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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57)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3) - 나시크 선언

by 아미타온 2024. 10. 12.

 

<불교 인물사(57)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3) - 나시크 선언>

 

<암베드카르와 차우다르 저수지>

 

1. 차우다르 저수지 사용권 투쟁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노력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 그리고 변호사 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32살이 되던 1923년 4월,

마침내 인도로 귀환하여 7월부터 봄베이 고등법원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인도에 돌아온 암베드카르는

자신이 영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자유와 인권을 

인도의 모든 불가촉천민이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가촉 천민 해방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번째 투쟁이 차우다르 저수지의 물을

불가촉천민들이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운동이었습니다.

 

1923년 봄베이 입법 의회는 불가촉 천민에게

급수 시설, 우물, 병원, 학교 등의 공공 시설의

이용을 허락하는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에 따라 봄베이(뭄바이)가 있던

마하라 시트라 주의 마하드 시는

1924년 불가촉천민에게 차우다르(chaudar) 저수지의 식수 이용을 허락하였습니다.

 

법적으로는 허용이 되었지만,

카스트 제도의 인습에 매여 있던

인도 사람들은 불가촉 천민이 저수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암베드카르는 1924년, 이 저수지를 불가촉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한 암베드카르는 1927년 3월,

만여명의 불가촉천민이 모여 차우다르 저수지까지 행진하면서

공공 급수 시설에서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이 행렬을 이끌고 차우다르 저수지까지 가서

물을 마시는 시위를 하면서 불가촉 천민의 권리를 외쳤습니다.

 

마하드 투쟁은 인도 역사상 불가촉 천민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벌린 가장 강력한 시위였습니다.

 

그러나, 불가촉천민이 차우다르 저수지의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차우다르 저수지가 오염되었다고 생각한 카스트 힌두들은 분노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불가촉천민들을 폭행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불가촉천민들이 폭력으로 대응하려 하였으나,

암베드카르의 제지로 폭력 사태는 진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상층 카스트 힌두들은 차우다르 저수지에 몰려가

108개의 항아리에 소똥과 우유와 치즈를 연못에 담그고,

브라만들은 만트라를 읊으며 저수지에 대한 정화 의례를 치루었습니다.

 

불가촉천민들이 단체로 저수지로 가서 물을 마신 것에 대응하여

브라만 계급을 비롯한 카스트 힌두들은 정화 의례를 치른 것이었습니다.

 

카스트 힌두와 불가촉 천민들이

서로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취하면서 사태가 심각해지자

마하드 시 당국에서는 1927년 8월에 차우다르 저수지 개방을 철회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암베드카르와 불가촉 천민들은 

불가촉 천민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1927년 12월 25일,

차우다르 저수지 건너편의 이슬람교도의 당에 모여 행사를 진행하고,

'마누 법전" 화형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마누 법전>에는 베다를 읽은 불가촉천민은 혀가 잘리고,

불가촉천민이 베다를 암송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귀를 납으로 막아 버리고,

베다를 외워서 간직하는 자는 머리를 잘라 버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가촉전민의 차별을 상징하는

<마누 법전>을 불태워 땅에 묻음으로써

불가촉 천민의 차별을 없애자는 당시로서는

아주 혁명적인 의지를 보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하드 시 당국에서는  이 저수지가

주민 개인의 소유임을 주장하는 소송이 제기되었기에

법정 판결이 날 때까지 개방을 할 수 없다고 공포함으로써

이 대회는 일단 중지되었습니다.

 

마하드 투쟁을 통한 차우다르 저수지 사용권 투쟁은

10년간의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1937년에 이르러서야 불가촉천민의 사용 가능 확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암베드카르 동상에 화환을 걸어주는 불가촉천민>

 

2. 카라람 사원 출입 투쟁

 

그리고, 또 한번의 불가촉천민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1930년에 벌어졌습니다.

 

불가촉 천민은 힌두교도이지만 힌두 사원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카스트 힌두들은 불가촉천민이 들어오는 것만으로 사원이 오염되고,

신상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힌두의 신이 오염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암베드카르는 나시크에 있는 카라람 사원에서

불가촉 천민의 사원 출입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라마를 모시는 축제에 불가촉천민이 카라람 사원으로 몰려가자

불가촉천민들의 투쟁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축제 준비 위원회에서

축제 당일에 한해서 참배와 신상의 마차에 대하여 손을 대는 일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실제로 불가촉천민이 라마신을 모신 마차에 손을 대려 하자

카스트 힌두들은 몽둥이로 불가촉 천민을 구타하여 폭력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후 1년 내내 불가촉천민은 카라람 사원으로 몰려갔고,

1년 동안 사원의 문은 굳게 닫혀졌습니다.

 

이에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제도하의

카스트 힌두인의 의식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힌두교와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불가촉 천민들에게 평등하고

안정된 지위와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주는

다른 종교를 선택할 때가 되었다는 것(개종)을

선언하는 나시크 선언을 하였습니다.

 

<암베드카르>

 

3. 나시크 선언

 

암베드카르는 나시크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대중들 앞에서 외쳤다.

 

"불행하게도 저는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 앞에 제가 힌두교인으로 죽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

 

저들(카스트 힌두)이 분노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불가촉 천민인 주제에 감히 자기들과 동등한 지위에 선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모욕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불가촉'이라는 사회적 지위는

이 땅(인도)에서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저주입니다.

 

.................

 

각자의 진정한 영적인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종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에서는

개인의 영혼에 대한 배려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완악한 계급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힌두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올바른 관계나 

바람직한 행동 양식에 대해서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과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힌두교가 이러한 가치를 갖추고 있다고 봅니까?

 

그들은 입으로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품속에는 서슬 푸르게 날이 선 칼을 품고 다닙니다.

 

말만은 성자처럼 하지만,

행동은 개백정처럼 하는 인간들이 이 땅의 힌두교도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온갖 억압과 학대로 인해

우리는 그들(카스트 힌두)뿐 아니라

인도 국민 전체의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치욕적 상황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우리를 억압해 온

힌두교와 그 사회 구조의 족쇄를 과감하게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맛이 변할 수는 있어도

독약을 양약으로 바꿀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땅의 카스트 제도를 철폐하는 일은

마치 독약을 양약으로 바꾸는 일처럼 어렵습니다.

 

힌두교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 의식이

뼛 속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문둥이처럼 대하도록 가르치는 종교 체제 안에서

어떻게 평등과 자유라는 이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까? 

 

힌두교는 저의 양심과 자존심에 분명히 저촉되는 종교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거니와 종교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힌두교가 존재하는 한 여러분은

여러분이 빠져 있는 비운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힌두교인의 노예 노릇이나 하면서

그들의 지시에 복종하고 싶은 사람은

구태여 개종의 문제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인가? 

종교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인가?"

 

불교인인 우리가 물어야할 가장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나라가

'신의 나라, 종교의 나라"라는 미명으로 불리워지는 인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종교적 믿음이 추구하는 가치와 현실은 무엇인가요?

 

암베드카르의 나시크 선언은 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행복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을 맹목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억압하는 가치와 현실 속에 살아간다면

그 종교를 계속 추구해나가야 할까요?

 

그 의문을 암베드카르가 불가촉 천민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시에 불교 교단 내에서는

세속적 신분에 의한 불평등을 철폐하셨습니다.

 

"브라만은 출생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수행을 하겠다고 모여던 깨인 집단이 승가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며 존중하는 교단이었기에

이러한 승가의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가치 인식력으로

인도 사회 전체에는 이러한 평등적 가치를 펼치기에는

엄청난 반발과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인도에서

신분에 의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 암베드카르의 나시크 선언과 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