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처님 생애

두타제일 가섭존자 (부처님의 일생25)

by 아미타온 2023. 9. 14.

<두타제일 가섭 존자 - 부처님의 일생(25)>

 

<가섭 존자와 아난 존자 (서울 정각사)>

1. 가섭 존자의 위상

 

가섭 존자는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의 중심이 되어 불교 교단을 이끌었던 제자입니다.

대웅전의 탱화를 보면

부처님 바로 옆에 젊은 스님과 늙은 스님 두 분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스님은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 존자이고,

늙은 스님이 바로 가섭 존자입니다.

 

즉,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을 수호한

가섭 존자의 공덕의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두타 제일(頭陀第一, 의식주에 대한

소욕지족과 무소유를 실천하는 행위)’

제1인자였다고 불리웠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입멸 후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의 흐트러짐을 보고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해서

후세에 전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신 교단의 지도자였습니다.

 

<인도의 미녀>

2. 가섭 존자와 밧다 카필라니

 

가섭 존자의 원래 이름은 ‘핍팔리’였으나,

출가한 뒤 ‘카사파’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우루벨라 카사파 등 배화교도였던

카사파 3형제와 구분하기 위해

‘마하 카사파(대가섭)’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 수행자가 되려는 염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섭 존자의 부모님은

사랑하는 아들이 출가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가섭 존자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부모님은 결혼을 서둘렀고,
후손의 단절을 염려한 부모의 결혼 권유를

뿌리치기 어려웠던 가섭 존자는
한 조각가에게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게 하여

이와 같은 여인이라면 결혼하겠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수소문 끝에

바이샬리 근처의 한 마을에 사는 바라문의 딸인
‘밧다 카필라니’라는 조각의 아름다운 여인상과

똑같이 닮은 여인을 찾아내었습니다.

 

가섭존자는 몰래 밧다 카필라니를 찾아가

세속적 욕망에 얽힌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밧다카필라니도 가섭 존자처럼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섭 존자와 밧다 카필라니는 결혼은 하되

육체적 관계는 맺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 후 12년 동안의 결혼 생활 후

가섭 존자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두 사람은 출가수행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8일만에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고,
밧다 카필라니는 외도 수행자 문하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불교 교단에 여성의 출가가 허용되었을 때

가섭 존자의 권유로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밧다 카필라니는

처음 외도 수행자의 문하에 들어갔을 때
그 뛰어난 미모 때문에 많은 곤란과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사성에서 이미 아라한의 경지를 증득한

전남편 가섭 존자를 만나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았고,
가섭 존자는 그녀를 죽림정사로 데리고 가서

비구니 교단의 마하파자파티 장로니(부처님의 이모님)에게 청해

구족계(비구니계)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니 교단으로 온 밧다 카필라니는

탁발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자신이 걸식하여 얻은 음식의 절반을 그녀에게 나누어주었다 합니다.

이 일이 사적인 정에 연연하여 남에게 의지한다고

비구니 툴라난다에게 비판되기까지
존자와 밧다 카필라니의 도반으로서의 인연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염화 미소와 가섭 존자>

3. 가섭 존자의 두타행


가섭 존자는 두타행과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떠나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두타행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고 권장하신 수행자의 이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교단 내에서도 가섭존자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가치판단의 기준이

부나 권력, 외모 등의 세속적 외양에 치중되어 있어
그러한 기준을 수정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이기 때문입니다.

가섭 존자의 허름한 옷차림이 시작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왕사성에서

탁발을 마치고 잠시 쉬시고자 할 때,
곁에서 부처님과 함께 있던 가섭존자는

자신의 가사를 벗어 앉으실 자리를 마련해 드렸다.

비록 출가자라는 것은 동등하지만,
스승이며 세존이신 부처님을

맨바닥에 앉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였습니다.

다시 가섭 존자는 자신의 가사보다

부처님의 가사가 낡고 허름한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 휴식을 취하시고 일어나시자

자신의 가사를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의 공양을 받으시고

부처님께서 입고 계시던 낡은 가사를

가섭존자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 후 가섭 존자는 한결같이

그 낡은 가사만을 입고 다녔는데,
낡아빠진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다른 수행자의 비웃음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코살라국 슈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도

가섭존자의 행색이 초라하여
다른 수행자들이 아라한인 가섭 존자에게 존경을 갖추지 않고

가섭 존자의 행색에 대해 수근대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설법 도중

그를 부처님의 옆자리에 앉도록 하여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큰 제자로서 손색이 없는

위대한 대아라한임을 교단에 인식시키셨습니다.

이 사건은 부처님께서 꽃을 드셨을 때

오직 가섭 존자만이 그 의미를 알고

빙그레 웃었다고 하는 염화미소(拈華微笑)와 함께

가섭 존자의 위대함을 찬탄하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후대의 선종(禪宗) 종파에서는

가섭 존자의 이 두 사건을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계승했다는
스토리로 만들어 스승에서 제자로 법이 이어지는

사자전승(師子傳承)의 표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섭 존자상>

4. 가섭 존자의 참회


그러나, 가섭 존자가 언제나 부처님으로부터

칭찬만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신 부처님의 제자분들이

한 점의 티끌이나 잘못된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신 분들은

탐욕이나 분노나 어리석음이 없으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아함경 등의 경전에도 나와 있듯이

아라한의 경지에도 차별이 있으며,
가장 최고의 성불의 경지인 구경 열반을 증득한

부처님의 경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과 판단력은

단 한 점의 티끌과 잘못됨은 없으나,
아라한의 가르침과 판단력은 때에 따라

부처님께 경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가섭 존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판카다아 지방의 판카다아지 숲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을 위해 상황에 따라 지켜야 하는 계율에 대해

설법하시고는 계율을 찬탄하셨습니다.

이 때 가섭 존자도 판카다아에 머물고 계셨는데,

이 소식을 듣고는 못마땅해하며,
부처님께서 계율에 대해 찬탄하신 것을 불평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비구는

때묻지 않은 마음자리에 앉아 있으므로
계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섭 존자는 이내 자신의 언행을 후회하고는

코살라국으로 떠난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에게
율의계(律儀戒, 출가한 승려로서

바르게 지켜야 할 행위에 대한 계율)를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스스로 허물을 알고

그 허물을 뉘우치면
미래 세상에는 율의계가 생기고

착한 법은 더욱 자라 줄어들지 않게 될 것이다.

비록 네가 비구의 맨 윗자리일지라도

계율을 배우려 하지 않고

그것을 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만든 계율을 찬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너를 칭찬하면

사람들은 곧 너를 가까이하고

공경하고 존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장로 비구든, 중견 비구든,

어린 비구든 계율을 즐겨 지키지 않으면 칭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로 비구든 중견 비구든,

어린 비구든 계율을 지키는데 힘쓰고,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칭찬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악한 행위를 짓고 악한 과보를 받는 이유가
모두 계율을 지키지 않고

계율을 찬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욕망을 벗어난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다 하더라도 함부로 계율을 파하거나
계율을 업수히 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함과 동시에
계율을 찬탄하는 것은 사람들을 바른 길과

선한 과보로 인도하는 자비심이기 때문입니다.

가섭 존자는 더욱 그후 두타행에 힘쓰는 한편

계율을 지키며 찬탄하고,
사부 대중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공덕에 대해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입멸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집할 때,

계율을 따르도록 결집해서
교단과 불자들이 계율의 길에서 멀어나지 않도록 배려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뉘우침과 배움을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이 입멸하시기 전까지는

사리불 존자나 목련 존자, 아난 존자처럼

교단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신 분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 입멸후

교단의 아라한들과 대중들이
가섭존자를 주저없이 지도자로 인정하
별 혼란없이 꾸준히 수행과 포교에 힘쓸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가섭 존자의 인품과 수행력이 얼마나 고매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염화미소>

5. 교만심

 

의식주에 대한 집착은

참으로 끊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마음 속에 잠재해 있는

자존심과 교만심은 더욱 끊기 어렵습니다.

가섭 존자의 두타행은

다만 의식주에 대한 두타행이 아니라,
일체의 교만심을 끊어버리는 두타행이었기 때문에

더욱 존경스럽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섭 존자는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홀로 수행에 힘쓰면서 아라한이라는 경지에서도
부처님께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어 용서를 구하고

평생동안 수행을 멈추지 않았던 인격자 가섭존자였습니다.

보잘것없는 지식과 습득으로도

금방 교만해지고 우쭐해하는 사람들에게

가섭존자는 아라한의 경지조차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경지가 아니라,
수행을 하고 있다는 분별심과 집착심 없이

쉬지 않고 정진해나가는 자리임을

몸으로 가르쳐주신 위대한 부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아라한이 되신

가섭 존자에게도 가르침을 주시며
더욱더 높은 수행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하셨으니

얼마나 위대한 스승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그 스승에 그 제자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25) 두타제일 가섭존자>

https://youtu.be/DPfABAOs8uU?si=QfQ8Slrj1qxERu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