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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22) - 아미타 여래의 진여법성과 방편법성

by 아미타온 2025. 1. 10.

 

<나무아미타불(22) - 아미타 여래의 진여법성과 방편법성>

 

<부여 무량사>

 

1. 여래 (如來)

 

법장 보살이 성불하여  아미타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아미타 여래'라고도 합니다.

 

'부처님(佛)'과 '여래(如來)'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부처님(佛,Buddha)'은  '완전한 앎', '깨달음', '정각'의 측면에서

부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여래(如來)'는 '진여(眞如, 진리의 세계)에서 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들을 교화하는 부처님'을 개념합니다.

 

'여래'는 '종여래생(從如來生)'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여(如)'는 '여실한 것', '진실한 것'이라는 의미로

'여여(如如)' 또는 '진여(眞如)'라고 말합니다.

 

즉, '진여'에서 이 세상에 오셔서 중생들을

교화한다는 부처님을 우리는 '여래'라고 부릅니다.

 

<부여 무량사 아미타 삼존불>

 

2. 진여 (眞如)

 

대승 교학에서 '진여'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특히, '일심(一心)'을 설하는 <대승기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진여(眞如)'입니다.

 

<대승기신론>은 '일심'을

'참되고 한결같은 본체적인 면'과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상적인 면'의 둘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 둘을 각각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이라고 합니다.

 

<대승기신론소>를 쓰신 원효 대사는 '진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① 진여는 전체성, 보편성, 영원성을 지닌 대총상(大總相)이며,

② 진여는 참된 이해(앎)를 낳게 하는 원리로서의 법(法)이고,

③ 진여는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며,

④ 진여는 일심을 그 체(體)로 하고 있고,

⑤ 진여는 불생불멸로서 시간성을 초월하고 있으며,

⑥ 진여는 망념을 떠나 있기 때문에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문자와 개념으로 알릴 수 있는 것도,

    분석적 사변이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효 대사는 진여를

'본체(체,體)'와

'속성(상,相)'

'작용(용,用)'의 세 측면에서 고찰합니다.

 

 

3. 체(體)

 

진여의 체(體)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현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여 그 자체이며,

본각(本覺)이기도 합니다.

 

이 체의 모습은

범부라 하여 주는 일이 없고

부처라 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4. 상(相)

 

진여의 상(相)은 진여한 마음이 갖는 온전한 덕성입니다.

 

진여의 덕성은

① 대지혜이고 광명이며(대지혜광명,大智慧光明),

② 모든 대상 세계를 남김없이 두루 비추어 주며(변조법계,偏照法界),

③ 진실한 인식이며(진실식지,眞實識知),

④ 본래의 성품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마음이며(자성청정,自性淸淨),

⑤ 영원하고 행복하고 자유자재하고 더러움이 없으며(상락아정,常樂我淨),

⑥ 청량하고 변화됨이 없으며 자재로운 것(청량불변자재,淸凉不變自在)입니다.

 

 

5. 용(用)

 

진여의 용(用)은 진여심의 작용 면에서의 위대함입니다.

 

원효 대사는 진여의 작용을

본각을 회복한 부처님을 통해 설명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진여의 작용이 어떤 까닭으로 있게 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즉, 진여의 작용은

① 모든 부처님이 본래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단계에서 대자비를 발하여

 갖가지 바라밀행을 닦아 중생을 포섭하여 교화하고,

② 대서원을 세워 무한한 겁을 통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계를 해탈시키며,

③ 일체의 중생을 자신의 몸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따로 중생이라는 분별심을 두지 않는데,

 그 이유는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이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원효 대사는 진여의 작용이 있게 되는 이 세 가지 중에서

①을 결과가 나타나게끔 하는 행위, 즉 '본행(본행, 本行)'이라 하였고,

②를 본래의 서원, 즉 본원(本願)이라 하였고,

③을 위대한 능력을 지닌 대방편(大方便)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본행'과 '본원'과 '대방편'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법신(法身)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불가사의한 여러 가지 진여의 작용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작용은 참되고 한결같아 두루 미치지 않는데가 없으며,

중생이 보고 듣는 데 따라서 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진여의 작용은 '본행'과 '본원'과 '대방편'의 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초월자적인 존재가

힘없고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베푸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진여심 그 자체의 작용이며,

진여한 중생심 속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발현되는 작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6. <왕생론주>의 진여법성과 방편법성

 

따라서 <대승기신론소>에서 말하는 '진여'의 가르침에 의하면

법장 보살이 성불하여 아미타불(아미타여래)가 되신 것은

진여의 체(본체)와 상(덕성)과 작용(용)의 펼쳐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중생들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고자 그 모습을 드러내신 아미타 부처님은

진여에서 오셨으며 진여의 덕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본행과 본원과 대방편의 진여의 작용을 중생들에게 펼쳐주시는 아미타 여래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대승 교학적인 측면에서 

진여, 법신, 불성, 법성의 측면에서 

아미타 부처님의 출현과

극락 정토의 장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와 같은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불신관(佛身觀)에 대한 고뇌는

초기 정토 조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정토종의 초대 조사인 담란은 <왕생론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채로운 극락 국토의 장엄과 아미타 부처님의 몸의 장엄,

그리고 극락 보살들의 장엄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법구(法具)의 펼쳐짐이고,

하나의 법구로 흡수된다.

 

그 하나의 법구는 무엇인가?

바로 진여 법성(眞如 法性)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에게는 2가지의 법신(法身)이 있다.

하나는 법성(진여) 법신이고,

다른 하나는 방편 법신이다.

 

법성 법신에 의해 방편 법신이 생기고,

방편 법신에 의해 법성 법신이 나타난다.

 

이 두 법신은 다르지만 나눌 수 없고,

하나지만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펼쳐지고 흡수하는 것이

걸림이 없어 총체적으로 '법신(法身)'이라 이름한다.

 

보살이 만약 진여 법성이 펼쳐지고 흡수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자리와 이타에 능하지 못하게 된다."

 

담란은 '진여' 대신 '법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이 둘은 같은 개념입니다.

 

극락 세계의 장엄과 아미타 부처님의 몸의 장엄,

극락의 수많은 보살들의 장엄은 형상(相)의 세계이고

있슴(有)의 세계이고 다양하게 펼쳐진 사(事)의 세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있게 되고,

펼쳐지게 되었는가?

 

담란은 하나의 법구인 즉 진여 법성을 통해 펼쳐지고,

진여 법성으로 흡수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여 법성의 펼쳐짐을 통해

청정하고 진실된 극락 세계와

아미타부처님과 극락 보살의 장엄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 모든 극락 세계의 청정 장엄의 근원은 진여 법성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에게는 2개의 몸이 있는데,

하나는 법성 법신이고, 다른 하나는 방편 법신이라는 것입니다.

 

법장 보살께서 보살로서의 48대원을 세우고,

한량없는 시간의 바라밀행을 통해

아미타 부처님이 되신 것은 방편 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미타 부처님의 방편 법신은

바로 진여의 세계인 법성 법신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방편 법신과 법성 법신은

다르지만 나눌 수 없고,

하나지만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보살은 이 둘을 알아야지

자리와 이타의 덕성을 갖추게 된다고 합니다.

 

즉, 진실 청정의 진여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리의 노력과

자비와 방편으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이타의 보살도를

함께 구족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법신, 보신, 화신의 세 개념으로 부처님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담란은 두 개념으로 부처님을 이해합니다.

 

담란이 말하는 '법성 법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신의 개념이며,

방편 법신은 이러한 법신의 현현,

펼쳐짐으로서의 보신과 화신이 혼용된 개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