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원당암>
1. 법보사찰 해인사
합천 해인사.
8만대장경을 봉안한 합천 해인사는
삼보 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불리는 큰 도량입니다.
해발 1400m가 넘는 가야산 자락에 자리한 해인사는
의상 대사의 화엄종의 가르침을 계승한 화엄10찰 중 하나였습니다.
2. 대적광전
그래서, 해인사의 가장 중심 전각인 대적광전에는
화엄경의 주(主) 부처님인 법신(法身)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문수 보살님과 보현 보살님의 두 협시 보살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불법의 진리의 세계를 상징하는 비로자나 부처님은
'크고 고요한 진리의 빛의 부처님'으로 불리는데,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부릅니다.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 부처님의 상호에 집중하면
크고 고요한 빛의 부처님이 주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3. 팔만 대장경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세계 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수다라장(장경각)'입니다.
범어로 '경전'을 뜻하는 '수트라(sutra)'를 음역한 '수다라'와
경전을 봉안한 전각인 '장(藏)'의 합성어로 '수다라장'이라고 합니다.
800년전 몽고의 침입에 초조 대장경이 불타고
국란으로 어지럽고 힘든 상황에서도
고려의 국력을 기울여 새롭게 조성한
팔만 장이 넘는 팔만 대장경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8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역사성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천세만세 전하려는 엄청난 불심이 담긴 가치성으로도
우리 나라 최고의 불교 문화 유산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라고 생각합니다.
1011년에 새긴 초조 대장경이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습니다.
1236년 몽골이 다시 침입하자 부처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고자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25년이 지난 1251년에 완성하였습니다.
이를 재조(再造) 대장경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하다가
조선이 건국한 1398년 5월에 내륙의 안전한 도량인 해인사로 옮겨졌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경판은 1,516종 8만 1,258판인데
고려 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 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 대장경'이라고도 합니다.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고
체계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불교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고려 시대 목판 인쇄술의 발달 수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4. 해인사의 창건
한편,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
공주가 난치병에 걸렸을 때
‘순응’과 ‘이정’이라는 두 스님이 기도 해서
낫게 되자 애장왕이 크게 감동하여 세운 절입니다.
애장왕은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별궁을 지어 정사를 보면서
해인사 공사를 직접 감독하며 국태민안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애장왕의 별궁이 있던 장소가 지금의 원당암이라고 합니다.
즉, 해인사의 창건의 역사와 함께 하는 해인사 암자가 바로 원당암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이 서라벌(경주) 북쪽에 있어서
애장왕이 정사를 보던 원당암을 '북궁(北宮, 북쪽의 궁궐)'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5. 애장왕과 진성여왕의 원당, 원당암
해인사에는 여러 암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암자가 원당암입니다.
애장왕 이후 원당암은 신라 3대 여왕 중
마지막 여왕인 진성 여왕이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진성 여왕은 각간 위홍을 깊이 사랑했는데,
각간 위홍이 죽자 슬퍼하며
그를 ‘혜성대왕’으로 추존하고 왕위를 양위한 뒤
원당암에 와서각간 위홍의 위패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원당암이라는 암자 이름은
신라 애장왕과 진성 여왕의 원당
(願堂:개인의 소원을 비는 도량)이었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원당암은 가야산 제1봉인 상왕봉이 보이는
마치 봉황이 알을 품은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6. 원당암 보광전
원당암의 중심 불전은 보광전입니다.
시방 세계를 향해
널리 두루 진리의 빛을 비춘다는 뜻의
‘보광전(普光殿)’에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원당암 보광전은 정토 도량답게 예불을 마치고
'나무아미타불' 정근(염불 기도)를 올립니다.
우리 나라에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는 도량은 많지 않은데,
원당암의 뿌리 깊은 정토신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원당암은 1887년
‘원당정토사(願堂淨土寺)’라 칭하며
중창 불사와 함께 <염불만일회>를 결사하여
‘나무아미타불’ 염불 기도를 대중들이 함께 올린 유서깊은 정토 도량입니다.
보광전 앞에는 독특한 석탑이 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석탑인데,
기단부와 몸통을 벼루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점판암’이라는 검은 돌로 조성하였습니다.
검은 점판암으로 된 흔치 않은 아담한 석탑을
볼수 있는 흔치 않은 도량이 원당암입니다.
7. 혜암 스님과 달마선원
해인사는 조계종정이자 선승이자
3000배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이 주석했던 도량입니다.
성철 스님 입적 후 조계종 종정을 지내셨던 분이
해인사 방장 스님인 혜암 스님입니다.
혜암 스님이 하셨던 유명한 명언이 “공부하다 죽어라”입니다.
혜암 스님이 무서운 정진력으로 참선 수행을 했던 미소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원당암 바로 아래 달마선원이 있는데,
재가자들도 하안거와 동안거를 할 수 있는 선방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정토 도량으로 열심히 염불했던 수행 도량이
지금은 열심히 참선하는 선수행 도량으로 바뀐 것이 재미있습니다.
가야산의 맑은 기운 속에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불교 문화 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해인사!
그리고, 가야산의 맑은 기운 속에
차분히 염불하고 좌선할수 있는 좋은 수행 도량 원당암!
해인사 가는 길에 꼭 한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