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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9) 쭐라 빤타까(주리반특)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2. 9.

<법구경(19)  쭐라 빤타까(주리반특) 이야기>

 

<안동 봉정사>

 

부처님께서 웰루와나 수도원(죽림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라자가하 은행가의 손자 쭐라빤타까와 관련하여 게송 25번을 설법하셨다.

라자가하에 사는 한 부유한 은행가에게는 손자 둘이 있었다.

큰손자의 이름은 마하 빤타까였고, 막내 손자의 이름은 쭐라 빤타까였다.


큰아들 마하빤타까는 할아버지를 따라

수도원에 가서 부처님의 설법 듣는 것을 매우 즐겨했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가정을 떠나 비구가 되었다.

비구가 된 마하 빤타까는 열심히 수행했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동생인 쭐라빤타까는 매우 둔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생에 과거불(過去佛)인

카사파 부처님의 상가에 출가한 비구였는데,

어떤 둔한 비구를 가리켜 바보라고 자주 놀려대곤 했기 때문에

그 과보로 현생에 둔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이 쭐라 빤타까도 형이 출가한 것을 보고 

비구 생활을 동경하여 마침내 가정을 떠나 비구가 되었다.

 

그러나 머리가 둔했던 탓으로 비구가 된지 넉 달이 되도록

부처님의 게송 한 편도 제대로 외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실망하여 큰 고뇌에 빠졌다.

 

그런 동생을 본 마하 빤타까는

동생이 비구로서 수행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존경을 받을 수도 없으리라 판단하여

차라리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그럴 즈음 당시 유명한 의사였던 지바카가

부처님과 비구들은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이 행사에는 마하 빤타까가 여러 가지 진행 실무를 맡아보았는데,

그는 신자들의 공양을 받을 비구 명단에서 동생인 쭐라 빤타까를 제외시켜 버렸다.

 

그는 동생이 신자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수행력과 덕행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형의 행동은 쭐라 빤타까에게는 매우 심각한 타격이었다.

그는 분한 마음에 이제 비구 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그들 두 비구 형제의

사정을 살펴 아시고 쭐라 빤타까를 부르시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부처님>

 

부처님은 쭐라빤타까를 마루에 앉게 하신 다음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수건을 주시면서 이렇게 이르시었다.

 

“쭐라빤타까야, 너는 지금부터

동쪽으로 앉아서 이 수건으로 마루를 닦아라.

그러면서 수건을 밀고 당길 적마다

‘라조하라낭(더러운 것을 닦아낸다.)’ 이라고 외우도록 하여라.” 

이렇게 이르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른 비구들과 함께

공양을 받으시기 위해 지와까의 집으로 가시었다.


쭐라빤타까는 부처님의 배려에 용기백배하여 열심히 걸레로 마루를 닦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마루를 문지르면서 '라조하라낭'을 외었다.

 

그러다 얼마 후에 보니 마루의 때가 묻어 수건이 뻣뻣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 같은 수건의 변화는 그에게 모든 조건지어진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며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받으시면서 천안(天眼)으로 이 같은 사실을 살펴 아시었다.

 

부처님께서는 지와까의 집에 계시면서 광명을 놓아

쭐라빤타까 앞에 모습을 나투시어 이렇게 설법하시었다.

“쭐라 빤타까여,

천이 더러워진 것은 그 천 조각 혼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란다.

때가 묻어서 더러워진 것이지...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도 역시 때가 있다.  

 

그 때가 무엇인가.

욕망, 갈망, 탐심, 증오, 악심, 진심(성내는 마음), 무지, 어두움이 그것이다.

 

그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한 무지의 때가 낌으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에도

때가 낀 걸레처럼 뻣뻣해지며 사악해지는 것이란다.

 

쭐라 빤타까여,

이러한 때를 완전히 제거하면 수행의 목표는 달성된단다.

그때 그는 아라한이 되느니라.”

 

<봉정사 대웅전 닫집>


쭐라빤타까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용기를 얻어 더욱 현상 관찰에 마음을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 과를 성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둔한 상태가 사라져 아주 지혜롭고 분석력도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

 

한편 지와까의 집에서는 공양이 끝나서

공양 공덕수(水)를 땅에 부으려 하는데 부처님께서 그것을 제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지금 수도원에 누가 남아있지 않은지 물으셨다.

 

그러자 아무도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을 것이니라.

지금 수도원에 비구 한 사람이 있을테니 가서 데리고 오도록 하여라.”

 

그래서 심부름꾼 한 사람이 수도원에 파견되었다.

심부름꾼은 돌아와서 사뢰었다.


“지금 수도원에 일천 명이나 되는 비구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었다.


“그러면 다시 가서 ‘쭐라 빤타까 비구가 누구신지요?’하고 물어 보아라.

그래서 쭐라 빤타까를 찾아내어 이리로 데리고 오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심부름꾼은 다시 수도원으로 갔다.

 

그는 부처님이 이르신대로 일천명의 비구들에게
“쭐라빤타까 비구가 누구신지요? 모시러 왔습니다.”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일천 명의 비구들은

일제히 “내가 쭐라빤타까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크게 당황한 그는 다시 부처님께 돌아와 이 같은 사실을 사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를 수도원으로 보내시면서,

이번에는 대답하는 쭐라 빤타까 일천명 중에서

제일 먼저 대답하는 사람의 가사를 꽉 붙잡아 데리고 오라고 이르시었다.

 

그래서 마침내 심부름꾼은 쭐라빤타까를 찾아낼 수가 있었는데,

그가 쭐라빤타까의 가사 자락을 붙잡는 순간

다른 비구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봉정사 대웅전 천장 문양>



이리하여 심부름꾼은 쭐라 빤타까와 함께 부처님 앞에 나타났고,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공양 공덕을 찬탄하는 설법을 하라고 이르셨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던

법문을 다시 되풀이함으로써 당당히 설법을 마쳤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에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서

여러 가지 토론을 하다가 쭐라 빤타까 이야기가 나왔다.

 

한 비구가 말했다.


“형제들,

쭐라 빤타까 비구는 비구가 된 지

넉 달이 되도록 게송 한 편도 제대로 외지 못했었소.

그런데, 그는 자신을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니,

그는 이제 더 이상 바보가 아닌 것이오.”

이때 부처님께서 들어오시어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었는가?”


비구들이 사실대로 사뢰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신의 모든 힘과 의지력을 다해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 노력하면 목표 달성에 실패하지 않느니라.

그런 비구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지혜의 보고(寶庫)로 만드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으뜸가는 노력과 주의력으로 마음 집중을 수행하여
잘 억제하고 단련된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는다면
어떤 홍수도 그를 휩쓸어 가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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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 대웅전 천장 문양>

 

1. 문(聞)-사(思)-수(修) 

 

공부에서 암기력과 기억력은 중요합니다.

 

불교 공부 단계를 문(聞)-사(思)-수(修) 의 3단계라고 합니다.

즉, 부처님 가르침을 잘 듣고, 잘 사유하고, 잘 닦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단계인 "(聞) "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개념을 이해하고 기억하여 사유를 굴릴 수 있게 하는 밑천을 만드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암기력과 총기가 없었던 주리반특이 공부를 잘 할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러나, 주리반특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순종'과 '성실함'의 덕성이 있었습니다.

 

이런 주리반특의 덕성을 보신 부처님은 주리반특에게 맞는 수행의 방편을 쓰셨습니다.

걸레로 마루를 닦아내면서 "더러운 것을 닦아낸다"는 단 한마디 말만 기억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도 그냥 영어 단어만 읽고 외우면 잘 외워지지가 않습니다.

 

문장 속에서 상황을 이해하며 외우거나,

영어 단어를 비슷한 우리말과 연상하여 기억하는 등

연상기억법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잘 까먹지 않게 됩니다.

 

주리반특에게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냥 외우면 잘 외워지지 않으니까

걸레로 때를 닦으면서 직접 몸으로 행하며

눈으로 보고 느끼며 외울 수 있게 방편을 쓰신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방편으로 주리반특은

마루의 때가 묻어 더러워져 있는 걸레를 보고 번뜩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주리반특에게 지성적인 설법을 하셨습니다.

 

더러워진 걸레는 원래부터 더러운 것이 아니라,

때가 묻은 인연으로 더러워진 것이라고...

 

즉, 연기 무아의 가르침입니다.

 

<대웅전 기둥 용문양>

 

2. 해탈과 사성제

 

그리고, 가르침을 확대하셨습니다.

 

마루를 닦는 걸레에만 생각이 머물지 말고 너의 마음을 보라.

 

너의 마음의 때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마음의 때를 씻을 수 있는 것인가?

 

탐욕, 분노, 무지(어리석음)가 바로 중생의 마음의 때이고,

이 마음의 때를 걸레로서 깨끗이 닦아내듯 사성제를 수행하면 수행의 결과를 성취할수 있다.

 

즉, 해탈과 사성제에 입각한 수행의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우둔했던 주리반특은 달라졌습니다.

 

지성적으로 '연기'와 '무아'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납득했고,

해탈을 향한 수행의 지향점과 사성제에 입각한 수행의 관점이 또렷해졌습니다.

 

'연기법'과 '해탈'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납득하게 된 것이고(문 聞), 

스스로 지성적인 사유(사 思)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닦음(수 修)을 통한 증득이었습니다.

 

걸레로 때를 닦는 수행의 목적과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몸'과 '감정'과 '마음'과 '법'의 4가지를 관찰하는 사념처 수행을 닦음에 의해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리반특 이야기는 문-사-수 의 공부 단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수행에서 지성적인 납득과 사유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스승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행해내는 성실함이 왜 중요한지,

방편을 통해 수행의 목적을 알고 핵심을 캐취해내는 중요함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