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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21) 두 비구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2. 14.

<법구경(21) 두 비구 이야기>

 

<수원 용주사 천불전>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친구 사이인 두 비구와 관련하여 게송 29번을 설법하시었다.

두 비구가 부처님으로부터 좌선 수행에 관한 법문을 듣고

수행 주제를 받아 정진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한 비구는 아침 일찍부터

모닥불을 피워 숯불을 만들고는

그 화롯가에 앉아 사마네라와 행자를 데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른 한 비구는 주의력 깊게

수행에 정진하면서 게으른 비구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비구 형제여, 그같이 행동해서는 안 되오.

비구는 주의력 깊게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형상에 정신을 집중시켜서

그것들의 본래적인 모습을 깨달으려는

일념으로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겠소?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네 군데의 낮은 세계(지옥, 아귀, 축생, 수라)로부터

불어오는 괴로운 바람을 저항하려 하오?

 

그런 사람은 머지않아 거기가 자기 집이 되고 말 것이오.

설사 부처님의 위신력으로도 그러한 게으른 사람을 구해 낼 수가 없소."

그러나, 태만한 비구는 동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부지런한 비구는 충고를 그치고 혼자서 더욱 열심히 수행에 매진했다.


게으른 비구는 초저녁을 화롯가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부지런한 비구가 걷기 정진을 마치고

좌선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부지런한 비구에게 말했다.


"게으른 비구여,

숲 속에 가서 정진한다더니

결국 잠자기 위해서 방으로 들어가는구나.

부처님으로부터 수행에 관한 주제를 받아 왔으면

좀더 열성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렇게 비웃고는 정작 자신은 먼저 방에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그러나 부지런한 비구는 그런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초저녁을 걷기 정진과 좌선 정진으로 균형있게 보낸 다음,

조용히 쉬기도 하면서 열심히 수행해 나갔다.

 

그는 이와같이 열심히 정진한 결과 머지않아

아라한 과를 성취했고 신통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에 비해 그의 동료 비구는 주의력이 없이 산만하고

방황하는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우기 석 달을 보낸 다음 그들은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사왓티의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갔다.

 

두 비구는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옆자리에 공손하게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에게 자상하고 친절하신 태도로 

수행과 생활상에 있어서 불편이 없었는지를 물으셨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래는 너희들이 숲 속에 들어가서 방일하지 않고 주의력 깊게

열심히 수행하여 좋은 결과를 거두었으리라 믿는다."

 

그러자 게으른 비구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저 비구를 가르켜

주의력이 깊은 수행자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는 부처님 곁을 떠나자마자

아무것도 실천한 것이 없이 줄곧 잠만 잤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되물으시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찌했느냐?"


"부처님, 저는 아침에 나무를 주워 모아서

숯불을 피워 화로에 담아두고 불을 쬐면서 따뜻하게 보냈습니다.

저는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꾸짖으셨다.

 

"너는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게으르고 주의력 없이 시간을 보내 놓고서 그렇게 말하다니!

너는 나의 아들(부지런한 비구)과 비교할 때 노둔한 망아지와 같고,

나의 아들(부지런한 비구)은 잘 달리는 준마와 같으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게으르고 혼침한 자들의 무리 안에서도
마음이 집중되어 깨어 있는 현자는
언제나 향상하고 발전한다.
마치 준마가 내달려
둔마(鈍馬)를 뒤에 남겨 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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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닛코 도조궁의 세 원숭이>

 

1. 세 원숭이

 

일본 "닛코(日光)"라는 관광 명소에 가면

"도조궁"이라는 신궁이 있습니다.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궁입니다. 

 

신궁 건물의 한 곁에 있는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있는 3마리 원숭이 조각이 특히 유명합니다.

 

왜 원숭이가 가장 중요한 감각 기관인

눈, 귀, 입을 막고 있는 것일까요?

 

혹자는 번잡한 세상사를 듣지고, 보지도, 말하지도 말면서

초연하게 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혹자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같이

힘겹고 어려운 삶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혹자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일본 천하를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아스의 삶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용주사 천불전 삼존불>

 

2. 마음 제어와 성스러운 침묵

 

그러나, 이 세 마리 원숭이를

법구경 이야기의 관점에서 살펴봅시다.

 

저는 보이고 들리는 것에 정신이 팔리거나, 

생각난다고 함부로 경박하게 지껄이지 말고

자신의 눈과 귀와 입에서  잘 제어하고 다스려서

악에 빠지지 말고 마음 집중을 하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집중의 출발은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을

잘 제어하는데서 출발해야 하며

제어의 중요성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귀에 들리는대로,

눈에 보이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조심성 없고 경박하게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귀와 눈과 입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쓸데없는 수다와 근거없는 험담, 게으름에 빠져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태만한 비구와 같은 삶을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처님의 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법회가 끝나자 비구들이 모여 앉아

너는 출가 전에 뭐를 했네 하면서

쓸데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부처님께서 보셨습니다.

 

부처님은 법의 자리에서는 가르침을 받은 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든지,

아니면 성스러운 침묵을 하라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귀를 제어하고, 눈을 제어하고, 입을 제어하여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쓸데없는 욕망과 나태에 빠지지 말고

상황에 맞게 해야할 말을 하는 것이 참된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수행자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준마가 앞으로 내달리듯이 발전과 향상이 그를 따를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름에 빠지고 쓸데없는 수다와 근거없는 험담으로

시간을 헛보낸다면 노둔한 둔마가 뒤로 쳐지듯이 뒷걸음칠 것입니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은 부처님의 위신력으로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구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