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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여성의 출가 (부처님의 일생21)

by 아미타온 2023. 9. 4.

< 여성의 출가 - 부처님의 일생21 >

 

<태국의 비구니 스님>

 

1. 마하파자파티의 간청과 여성의 출가

 

부처님의 아버님인 숫도다나왕(정반왕)이

돌아가시고 얼마 후의 일입니다.

 

부처님은 카필라성 교외에 있는

니그로다 동산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의 이모이자 어린 시절

부처님을 양육했던 마하파자파티가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부처님께 자신도 출가하여 수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며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부처님은 카필라 성을 떠나

바이샬리 교외의 마하바나(대림정사)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카필라 성으로 돌아간 마하파자파티는

결코 출가를 단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손수 머리를 깎은 다음 황색 옷을 몸에 걸치고

부처님이 계신 바이샬리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쇼다라를 비롯한

많은 석가족의 여인들도 그녀를 따라 동행하였습니다.

 

맨발로 걸어가니 발은 붓고 얼굴은 눈물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마침내 바이샬리에 도착하여 부처님께

여인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 존자는

여인들을 가엾이 여기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녀들은 여인의 출가를 허락해 주시도록

부처님께 주선해 달라고 아난 존자에게 간곡히 청했습니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 간청했지만,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부처님! 여인들도 불법에 귀의하여

수행하면 남자와 같이 해탈할 수 있습니까?"

"아난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 대답에 용기를 얻은 아난 존자는

마하파자파티가 부처님을 어린 시절

길러주신 은혜를 생각하시고,

여인들도 해탈의 길을 걸어가도록

출가를 꼭 허락해달라고 몇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랐습니다.

 

바로 비구(남자) 승단의 지도와 보호 속에

비구니 수행자들이 생활하고, 수행하고,

계율을 지켜나간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아난 존자는 마하파자파티에게

부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젊은이가 머리를 감고

아름다운 꽃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듯이
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조항들을 계율로 지키며

한평생 소중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마하파자파티는 이와 같이 대답하고

불교 역사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교단은 인도 최초로

여성 출가 수행 교단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여학생들>

 

2. 여성 출가의 배경

 

부처님 당시에 여성의 출가는

상당히 어렵고 신중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부처님은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여성들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남성과 같은 종교적으로 수행하고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해탈의 측면에서 남녀의 차별이

없슴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비구니들 중에

수행과 학덕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고,

여성이 수행에 의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던 사실이 이 진실을 증명해 줍니다.

 

부처님 당시에 비구(남자) 스님 중

10대 제자가 있었던 것처럼

비구니 스님 중에도 10대 제자가 계셨습니다.

 

비구니 중 지혜제일 케마 비구니,

신통제일 웃팔라반나 비구니,

두타제일 기싸 고타미 비구니 등 

깨달음을 얻은 많은 여성 아라한들이

부처님 당대에 존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여성의 출가를 고심하셨고

별도의 조건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여성의 능력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현실 속에서

여성이 출가할 경우 출가 승단의 곤란을

염려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초로 여성의 출가가 이루어진 인도 바이샬리 대림정사>

 

3. 여성 차별의 인도 사회

 

 

첫째, 당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현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습니다.

 

오랫동안 여성을 차별해온 인도적 전통에서

여성이 승려 계급이 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여성을 출가 승단에 받아들이면

승가 안팎에서 엄청난 잡음이 발생하고,

타 교단과 사회에서 큰 비난이 들어오는 문제였습니다.

 

여성 출가를 위한 별도의 조건은

이러한 인도 종교 전통과 사회적 현실을

감안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비구니 교단이 비구 교단의 지도와 보호를 받는다는

방파제를 통해 불교 교단 안팎에서 불어올

험난한 파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부처님의 사려 깊고 지혜로운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비구 스님의 지도와 보호를 받는다는 계율은

결국 여인들을 승가에 입문하기 위함에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수행적 남녀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행적 남녀 차별을 끝내기 위한 계율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엄격한 카스트와

남녀 불평등이 존재하는 인도에서

여인들이 출가 수행자가 될 수 있었고,

여성 교단이 생긴 것은 불교가 최초였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당시 인도는 오늘날처럼 승원(사찰) 체제가

안전하게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홀로 숲 속에 들어가 명상하는 수행 전통으로

출가 수행이 치안적으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서 여성이 홀로 수행한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실제로 비구니 스님들이 숲속에서

홀로 수행하다가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 적도 많았으며,

도적이나 맹수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보호 조항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세째, 당시 사회 전통에서

남성 의존적으로 살아왔던 여인들이

출가 수행할 때 현실적으로 여러 면에서

비구 교단의 보호와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생리적으로 보더라도

출가 단체 생활을 할 때

남자 스님들에 비해 여자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율들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비구니 스님>

 

4. 여성 출가와 해탈

 

여인의 출가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은 집안에는

도적이 침범하기 쉽다.

또, 논밭에 여물 것이 성기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이와 같이 여성이 출가하게 되면

수행의 순결이 유지되기 어렵다.

큰 연못 둘레에 둑을 막아 물의 범람을 막듯이,

나는 비구니들에게 몇 가지 계율 조항을 만든 것이다."

 

부처님은 출가를 열망하는 여인들을

자비롭게 바라보시면서도,

여인들의 출가로 인한 교단 안팎의

현실적 곤란을 분명히 직시하며

불교 교단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계율로서 지혜롭게 제정하신 것이었습니다.

 

마하파자파티도 부처님의 뜻을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도 불교 교단에 여인을 받아들이면

교단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불교 교단 내에서도 혼란이 심할 것이고,

타교단들은 부처님과 승가를 맹비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구 교단의 지도와 보호 속에 수행하는 것이

사람들의 비난으로부터 불교 교단을 보호하고,

여인들의 원만한 수행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훗날 여성들의 종교적 입문이 일반화된다면

언젠가는 이 조항이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지혜로운 방편 속에서

여인들이 출가 수행자로 입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녀 평등이 구현된 오늘날도

여인 출가의 스토리가 비구와 비구니를

차별하는 독소로서 작용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참다운 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성의 출가 수행 전통이 일반화되어지고,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사회적, 문화적 풍토에서

비구니 스님에 대한 불평등한 조항들은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무튼 부처님의 자비로운 여성 출가가 허락된 이후

훌륭한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깨달음 성지 붓다가야에서 수행하는 여성 불자>

 

5. 한 비구니 스님의 게송

 

오늘은 부처님 당시의 한 비구니 수행자의

멋진 게송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처님 당시 '키사 고타미'라는

한 비구니 스님이 숲 속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악마 '파피만'이 나타나

그녀의 수행을 방해하려고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말했습니다.

 

"그대! 아들을 잃어버리고

홀로 슬퍼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외롭게 숲 속 깊이 들어와

혹시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시를 들은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언제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아니고,

남자를 그리워하던 것도 이미 지난 일일세.

나는 이제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으니,

벗이여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

모든 쾌락은 부서졌고,

어두운 구성 요소는 모두 파괴되었네.

죽음의 군대에서 승리하여

속세의 번뇌 없이 나는 살아간다네."

 

키사 고타미의 시를 들은 악마 파피만은

놀라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키사 고타미'라는 위대한 비구니 수행자의 해탈의 노래는

여인 성불의 가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21)  여성의 출가>

https://youtu.be/KN7zG30epvQ?si=2XmvuSIo9lgRODo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