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18) - 승려의 단결 >

아울러 만해 스님은 승려의 단결을 주장했습니다.
만해 스님은 여러 장을 할애하며
승려의 단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6가지 형태의 방관자 그룹을 제시하며
이들 방관자 그룹에 대해 거침없는 호통을 쳤습니다.
그리고, 조선 불교의 발전을 위해
승려 그룹들이 방관에서 벗어나 단결을 이루자고 역설하였습니다.
만해 스님이 쓴 <조선 불교 유신론>의
가장 골수가 담겨 있는 '승려의 단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단결 사상
만해 스님은 단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선 불교 유신의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바로 '단결 사상'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점의 불도 모아 놓으면 쇠나 돌을 녹일 수 있고
한가닥 가는 털도 합쳐 놓으면 천 균의 무게를 끌어 당길 수 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뭉쳐 놓았기 때문이다.
................
현재 불교 유신에 뜻을 둔 사람들은
걸핏하면 승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이
단결 사상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세상에 단결하지 않고서 이룩된 일이 없으며,
...............
우리 승려들은 한 절에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도
형식적인 단결은 커녕 정신적인 단결도 일찌기 들어보지 못했다.

2. 6가지 방관자 그룹
그리고, 중국 근대 사상가인 양계초가
방관자를 꾸짓는 글을 지었는데,
이것이 조선 승려들의 현상을 찍은 사진과 같다하며
6가지 종류의 방관자 그룹을 제시하며 이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고
더러워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방관자보다 더한 것이 없다.
이들은 인류의 해충이고 세상의 원수이다.
방관자를 구분하면 6갈래가 있다.
첫째로는 혼돈파(混沌派)가 있다.
깜깜하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고
세상의 흥망은 처음부터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혼돈스런 자들이다.
이들은 참으로 방관파 가운데서도 천민인 것이다.
이들은 승려 가운데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식자들이 그들이다.
승려 전체의 10분의 9는 모두 이파에 속하는 떼거지들이다.
둘째로는 위아파(爲我派)가 있다.
속담에서 말하는
'벼락이 쳐도 편하게 앉아서 보따리를 찾는다'는 자들이 이들이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모르지는 않으나,
이 일을 하더라도 나에게 이득이 없고
이 일을 내버려둬도 나에게 손해가 없으니
내가 왜 고통을 씹으면서 모험을 하고 방관하는
무사주의를 택하지 않겠느냐는 무리들이다.
우리 승려 가운데서 이른바 분수를 지켜 몸조심을 하는 자와
재산을 모으는 수전노가 모두 이 파에 속한다.
세째로는 오호파(嗚呼派)가 있다.
저 무리들은 탄식하고 한숨짓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유일무이를 삼는 자들이다.
시대가 위태로워 망한다고 하면
진실로 위태롭기는 하나 어찌 구할 길이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는 자들이다.
승려 가운데는 마음이 있으면서 지혜롭지 못하고,
지혜가 있으면서 용기가 없는 자들이 이 파에 해당된다.
아아. 그러나 조선 승려들 중에서
비록 이 파라도 해당되는 사람이나마 몇 사람이나 될까.
넷째로는 소매파(笑罵派)가 있다.
이 파는 늘 남의 배후에 서서
매정한 말과 욕설로서 비평하는 자들이다.
한편으로 수구를 꾸짖으면서 또 유신을 욕하기도 하고,
소인을 꾸짖으면서도 또 군자를 욕하기도 하는 자들이다.
공연히 망령스런 투기만을 일으켜서 쓸데없이 비웃고
꾸짖는 것만 일삼아 억지로 남도 실패하게 하여
나와 남이 같이 패망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과연 또 무슨 심술인가.
다섯째로는 포기파가 있다.
포기파는 자기는 아무일도 하지 못할 사람이라 여기고
남에게 언제나 기대하고 자기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정치는 부유층에게 기대하고 도는 성인에게 기대하고
성공은 영웅에게 기대하는 자들과 같은 부류이다.
포기하는 자는 실로 인도(人道)의 죄인이다.
승려 가운데 남을 성인의 경지로 높이 밀어올리는 자와
단견외도를 지닌 자가 이 파의 주인공이다.
여섯째로는 대시파(待時派)가 있다.
대시파는 사실은 방관자이면서도
스스로 방관자가 아니라고 하는 자들이다.
때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자는 세태가 변하는 방향을 옅보다가
곁에서 그 찌꺼기 이익을 주워 가지고자 하여
세상이 동쪽으로 향하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가는 자들이니,
방관파 가운데서 가장 교활한 자들이다.
승려 가운데서 천명이라든지 자연의 섭리라든지
성력(聖力)이라든지 신조(神造)라든지 하면서 떠들면서
때가 오면 바람이 일어 배를 등왕각으로 보낸다는 시를
높이 읊조리는 자들이 모두 이 파에 속하는 자들이다.

3. 방관하지 말고 단결하자
그리고, 승려들이 이러한 방관자가 되어
세상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세태를 책망하며
부처님과 부모와 중생들의 은혜를 하나라도 갚을 것이 없으니
방관하지 말고 뭉치자고 역설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뜻을 본받지 못해
부처님과 부모와 중생들의 은혜를 배반하고 하는 일도 없고
이루는 일도 없어서 교세를 쇠퇴시키니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다가 헛되이 죽으면 극락에 가겠는가?
지옥에 가겠는가?
마땅히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같은 마음으로 서로 힘을 합해서
방관하는 데로 뭉치는 힘을 일에 힘쓰는 처지로 옮겨
기필코 국리민복의 일을 꾀하면
우리 부처님의 중생 제도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전날에 지은 죄 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면제받을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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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속담에 "벼룩 서 말은 몰고 갈수 있어도
중 세 명은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스님들이 그만큼 아상과 고집이 세어서
단결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만해 스님이 지적한 승려의 단결 문제는
단순히 스님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만해 스님이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불교인들에게 호소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이 정말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혼돈파인지,
나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그렇지 않으면 방관하는 위아파인지,
늘 질질짜고 못난 소리만 하며 세상을 한탄만 하는 오호파인지,
항상 뒷전에서 조그만 트집만 잡아 욕과 비난만 던지는 소매파인지,
남에게 의지하려 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포기파인지,
항상 때가 아니라고 조그만 개선의 노력도 하지 않는 대시파인지
깊이 숙고해보아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만해 스님의 방관자론을 읽으면 속이 뜨끔해집니다.
만해 스님은 불교를 위해서건,
민족을 위해서건, 개인의 진보를 위해서건
방관하지 않고 참으로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만해 스님에게 작은 결점이나
과격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만해 스님이 불교와 세상을 사랑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을 보면
작은 결점은 태양 속의 반딧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해 스님이 얼마나 불교의 방관자를 증오하고
불교도의 단결과 참여를 통한 대승 보살적인 삶을
지향하고자 했는가를 잘 살펴보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격동의 시대와 세상의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적극적 관심과 참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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