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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57)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1) - 카스트 제도

by 아미타온 2024. 9. 30.

<불교 인물사(57)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1) - 카스트 제도>

 

< 인도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암베드카르 동상 >

 

1. 인도와 카스트 제도

 

인도하면 흔히 간디를 떠올립니다.

 

영국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 문호인 세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 또한 간디를 영국과 바꾸지 않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간디에 대한 인도인의 존경과 사랑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도에는 간디와 동시대 사람으로

간디만큼이나 존경받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불가촉천민의 해방자라고 불리워지는 

"암베드카르(Ambedkar)"입니다. 

 

간디는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식민지의 해방을 비폭력적으로 이끈 지도자였습니다.

 

반면 암베드카르는 인도에서 간디보다 더 치열하게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인도 불교 성지 순례를 할 때

인도의 소박한 농촌에서 파란 양복에 둥근 안경을 쓰고

법전을 들고 있는 약간 뚱뚱한 인물의 동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암베드카르입니다.

 

인도는 인류의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발생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갠지스강과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기원전부터 고대 인류 문명의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땅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도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인들이 침입해 오면서부터 분기점을 맞이합니다.

 

아리아인들은 토착 원주민을 정복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브라흐마를 비롯한 많은 신들을 섬기면서 사제 계급과 무사 계급

그리고 평민과 노예라고 하는 독특한 계급 구조를 형성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와 같은 계급 구조는 고대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유독 인도에서는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종교 집단이 세속 권력보다 우위를 점하면서

시대와 문화 그리고 정치권력을 주도해나가며 이러한 계급 제도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른바 '카스트(caste)'라고 하는 사성(四姓) 계급 속에서

천민은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태생적으로 천민 신분으로 태어나 천민으로 살다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카스트에 입각하여 같은 계급끼리

결혼을 시키는 족내혼(族內婚)의 엄격한 결혼 제도가 존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카스트 제도를 종교적으로 뒷받침해주는

힌두교의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권력이

신분 차별이 거의 사라진 현대까지도

관습적으로 불합리한 신분 제도를 존속시키고 있습니다.

 

힌두교의 <마누 법전>이라는 고전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푸루샤(Purusa)'라는 최초의 원형 인간이 있었는데,

푸루샤의 입에서 카스트의 최상 계급인 브라만이 나오고,

무사인 크샤트리아는 두 팔에서,

평민인 바이샤는 넙적 다리에서,

예계급인 수드라는 발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마누법전>의 신화적인 이야기는

힌두교를 신봉하는 인도에서 아직도 영향력이 강합니다.

 

한편, 인도에는 이러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4성 계급 제도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가촉 천민'이라는 ' 카스트'의 축에도 못 들어가는 제5의 계급입니다.

 

이들을 카스트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아웃카스트(out-caste)'라고 불리기도 하고

더러움으로 오염된 사람들이라서 접촉하면 안된다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라고도 불립니다.

 

흔히 수드라를 노예 계급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신화적 구분일 뿐 실제로는 평민 계급에 가깝습니다.

 

인도에서 현실 사회에서 실질적 노예 계급은

바로 '불가촉천민'으로 인도 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에는 '불구부정' 즉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힌두교는 유난히 깨끗함(淨)과 더러움(不淨),

정화와 오염이라는 상대적 관념이 강하게 주장합니다.

 

힌두교인들은 종교적으로 오염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과 접촉을 꺼립니다.

 

이를테면 죽은 사람의 시체나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땀과 같은 배설물을 오염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를 만지는 이발사나

땀이 묻은 옷을 빨래하는 세탁업,

시체를 장사지내는 일,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오염된 사람이라 여기고 접촉을 꺼립니다.

 

그리고, 불가촉 천민이라는 신분 자체가

이와 같은 직업을 택하도록 사회적으로 강요받습니다.

즉, 오직 불가촉천민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인 셈입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종교 체계와 함께

직업과 결혼에 의해 대물림되는 불합리한 사회 속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불가촉 천민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무지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카스트 제도는 상층 계급에만 유리하고 편리한 제도일뿐,

하층 계급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제약과 억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 인도의 이발사 >

 

2.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암베드카르

 

이러한 사회적 억압 구조 속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온갖 차별을 몸소 받으며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의 벽을 허물고

인간 해방의 길을 가고자 노력했던 혁명가가 암베드카르였습니다.

 

그는 영국의 용병 군인인 아버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불가촉천민으로서는 특별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불굴의 노력으로 영국과 미국에 유학하여

경제학 박사 학위를 마치고 변호사 자격을 얻고 귀국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불가촉천민 해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귀국후 당시 불가촉천민에게 허용되지 않던

공공 식수(저수지)의 사용권과 힌두 사원의 출입권을

따내는 천민 해방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카스트의 불평등 구조를 사회적으로 고착화시킨

<마누 법전>을 불사르고 힌두교를 버립니다.

 

그는 단순한 시위나 투쟁만 주도한 것이 아니라,

불가촉천민을 위한 연맹과 정당을 창설하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천민들의 사회적 신분 향상을 위한 법적, 제도적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그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네루가 이끄는 초대 내각에서 법률적 지식을 인정받아

인도 헌법 제정위원장을 맡아 인도 헌법을 초안하기에 이르고

그가 초안한 헌법안 대부분이 의회의 결의를 거쳐 수용되었습니다.

 

암베르카르가 제시한 헌법 조문은 불가촉 천민의 지위 향상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여러 가지 안들이 담겨 있습니다.

 

천민을 위한 교육적 기반 확충과 공공 시설의 사용권,

천민들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공무원직 할당,

국회의 지정의원석 확보, 여성의 인권 존중에 대한

이러한 내용들이 헌법 조문에 명시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네루 내각은 암베드카르를

인도 초대 법무장관으로 임명하기에 이릅니다.

 

법적으로 불가촉천민에 대한 개선안이 마련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차별대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직을 사퇴하고 종교의 본질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이릅니다.

 

암베드카르는 종교가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죽은 '고목나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이러한 종교는 과감히 잘라내고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종교를 살펴본 후 불교야말로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현대 사회의 보편 정신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종교라고 판단하고 불교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성직자 중심의

안일한 불교 관행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대해

장시간의 연구를 거쳐 <붓다와 불법>이라는 책을 씁니다.

 

<붓다와 불법>은 부처님의 가르침,

곧 사성제와 팔정도를 사회 해방적 차원에서 재해석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1956년 인도 니가푸르 라는 도시에서

50만명의 그를 따르던 불가촉천민들과 함께

22개항의 불교입문맹세와 수계식을 하고

불교로 개종하는 역사적 의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카스트라는 불평등 제도의 뿌리가 되는

힌두교 내에서의 개량이 아니라,

이러한 종교인 힌두교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쫒아 불교로 개종하는 용기있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이러한 암베드카르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 암베드카르가 어떻게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종교 권력에 대해 어떤 문제 의식을 가졌는지,

종교가 사회의 유익과 개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암베드카르의 인간 해방과 평등의 정신이

우리 불교계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할지도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