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 사찰 기행(16) - 교토 기온 거리의 선종 도량, 겐닌지(건인사)>
1. 기온 거리의 도심 사찰, 겐닌지
교토 겐닌지(建仁寺).
겐닌지는 교토의 제일 번화가인 기온 골목에 있습니다.
교토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유서 깊은 도량입니다.
골목길 끝에 법관사 오층탑이 보입니다.
이른 시간에 가면 도심 속 한적한 공간을 걷는 맛이 꽤 좋습니다.
겐닌지 삼문.
장대합니다.
삼문 건너 보이는 전각이 법당입니다.
법당은 2층 형태입니다.
겐닌지는 오전 10시부터 입장이 시작됩니다.
2. 풍신뇌신도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풍신뇌신도.
에도시대의 전설적인 화가 다와하라 소타쓰의 작품입니다.
교토 여행 교통 카드인 이코카 카드 그림도 이 풍신뇌신도인데,
이 멋진 그림을 눈앞에 보게 됩니다.
풍신, 뇌신이라는 발상부터가 너무 멋지고,
바람주머니, 북의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고,
박진감하며, 바탕을 금판으로 처리한 밝음하며, 너무나 호쾌한 그림입니다.
살아 있는 표정하며
구름을 딛고 있는 발의 생동감하며
멋지구리입니다.
전시돼 있는 것은 진품은 아닙니다.
복제품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바람신(풍싱)과 번개신(뇌신)은
인도에서는 인드라, 제석천과 같은 최고 권위의 신입니다.
그 바람신과 번개신을 단순하면서도 활달하게 표현했습니다.
일본이 왜 에니메이션 강국인지 이 풍신 뇌신도를 보면 감이 옵니다.
선종 특유의 활달함을 느낄 수 있는 풍신뇌신도입니다.
풍신뇌신도 옆에는 재미난 필체의 서예 병풍이 있습니다.
방장실에 들어서는 제일 첫 방에
이렇게 해학적인 풍신 뇌신도와
호방한 글씨의 서예 병풍을
자리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禪)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그림과 서예로서 퍼포먼스로 나타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상식과 일상을 뛰어넘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힘이
선(禪)에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 가레산스이 방장 정원
방장실에 들어섰습니다.
모래와 돌과 나무로 세계를 표현한 가레 산스이 정원입니다.
중간중간에 마치 섬처럼 이끼 동산 위에 바위를 얹어 놓았습니다.
그 섬을 중심으로 동심원이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 동심원을 지나 일자의 파동이 반대편 숲으로 이어집니다.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가 하면 누워 있는 바위도 있습니다.
각각의 섬마다 나름 개성이 있다는 것을 저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여유로우면서도 정갈한 맛이 있습니다.
이 우주를 정원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는 파동치고,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나무와 돌이 있는 풍족한 섬이 되고,
때로는 바위만 있는 적막하고 쓸쓸한 섬이 되는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하며 조화를 이루는 이 우주(세상)을
이러한 형상의 정원으로 상징화하여 묘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우주는 또한 우리의 마음에 포섭됩니다.
겐닌지 방장은 동서남북 어느쪽의 툇마루에 앉아도
각각 방위의 정원을 감상하며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멋진 도량이 있다니!
정원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온합니다.
그러다 방장실 내부를 보면
성난 용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봅니다.
활달하고 자유로운 용의 기상을 느끼며
좌선하며 마음을 닦으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졸거나 혼침에 빠지지 말고,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깨어있으라는 경책을 담고 있습니다.
4. 화경청적(和敬淸寂)
우리나라 선불교도 임제종 계통의 선불교이고,
겐닌지의 일본 선불교도 임제종 계통의 선불교입니다.
그러나, 절의 분위기나 선방의 분위기가 자못 다릅니다.
우리 같으면 면벽 참선하는 선사의 모습이 나와 있으련만,
일본의 선 수행자는 정원을 바라보며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화경청적(和敬淸寂).
평화로우면서도 공경스럽고,
맑으면서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다.
일본 선종에서 도달하려는 마음 세계가
바로 '화경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환경인 객관 대상이 미치는 영향력이 큽니다.
자신을 깨울수 있는 평화롭고 공경스럽고
맑고 고요한 환경 속에서 수행한다면
마음에 덕지덕지 때에 물든 걸레같은 인간이 아니면
자신의 화경청적한 덕성을 키워나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네모, 세모, 동그라미 정원
방장실 북쪽은 또한 여러 방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방들 사이의 작은 공간을 가레 산스이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쁩니다.
네모난 공간에 원형의 섬,
그리고 동심원...
그 사이로 세모 지붕이 함께 있습니다.
동그라미와 네모와 세모.
저 정원의 모습을 저렇게 피카소처럼 추상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뒷켠의 다다미 방에는 일반인들이 들어가
자유롭게 쉴수 있도록 절에서 배려를 해놨습니다.
이런 국보급 절에서
큰 대 자로 누워 있는 건 상상도 못 해 봤는데,
일본에는 대 자로 누워도 되는 절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선가에서 많이 들어봤던 말입니다.
누워서 자는 사람,
앉아서 쉬는 사람,
스마트폰 검색하는 사람...
겐닌지에서 선가의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배낭을 배개 삼아 30분 정도 단잠을 잤습니다.
30분 단잠으로 몸이 개운해졌습니다.
겐닌지.
피곤한 관광객의 피곤까지 배려해주는 정말 좋은 절이었습니다.
일어나니 달마 스님이 저를 노려보며 한 방을 날립니다.
"불식(不識)"
허걱~~
피곤한 관광객들은 일부 누워 있지만,
겐닌지의 사경하는 방에서는
아름다운 사경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1,000엔을 내면
저렇게 앉아서 사경 정진할수 있습니다.
꼿꼿이 앉아서 사경에 집중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툇마루에 걸터 앉아 대화를 나누는
두 기모노 아가씨의 모습이 예쁩니다.
어릴 때 우리가 놀던 것처럼 어린 아이들이
허리에 허리를 잡고 떼를 지어
즐겁게 노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6. 금당과 에이세이 스님
겐닌지 금당에 들어섰습니다.
겐닌지는 일본 임제종의 개조인
에이세이(영서(榮西) 1141~1215) 스님이 세운 절입니다.
에이세이 스님은 14세 때 삭발하고
히에이산[比叡山]에 들어가 천태학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인 1168년
공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중국 송나라에 건너갔습니다.
그는 천태 교학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천태산과 아육왕산(阿育王山)을 순례한 뒤 돌아왔습니다.
40대 후반인 1188년에는 2차로 중국 송나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이 때 중국에 건너간 이유는 인도 성지 순례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적지를 순례하기 위해
송나라에 가서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 가려고 했으나,
당시 중앙아시아 정세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태산 만년사의 허암 회창에게 임제종 황룡파의 선을 전해 받고 인가를 얻었습니다.
4년 동안 송나라에서 공부한 뒤 1191년 귀국하여 교토에 진출하여
도겐(道元)과 함께 선종(禪宗)을 열고 많은 신도들의 공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종을 달가워하지 않는 히에이산 승려 등 기존 교단의 저항에 부딪혀
당시 가마쿠라 막부가 있던 일본 관동 지방을 중심으로 포교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선이야말로 무가(武家)에 적합한 종교라 하여
카마쿠라 막부에 선불교를 진흥시켜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자는
<흥선호국론(興禪護國論)>이라는 글을 지었습니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의 비호를 받으며
교토의 겐닌지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건립하는 등 선종의 전파에 힘썼습니다.
에이세이는 선과 함께 계율을 중시하여
법을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계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에 선 불교를 전한 최초의 스님다운
멋진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금당 천장의 쌍룡도입니다.
입을 벌린 용과 입을 다문 쌍룡은
계율과 선정이야말로
불교 수행의 중요한 두 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겐닌지 경내의 한 부속 암자에 들어갔습니다.
열심히 정원 조경 손질을 하는 조경사 아저씨들을 보았습니다.
얼굴이 마주치자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참... 인사성이 밝은 일본 사람들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런 분들의 웃음어린 노력과 관리 속에서
겐닌지와 같은 좋은 수행터가 대대손손 유지되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달을 찾아 오르는 개구리입니다.
밝은 불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달나라를 향해 폴짝 뛰는 개구리처럼
우리도 힘차게 불성을 찾아 뛰어야겠습니다.
7. 일본 다도의 발상지
다도 발상지를 표시하는 돌입니다.
중국 송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에이세이 스님은
겐닌지를 창건하고 이 곳을 중심으로 차 문화를 일본에 보급했습니다.
즉, 일본 다도의 아버지가 바로 에이세이 스님입니다.
오늘날 일본 자판기를 보면 음료수로
녹차와 오룡차와 같은 대중화된 차 음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승려들이 주로 마시는 고급 음료 문화였던 차 문화가
오늘날 일본 전국민에게 대중화된 출발점이
바로 에이세이의 차 문화 보급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온 시내에 있는 겐닌지.
지금은 상당히 축소된 규모라 거찰의 위엄이 남아 있진 않지만,
교토 최초의 선종 사찰이자, 임제종의 총본산이고,
연력사 인화사와 함께 일본 천황 연호를
절 이름으로 쓰는 3개 사찰 중에 하나입니다.
게다가 일본 차문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니
그 역사적인 위상만은 그 어느 절에도 뒤지지 않는 곳입니다.
기온에 가면 꼭 겐닌지를 참배하며
화경청적의 선의 기운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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