 따라 출가자로 살며 불교를 아내로 삼아

정진하려는 이는 자신도 칭찬한다는 입장을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현시대적 상황에서는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불교의 쇠퇴를 막고 대승적 보살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적합하다는 것을 밝히면서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달라는 입장을 정부에 2번이나 청원하였다고 하여

당당히 당위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내가 부처님의 계율을 무시하여

승려 전체를 모두 휘몰아서 음계를 범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자유 의사에 맡기려고 하는 것이다. 

 

옛날에 파스칼,루소,로크,칸트 같은 철인이나

뉴턴,아담 스미스와 같은 과학자도 일생 독신으로 지낸 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귀신이 곡할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천하가 뒤바뀔 업적을 이루어 놓았다.

 

칸트에게 있어서 아내는 철학이고

뉴턴에게 있어 과학은 아내였다.

승려들도 불교를 아내로 삼아 일생 동안 장가들지 않는 것인가.

 

그렇기만 하다면 내가 이를 공경하고 예배하며,

이를 칭찬하고 구가하여서 장가들지 않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

 

옛사람들의 승려의 결혼을 계율로 금지하여

부처님을 숭상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계율을 해제하여

부처님을 손상한들 또 한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

 

다만 시기에 맞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나는 저 불교의 쇠퇴함을 경고하려고

큰 소리로 외쳐보았지만 승려들이 내 말을 듣지 않음으로

정치의 힘을 빌어서라도 시행하려고 하여

전후로 쇠북을 울려 정부에 청원한 것이 무릇 두 번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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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결혼 허용 문제는 

오늘날에도 많은 반발에 부딪힐 문제입니다.

 

만해 스님은 말년에 결혼해서

딸을 한 명 두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 및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만해 스님의 위치에 비해

출가 독신 종단인 조계종에서 만해 스님이 홀대받고 저평가되는 배경에는

대처-비구 간의 싸움으로 5,6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 불교의 아픈 역사와 함께 만해 스님의 결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해 스님은 불교가 산 중에 머무는 은둔 출가 교단이 아니라,

대중들과 호흡하는며 동사섭하며 살아가는 대승 보살적 불교관을 가졌습니다.

 

과거처럼 출가 스님만이 불교 공부와 수행을 독점할 수 있는 시대에서

오늘날은 재가자들도 불교 공부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교도 성직자가 독신으로 사는 천주교와

목사들이 결혼하여 대중들을 교화하는 기독교로 나뉩니다.

그리고, 일본 불교는 스님의 결혼 허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해 스님은 독신 수행자로 살 것인가,

결혼한 수행자로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개인의 불교 철학과 가치에 입각하여 자율로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습니다.

 

불교를 아내로 삼아 치열하게 독신 수행할 수행자는 지금처럼 살고,

결혼해서 대중들과 동사섭하며 살아갈 수행자는 그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모든 승려들을 다 결혼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따라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고,

불교 안팎으로 그것에 대해 거부감 없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사실 절에 가면 우리의 숭배 대상인 문수, 보현, 관음 보살님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머리를 기른 재가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중생 속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대승 보살적 철학에 입각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해 스님은 바로 이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목사나 일본 승려처럼 결혼하는 것도 무방하고

오히려 대승보살적 삶은 결혼하여 사는 재가적 삶이

더 적합한 것으로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만해 스님의 사상은

오늘날 불교계도 깊이 고찰해보아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출가 전통을 잇고 있는

독신 출가 전통(현재 조계종처럼)도 존중하되,

교회 성직자처럼 대승 보살적 회향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재가자들도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트여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갈수록 출가자가 줄어들고 있는 세태 속에

언제나 출가 전통만 고집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 속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가지 형태(독신 출가 교단과 재가 교단)의 그룹이

상호 협력하며 불교적 틀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현 시대에 맞는 불교적 승려의 전통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가자 그룹에서

수행과 보살적 삶에 투철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야 하고

출가 승려들도 불교의 다양성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