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바닷다의 반역 - 부처님의 일생24>
1. 신통력에 대한 갈망
데바닷다는 부처님과 같은 석가족으로
부처님의 사촌동생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기억하여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린 아난 존자의 친형이었습니다.
데바닷다는 아주 총명했고 잘생긴
석가족의 왕족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카필라성 방문 때 출가하여
처음 12년 동안 데바닷타는
아주 열심히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선정(禪定)의 수행과 금욕행의 실천,
그리고 가르침을 널리 배우는 방면에서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탐욕의 씨앗이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데바닷타의 마음 속에 내재된
탐욕의 씨앗이 발아되는 도화선이 된 것은
신통력을 향한 강한 욕망이었습니다.
데바닷타는 목련존자의 신통력을 보았을 때
신통력을 가지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신통력을 얻는 법을 배우기를
부처님과 목련 존자에게 청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데바닷타가 신통력을 가지려는 동기가
마음 깊은 곳의 탐욕에서부터 온 것이지,
수행의 참된 목표인 해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를 거절하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거절당한 뒤 데바닷다는
친동생인 아난 존자를 생각했습니다.
암기력이 뛰어났던 아난존자는 깊은 생각없이
그가 얻어 들은 신통력의 수행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데바닷다는 이렇게 얻어들은 지식으로 혼자 공부하여
어느 정도의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얻은 신통력은 데바닷다를
점점 더 사악한 길로 빠지게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2. 교단 장악에 대한 탐욕
신통력을 가진 그의 탐욕은 교단을 장악하고 싶은
권력욕으로 더욱 커져갔습니다.
데바닷다는 같은 석가족의 왕자 출신인
부처님과 같은 자리에 올라 존경과 공양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데바닷다는
마가다국의 태자인 아자투삿투에게 접근했습니다.
부왕인 빔비사라왕과 어머니인 비데히 왕비는
아주 성실한 부처님의 신도였으나,
권력욕이 강했던 아자투삿투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부처님을 깊이 신앙하지 않았습니다.
데바닷타는 아자투삿투 태자의 권력욕과 야망을 잘 알고 있었고,
정치 권력과의 결합이 교단을 장악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바닷다는 아자투삿투 태자의
신임과 지지를 얻기 위해 신통력을 보였고,
아자투삿투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에 신통력 있는
데바닷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미래의 통치자인 아자투삿투 태자의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되어 자신감이 생긴 데바닷다는
부처님으로부터 교단의 영도권을 계승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나이가 드셨으니
아무쪼록 마음편히 은퇴하시고,
불교 교단의 통솔을 저에게 물려주십시요."
이 요구에 대해 부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데바닷다가 3번이나 되풀이하여 간청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상수 제자인 사리불과 목련에게도
교단의 통솔을 맡기고 있지 않다.
하물며 너와 같이 6년 동안이나
군침을 삼키고 있는 자에게
어떻게 교단을 맡길 수 있겠느냐?"
대중들 앞에서
큰 모욕을 당한 데바닷다는
총총히 퇴장해 버렸습니다.
3. 엄격한 두타행
데바닷다는 다시 한번 부처님을 찾아와서
두 번째 제안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수행자는
작은 욕심으로 만족하고,
깨끗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청정한 계율을 지녀야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저는 다음과 같은 5가지 계율을 지키는 것이
청정한 수행자의 도리이며,
이것을 어기면 죄를 얻어 타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출가 수행자는 항상 숲 속에서 살아야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살면 죄가 됩니다.
둘째, 음식은 반드시 걸식 탁발을 해야지,
재가 신자의 식사 초대를 받으면 죄가 됩니다.
셋째, 옷은 분소의(누더기)만 입을 것이지,
재가 신자들이 바치는 옷을 받으면 죄가 됩니다.
넷째, 항상 나무 아래에서만 잘 것이며,
오두막이나 가옥에 들어가 자면 죄가 됩니다.
다섯째,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말아야지,
먹으면 죄가 됩니다.
부처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이에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데바닷타여,
다섯 가지 법이 좋다고 생각하면,
네 스스로 힘써 행할 것이다.
나는 결코 그것을 금하지 아니한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찬양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것을 어떻게 강제할 수 있겠느냐?
숲 속에서만 지내고 싶은 비구는
그렇게 지낼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비구들이 필요에 따라
오두막, 수도원, 마을 또는 시내에서 머무는 것을 여래는 허락한다.
걸식을 하는 것만 원하는 비구는
속가 제자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는 것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
필요하다면 이러한 초대를 받아들일수 있다.
버려진 옷이나 헝겊으로 자신의 가사를
기워입고 싶은 비구는 얼마든 그럴수 있다.
그러나, 세 벌 이상을 갖지 않는 범위 내에
속가 제자에게 가사를 받는 것은 무방하다.
나무 아래에서 자기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오두막이나 가옥에서 자는 것도 무방하다.
채식만을 원하는 비구가 고기나
생선을 먹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살생한 것이 아니라면
고기가 섞인 음식 공양을 받아들일 수 있다."
4. 두타행에 대한 중도의 가르침
데바닷다는 의식주에서 모든 출가수행자들이
엄격한 금욕 수행을 하기를 요구하며,
평생 이러한 수행 가풍을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을
강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금욕행을 불교에서는
두타행(頭陀行)이라고 합니다.
두타행에 대해 부처님은
자율적인 수행의지에 의해
그것을 지켜가는 것은 칭찬하셨습니다.
두타행이 불교 수행자가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욕지족을 통해 수행력을 배양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의 통솔자가 된
가섭 존자의 두타행에 대해서는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두타행의 규정을 지키게 하는 것에는 반대하셨습니다.
엄격한 고행적 규정을 통한 타율적인 욕망의 절제와 억제가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한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고행과 계율이 중생들을 교화할 때
모든 중생들의 근기에 잘 맞는 것이 아닐뿐더러,
계율에 대한 경직된 해석은 일종의 편견이며
불법의 중도 정신에 부합되지 못한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즉, 지나친 금기주의는 계율 정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율 정신을 죽여버린다고 바라보신 것이었습니다.
5. 교단을 분열한 데바닷다의 악행
부처님께서 5법에 대해 거부하자 데바닷다는
부처님이 늙어 수행의지가 식었고
불교수행은 너무 느슨하다며 대중들을 선동했습니다.
데바닷타는 수행의 결과를 얻으려면
오법을 평생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부처님의 팔정도가 자신의 오법보다 못하다고
대중들을 책동하였습니다.
그래서, 500명 이상의 대중이
데바닷다의 의견에 동조하여
교단을 나가서 따로 데바닷타 교단으로 들어갔습니다.
상황은 악화되어 불교 교단은
잠시나마 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의 가장 두터운 신임을 받는 제자였던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데바닷다 진영으로 가서
대중들을 설득하겠다고 스스로 나섰습니다.
두 분이 자신을 찾아오자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도
자기 진영으로 들어온다고 착각한 데바닷다는
뛸듯이 기뻐하며 그들 두 사람이 들어온 것을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데바닷타 진영으로 들어간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잘 설명하였습니다.
두 분의 노력에 의해 데바닷다에게 갔던 대다수의 비구가
원래 승단으로 돌아왔고,
데바닷타 진영의 기세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데바닷다는
포악한 코끼리를 부처님 탁발길에 풀거나,
자객을 매수하거나,
영취산에서 돌을 굴려 부처님을 살해하려 하는 등
극악한 계책을 꾸몄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에 부처님 제자들이 흥분하여
데바닷다를 쳐부수자고 했을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래는 결코 폭력으로 죽지 않는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음은 우리의 법이 아니니
너희들은 마땅히 수행자의 길을 힘써 나아가라"
말년의 데바닷다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아자투삿투 태자의 신임도 잃어버리고,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6. 수행의 동기
불교 교단은 부처님의 교화력과
훌륭한 제자들의 노력,
수많은 민중들의 귀의로 크게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불교 교단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단 안팎으로 부처님을 시기하고
해치려던 세력의 위협이 있었으며,
이러한 어려움과 역경을 헤치고
불교 교단은 성장해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데바닷다의 반역은
초기 불교 교단의 가장 큰 상처요 아픔이었습니다.
석가족 출신의 왕족으로 재능과 용모가 뛰어났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강한 성취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자만심과 독선, 권력욕은
그의 모든 장점을 파괴하였으며,
불교 역사상 최악의 악인이라는 오명과 함께
현세에서의 불행을 그에게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 특히 수행의 동기를 중요시합니다.
부처님께 진실되게 귀의하는 귀의심과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자비심이 없이
지나치게 능력과 결과만을 갈망하게 될 때
수행자의 마음도 탐욕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수행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과 동기를 잘 돌아보고
탐욕에 빠져있지 않은지를 잘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24) 데바닷다의 반역>
https://youtu.be/z9nbBBYHEVU?si=m2uBFYFysrERp6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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