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1. 남한강의 비보사찰, 신륵사
여주 신륵사.
우리나라 사찰은 주로 산에 있지만,
신륵사는 독특하게 남한강변에 있습니다.
남한강은 고려, 조선시대 때
개경, 서울로 통하던 강변 물류의 중심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경부 고속도로와 같은 역할을 했던거죠.
신륵사는 고려 시대 때 번창한 도량으로
남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비보(裨補) 사찰입니다.
고려 시대 때는 풍수지리, 도참설이 크게 유행했는데,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으로 천재지변을 막고
국태민안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한강변에 절과 탑을 세운 것입니다.
2. 신륵의 유래
‘신륵사(神勒寺)’라는 절 이름은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고려 고종 때 남한강 건너편 마을에 용마(龍馬)가 나타났는데,
매우 거칠고 사나와서 누구도 길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륵사의 인당 대사가 신력으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 졌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미륵보살님이 나타나
사나운 말에게 굴레를 씌어 용마를 순하게 만들었다 합니다.
한문으로 '륵(勒)'자가
‘말을 길들여 다스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튼 사나운 용마를 길들인 전설이 남아 있는 신륵사입니다.
3. 극락전과 극락전 주련
신륵사의 중심 전각은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입니다.
신륵사 극락전에는 다음과 같은 주련이 있습니다.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마음 머리에 잡아두고 간절히 잊지마라.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
염불하고 또 염불하여 무념처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육근이 언제나 자주 금빛을 발하리라.
이 게송은 고려 공민왕 때
나옹 화상이 지은 게송입니다.
나옹 화상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속가 여동생이 크게 울며 슬퍼했습니다.
나옹 화상은 유명한 선승이었지만,
여동생에게는 열심히 염불해서
어머니와 함께 극락왕생할 것을 권했습니다.
염불할 때 아미타 부처님을 향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할 것인지를 게송으로 여동생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서방 극락정토를
늘 마음 머리에 두고 간절히 염불하고 또 염불하면
우리의 육근이 금빛 광명으로
청정해진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멋진 게송이라고 생각합니다.
4. 나옹화상 열반지
신륵사는 나옹 화상의 열반지입니다.
보물로 지정된 신륵사 조사전에는
지공화상 - 나옹화상 - 무학대사의 3대 조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지공 화상은 중국 원나라 때의 인도 출신 스님입니다.
원나라 수도인 연경에 와서 선의 가르침을 펼쳤고,
고려에도 건너와 3년간 법을 설했다고 합니다.
나옹 화상은 고려와 중국을 넘나들며
지공 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배웠고,
<몽산화상 법어>를 지어 몽산 화상의
간화선(화두를 참구하는 선)의 가르침을 널리 펼쳤습니다.
나옹 화상의 제자인 무학 대사는
태조 이성계의 왕사로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스님입니다.
5. 나옹화상 부도
조사전 뒤 계단을 올라가면
나옹화상 부도탑인 <보제존자 석종>이 있습니다.
'보제존자(普濟尊者)'는 나옹 화상의 별칭입니다.
나옹 화상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로
'널리 중생을 제도한 존자'라는 시호를 하사 받았습니다.
나옹화상은 공민왕 때 양주 회암사에 주석해서
크게 불사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즉위하자 권신들의 모함으로
왕명으로 밀양 영원사로 좌천되었습니다.
나옹 화상은 남한강 물길로
영남으로 내려가려고 신륵사로 오셨다가
병이 깊어져 57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나옹 화상을 따르던 제자들은 크게 슬퍼하며
신륵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고 유골을 둘로 나누어
여주 신륵사와 양주 회암사에 각각 봉안했습니다.
나옹화상의 유골을 모신 석종과
행적을 기록한 석비,
석종을 밝히는 석등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석등은 곱돌로 조성되어 하늘을 나는 천녀상과
용 문양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생에서 노고가 많으셨으니,
나옹화상이 극락에서 평온하게 잘 지내시는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6. 목은 이색 선생과 신륵사
남한강변에는 ‘신륵사 대장각 기비’라는
오래된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말 유학자로 유명한 목은 이색 선생이
나옹 화상 제자들과 함께 새긴 비석입니다.
유학자였지만 불심이 깊었던 목은 이색 선생은
공민왕과 아버지 이곡이 돌아가신 후 명복을 빌고자
<고려대장경>을 인쇄하고자 하는 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대장경을 인쇄하는데는
많은 돈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이색 선생은 나옹 화상 제자들에게 협력을 구하고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했습니다.
대장각 기비 비석 앞면은 대장경을
인쇄한 목적와 공덕을 밝히고,
뒷면에는 대장경을 인쇄하는데 도움을 준
스님들과 신도들의 명단을 함께 새겼습니다.
특히, 대장경 인쇄를 위해
신륵사에 와 있던 스님들의 밥을 해 주었던
공양주 보살의 이름까지 새겨서 그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목은 이색 선생의 따스하고 섬세한 인격을
알 수 있는 감동적인 비석입니다.
7. 강월헌
신륵사 남한강변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누각이 있습니다.
‘남한강에 뜬 밝은 달’이라는
이름의 ‘강월헌’은 나옹 화상의 호입니다.
나옹화상은 신륵사에서
바라본 밝은 달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경치가 참 좋습니다.
8. 신륵사 5층 전탑
강월헌 뒤로는 두 개의 탑이 있습니다.
하나는 벽돌을 쌓은 전탑이고,
다른 하나는 오래된 석탑입니다.
두 탑을 마주하며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화상이 지은 선시처럼
탐욕과 성냄도 다 벗어두고
물같이 바람처럼 걸림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9. 신륵사 은행나무
신륵사에는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특별한 위치에서 은행나무를 보면
마치 관세음보살님이 서 계신 듯 합니다.
은행나무 속 관세음보살님은 합장하고
아미타 부처님을 향해 염불 기도 드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항상 이마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계시는
관세음 보살님의 마음처럼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이
가득한 염불을 올려야겠습니다.
남한강변의 비보 도량, 여주 신륵사!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나옹화상의 염불 게송을 명상하며
아미타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좋은 정토 도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여주 신륵사>
https://youtu.be/I7hoK9aXzUI?si=MyBkjAAVMxCgJz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