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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21) -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 아미타불(무량수불)

by 아미타온 2025. 1. 6.

<나무아미타불(21) -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 아미타불(무량수불)>

 

<영주 부석사 안양문>

 

1. 불귀의 (佛歸依)

 

보현보살의 10대 행원 중에

"청불주세원(請佛住世願)'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지 마시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사 

이 세상에 언제나 머무시기를 청하는 서원입니다.

 

이 서원을 접하면 보현 보살님의

부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부처님을 깊이 사랑하

항상 부처님과 함께 하고 싶어하고

언제나 부처님이 이 세상에 머무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말인가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불귀의(佛歸依)'라고 합니다.

 

진정한 불귀의는 무엇일까요?

 

보현보살의 마음같은 부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과 언제나 함께 하고 싶고,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머물기를 원하는 그 마음.

 

부처님이 언제나 1번이 되는

깊은 사랑의 마음 상태가 바로 진정한 불귀의라고 생각합니다.

 

대승 불교의 신앙은 부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인 불귀의에서 출발합니다.

대승 불교의 출발이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의 석가모니 부처님>

 

2. 법화경의 불신관(佛身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자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붙탑 신앙이 형성되었고 대승의 부처님에 대한 사유와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면

투명 인간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머무시면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시는 것인가?

 

이러한 대승 보살의 고뇌에 대해

답을 주는 경전이 바로 <법화경>입니다.

 

<법화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은

중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열반의 모습을 취하셨을 뿐,

실상은 부처님의 수명은 한량 없어 열반에 드시지 않고 

보신(報信)으로서 중생들을 교화하는 길에 항상한다고 설합니다.

 

대승 불교 신앙은 < 법화경>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예불과 신앙 행위를 올립니다.

 

부처님은 수행과 보살행의 공덕의 몸인 보신(報身)으로서

우리가 사는 사바 세계에 상주하시며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라는 것을 신앙하며 예불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 우주에는 다양한 부처님의 불국토가 있으며,

각 부처님은 부처님의 본원의 성취에 의해 각 불국토에 상주하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길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믿음 하에서 불국토 왕생을 염원합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3.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 무량수불

 

아미타 부처님은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흔히 '무량수불(無量壽佛)'로 불리십니다.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모셔진 부처님 명호처럼 말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13번째 서원이 있습니다.

 

"내가 부처가 될 적에, 

나의 수명이 한정이 있어서

백천억 나유타겁 동안만 살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제13대 서원의 성취에 의해서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왜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이 되시기를 서원하셨을까요?

 

저는 14번째, 15번째 서원이 무량수불이 되신 이유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4번째 서원은 

"내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성문들의 수효가 한량이 있어서, 

삼천 대천세계의 성문과 연각들이

백천겁 동안 세어서 그 수를 알 수 있는 정도라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라는 서원입니다.

 

'성문(聲聞)'은 부처님의 곁에서

직접 가르침을 듣고 공부하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극락 세계에 항상 상주하시면서 

한량 없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펼치려는 깊은 자비심에서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이 되시기를 서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15번째 서원은 

"내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수명은 한량이 없으오리니, 

다만 그들이 중생 제도의 서원에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을 자재로 할 수는 있을지언정, 

만약 그 수명에 한량이 있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당신뿐 아니라

극락 세계에 태어나는 존재들의 수명 또한 한량없기를 서원하셨습니다.

 

중생들이 노병사, 특히 수명의 짧음에 의해

공부를 지속하지 못하는 가엾음을 통찰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극락에 태어나는 존재들의 수명이 한량 없어서

아미타 부처님과 함께 오래오래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위한 깊은 자비심에서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이 되시기를 서원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미타 부처님 당신만이 아닌

극락 왕생자도 한량 없는 수명으로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무량한 성문 제자들로 배움의 기회가 가득한

극락의 시스템을 만드시기 위해 아미타 부처님은

깊고 큰 서원과 자비와 권능을 통해 극락 세계를 장엄하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의 열반의 모습을 그린 열반도>

 

4. '아미타(amita)' 의 의미

 

아미타(Amita)는 '헤아릴수 있다'는 '미타(mita)'에

부정의 접두사인 '아(a)'가 있어 '무량한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4가지가 무량합니다.

 

1) 광명이 무량하고,

2) 수명이 무량하며,

3) 제자(성문)가 무량하며,

4) 극락 중생의 수명까지 무량하게 하시는 부처님입니다.

 

이 4가지의 무량함은 모두 아미타 부처님의

서원과 자비와 은혜의 무량함에서 옵니다. 

 

처음 부처님의 생애를 읽었을 때

싯다르타 태자와 부왕인 정반왕의 대화의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신다면 저는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 것이 아닌가?'

 

''죽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지?' 

 

'왜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고 하시지?'

 

이러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안수정등의 비유>

 

 

그리고, 안수정등의 비유를 듣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의 의미가 이해되었습니다.

 

탐진치의 단맛에 취해 

세월의 갉아먹음 속에 밧줄이 끊겨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 

바로 '죽음'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하는 

부처님의 고뇌의 무게가 다시금 느껴졌고,

젊은 나이에 저런 깊은 고뇌를 하셨던

부처님의 위대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하백도 그림>

 

아함경에 <안수정등>의 비유가 있다면

정토에는 <이하백도>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하백도>는 죽음의 길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함께 보여주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탐욕과 분노의 죽음의 강을 건너

죽음에서 벗어난 피안의 극락 세계를 열어주시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백도의 길을 힘내서

어서 오라고 격려하고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의

량한 자비에 다시금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보현보살님이 언제나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머무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나도 백도를 붙잡고 아미타 부처님과

언제나 함께 하며 배움의 길을 가기를 서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