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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교 사찰 기행

일본 불교 사찰 기행(13) - 일본 정토진종 총본산, 서본원사

by 아미타온 2024. 4. 15.

<일본 불교 사찰 기행(13) - 일본 정토진종  총본산, 서본원사>

 

<서본원사>

 

1. 일본 최대 종파 정토진종 총본산, 서본원사

 

서본원사(西本願寺).

 

서본원사는 교토역 근처에 있습니다.

 

'본원(本願)'은 부처님께서 보살 시절

부처님이 되기 위해 세운 강렬한 서원을 말합니다.

 

<아미타당 아미타 부처님>

 

 

특히, 아미타 부처님을 신앙하는 정토 신앙에서

본원은 아미타 부처님의 보살 시절인

법장 비구 때 세운 48대원을 '본원(근본 서원)'이라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의 다른 명호인 나무불가사의광여래>

 

 

정토 신앙에서는 48대원 중에서도 제18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 18원은 "아미타 부처님을 공경하고 극락 왕생을 기원하며

아미타 부처님의 이름을 10번만이라도 불렀다면 반드시 극락으로 인도하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서원으로 본원 중의 본원으로 불립니다.

 

<거대한 본당 건물>

 

 

서본원사는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에 의지하여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여

극락 왕생하려는 종파인 정토진종 (淨土眞宗) 의 총본산입니다.

 

정토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이라는 뜻으로

정토진종(淨土眞宗)이라고 합니다.

 

정토진종은 일본에서 가장 교세와 신도수가 많은 종파입니다.

 

<아미타당과 어영당>

 

2. 아미타당

 

16세기에 건립된 서본원사에 들어서면

두 개의 큰 건물이 보입니다.

 

하나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아미타당이고,

또 하나는 정토진종을 창시한 신란 스님을 모신 어영당입니다.

 

<아미타당>

 

아미타당과 어영당

모두 엄청나게 큰 목조 전각입니다.

 

<어영당 내부>

 

다다미로 되어 있는 전각 내부에는

약 3,000명이 들어가 법회를 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직접 봐야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납니다.

 

<아미타불 내영상>

 

아미타당 중앙에는 극락 왕생하는 왕생자를

맞아주는 내영상의 입상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불전은

황금으로 장엄해서 정말 환하게 장엄되어 있습니다.

 

<어영당 내부>

3. 어영당과 신란 스님

 

교조 신란 스님을 모신 어영당입니다.

 

신란 스님이 일본 천황에게 받은 시호가

'견진(見眞) 대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견진이라는 명호와 함께

신란 스님의 목상이 중앙에 모셔져 있습니다.

 

<신란 스님 동상>

 

12세기 일본에서 정토 신앙을

대중에게 널리 전파한 스님으로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에 의지하여

오롯이 염불하여 극락 왕생하자는 믿음의 불교를 일으키신 분입니다.

 

당시 권력자들에 의해 탄압받아 귀양 살이도 했지만,

그 고난에도 일본 전역을 돌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극락왕생에 대한 가르침을 전법하였습니다.

 

<매화꽃과 새>

 

교토의 무사 가문에서 태어난 신란 스님은

어린 시절 조실부모하여

당시 천태종의 총본산인 엔랴쿠지에 9살 때 출가했습니다.

 

그 때 지은 출가시가 남아 있습니다.

 

"내일도 찬란하게 피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벗꽃,

오늘 밤에 불어온 거센 바람에 의해 다 떨어져 버리네."

 

<매화꽃>

 

9살 난 소년이 이 시를 지으며 스승에게 바치자

스승이 인생무상의 문제를 깊이 고뇌하는 신란의

출가 의식을 그날 밤에 당장 거행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생의 무상함에 대해 절감하고

후생(後生)의 문제에 대해 고뇌했던 신란 스님이

깊은 구도의 길 속에서 찾아낸 답은 바로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통한

타력 신심의 길, 극락 왕생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로 연결된 아미타당과 어영당>

 

이 흔들림없는 타력 신심의 길을 상징하듯

아미타 부처님의 아미타당과

신란 스님의 어영당이

회랑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거대한 서본원사 어영당>

 

4. 동서 본원사로 나뉜 정치적 이유

 

교토에는 2개의 본원사가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본원사를 동본원사(히가시 혼간지),

서쪽에 있는 본원사를 서본원사(니시 혼간지)라고 부릅니다.

(일본 말로는 동본원사를 '히가시 혼간지', )

서본원사를 '니시 혼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도 원래 남북한이 둘이 아닌 하나의 나라였듯이

본원사도 원래 하나의 본원사였습니다.

 

<어영당 신란 스님 목상>

 

원래 본원사의 본거지는 지금의 오사카 성입니다.

 

신란 사후 8대 교주인 렌뇨 때 열렬한 포교에 의해

세력이 급성장하여 일본 전국 시대에는 무력 봉기를 일으켜

다이묘 세력을 몰아내고 오사카 성을 근거지로 10여간 오다 노부나가와 싸웠습니다.

 

그러다 워낙 많은 희생이 생기자 협약을 맺어 오사카 성을 내주고

교토로 옮겨온 후에 본산으로 만든 곳이 바로 지금의 서본원사입니다. 

 

<서본원사 마루>

 

교토에 와서도 본원사의 세력이 막강해서 근심이 많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종파 내의 후계자 문제를 부추겨

제2의 혼간지를 세워서 경쟁 구도를 만들어

새롭게 세운 것이 바로 교토역 동쪽에 있는 동본원사입니다.

 

없앨 수 없다면 차라리 분열을 시켜

힘을 약화시킨다는 이이제이 정책의 산물로 나온 것이

동서 두 개의로 나뉜 본원사인 것입니다.

 

<어영당 내부>

 

 

아무튼 정치적 이유로 나뉘어졌지만,

현대 일본 최대의 종파인 정토진종의 두 본찰로서

본당인 어영당과 아미타당의 크기가 교토 1,2위를 다투는 대찰입니다.

 

아무튼 교토의 터줏대감인 서본원사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교토에서 가장 부자절이라서 입장료도 받지 않습니다.

 

<당문(가라몬)>

 

5. 당문

 

서본원사 당문입니다.

 

일본 국보로서

교토의 3대 당문 중 하나입니다.

 

당문(唐門)은 일본 천황과 귀족들만 드나드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엄된 특별한 문을 말합니다.

 

이 당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본성인

후시미 성을 함락시킨 후 후시미 성의 당문을

서본원사에 봉납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문의 장식이 생생하고 아름답습니다.

 

<화려한 당문 조각>

 

조각 하나 하나마다 의미가 있겠지만,

금빛과 색상이 찬란한 화려한 당문 조각을 보니 기분 좋습니다.

 

<사자상>

 

사자들이 각종 포즈로 자유롭게  놀고 있습니다.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서본원사 당문은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당문이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일모문(日募門)'이라고도 합니다.

 

<정토진종 서본원사 종립대학 롯고쿠 대학 본부>

 

6. 정토진종 종립대학 롯코쿠 대학

 

서본원사를 나오면

종립 대학인 용곡(롯코쿠/龍谷) 대학 정문이 나옵니다.

 

서본원사 종립대학인 롯코쿠 대학은

동본원사 종립 학교인 오타니(大谷) 대학,

정토종의 종립 대학인 일본 불교 대학과 함께

일본 정토 불교 연구의 3대 메카라고 불립니다.

 

롯코쿠 대학은 우리 나라 동국대학교처럼 종합대학인데,

학생수가 17,000명으로 캠퍼스가 여러 군데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중 불교학을 공부하는 정토진종 대학 건물이

서본원사와 같이 있습니다.

 

'진종학부(眞宗學府)'라는 금색 팻말이 있는 본부 건물에서

정토 불교의 사상을 연구하고 대중들에게 전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서본원사는 대중들을 위한 포교, 교육 사업에 공을 들여

현재 일본 최대의 불교 종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후대를 위해 시스템적으로 정토진종의 교육과 연구의 전통이

이어질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서본원사 전경>

 

아미타 부처님을 신앙하는

일본 정토진종의 총본산인 서본원사!

 

일본 최대 종파의 근본 도량답게

큰 규모의 위용을 느낄수 있는 도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