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승주 선암사>
1. 아름다운 절집, 선암사
순천(승주) 선암사.
선암사는 조계산(884m)을 사이에 두고
산 건너편에 송광사와 마주하고 있는 도량입니다.
선암사는 얼마 전 유네스코 산지승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자신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소개하여 이미 유명해진 사찰입니다.
선암사는 ‘절집’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절이면서도 전각배치와 정원이 평안해서
전통 한옥 마을을 거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2. 조정래 작가와 선암사
선암사는 '선교양종대본산(禪敎兩宗大本山)'이라고 합니다.
교학의 학문과 선종의 수행이
잘 조화를 이룬 도량이라는 뜻입니다.
선암사는 1900년대 김경운, 진진응, 박한영 같은 근세의 대강사가 주석하며
그 가르침을 듣기 위해 수많은 학승들이 몰려들었던 도량입니다.
그 맥은 <태백산맥>을 쓴 소설가 조정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정래의 아버님인 조종현 스님은
학승(學僧)이자 시조 작가로 일본 유학 후
선암사 대웅전에서 최초로 결혼식을 올린 스님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선암사 아랫마을에서 태어나
선암사를 거닐면서 문학적 감성을 기르며
<태백산맥>과 같은 훌륭한 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조정래 작가가 거닐던 선암사
계곡길을 올라가면 계곡 초입에 붉은 글씨로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정토행자가 걸어가는 불법의 길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에 있슴을
선명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승선교
조금 더 올라가면 선암사
제1경이라는 승선교(昇仙橋)가 나타납니다.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다리’라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정감 있습니다.
무지개형 다리(홍예교)로 만든 이유는
천상 세계로 오르려면 무지개를 타고 간다는 발상 때문일 것입니다.
극락으로 올라갈 때도 아미타 부처님과 내영 보살님들과 함께
저 멋진 승선교를 타고 올랐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승선교는 호암대사와 관세음보살에 얽힌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했다가 실패하자 벼랑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난데없이 한 여인이 나타나 손으로 받아내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렸더니 여인은 살짝 웃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호암 대사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현신임을 깨닫고
여인의 얼굴을 기억해서 목조관세음보살상을 조성하여 관음전에 모셨습니다.
선암사 관음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이 바로 그 관세음보살님입니다.
4. 강선루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루(降仙樓)입니다.
선암사는 풍수지리의 대사인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도선국사의 비보(裨補) 풍수는
지세가 허하고 기운이 빠져 나가는 곳에
법당과 누각을 지어서 비고 허한 기운을 보충해 줍니다.
조계산 장군봉에서 흐르는 기운이
선암사 계곡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강선루를 세웠던 것입니다.
강선루 주춧돌 다리 하나가 길쭉하게
계곡 쪽으로 빠져 있어 묘한 멋을 줍니다.
인공과 자연이 조화된 건축적 아름다움을 보는
우리 조상님들의 안목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5.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계곡길을 올라가면 ‘조계산 선암사’라고
쓴 정감 있는 일주문이 나옵니다.
담벽으로 연결된 일주문은 포근하고 정감이 있습니다.
일주문을 오르면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라는 현판이 드러납니다.
태고종의 총본산이자 교육 도량이라는 뜻입니다.
1950년대 비구-대처 분쟁 이후
대부분의 유명 사찰이 조계종에 귀속되었지만,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태고종 스님들이 주석하고 있습니다.
선암사 대웅전이 고즈넉한
석탑 2기를 거느리고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6. ‘3무(無)’의 절
선암사는 ‘3무(無)’의 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천왕문이 없습니다.
선암사가 등지고 있는 조계산 장군봉이
사천왕처럼 불법을 수호하고 있으므로
따로 천왕문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산악 신앙의 현장인 것입니다.
둘째는, 대웅전 중앙의 어간문이 없습니다.
불자들이 대웅전에서 부처님처럼
열심히 수행하라는 경책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셋째는, 대웅전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협시보살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마구니들의 협박과 유혹을 물리치시며,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계신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웅전에 들어가면 홀로 계신 거대한
석가모니 부처님께 정갈한 마음으로 인사드릴 수 있습니다.
7. 불조전
대웅전 뒷쪽에는 '불조전'과 '팔상전'이 있고,
그 사이로 관음전이 있습니다.
불조전(佛祖殿)은 과거 7불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천불을 나투게 하신
불조(佛祖) 53불, 도합 60불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전각입니다.
우리가 3천배를 올릴 때 과거, 현재, 미래세의
각각 천불, 즉, 삼천불의 부처님께 절을 올립니다.
삼천불의 소의 경전인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는
53불을 지극히 예경한 인연 공덕으로
과거, 현재, 미래세에 각각 천분의 부처님들께서 성불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대승 불교의 다불 사상의 대표적인
천불 신앙의 배경에는 53불이 모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53불은 과거, 현재, 미래세에
무수한 부처님을 나투게 한 모든 부처님들의 불조(佛祖)입니다.
극락 왕생을 발원하며
백련결사를 주창한 원묘 국사 요세가
강진 백련사에서 법화 참회 기도를 할 때
매일 53불께 12번씩 반복하여 절을 하며
참회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저는 예전에 선암사 불조전에서
천배 기도를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 7불과 53불, 도합 60불(佛)의
부처님들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오며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하며
극락 왕생의 정토행자로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환희롭게 절을 올렸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8. 선암매
3무(無)의 도량인 선암사에는 있는 것도 많습니다.
그 중 제일은 대웅전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600년이 된 매화나무들입니다.
'선암매(仙巖梅)'라는 이름이 지어졌는데
매화꽃이 필 때에는 근처에만 가도 매화향이 그윽합니다.
600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봄마다 꽃을 피운다니 놀랍고도 장합니다.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할 때까지
선암매는 여전한 청춘이고 젊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더 이상 수행의 발전을 이루지 못할 때까지
수행자는 여전한 청춘이고 젊음입니다.
언제나 꽃을 피우는 선암매처럼
늘 청춘이고 젊음인 수행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화재가 많았던 선암사는
‘수(水)’와 ‘해(海)’의 글씨를 전각 곳곳에 새겨 놓았습니다.
예전에 선암사 이름이 ‘해천사(海川寺)’였다고 합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량이 선암사라고 생각합니다.
정호승 시인이 지은 '선암사'라는
시를 통해 선암사의 정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