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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29) - 범부의 성불과 나무아미타불

by 아미타온 2025. 3. 5.

<나무아미타불(29) - 범부의 성불과 나무아미타불>

 

<야나기 선생과 민예관>

 

1. 아름다움

 

무엇이 아름다운가?

 

사람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성은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주관적인 '아름다움'의 

철학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바로 미학(美學)입니다.

 

일본에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책을 쓴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 라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동국대 김호성 교수님이 번역하여

정토 신앙에 대한 입문서로서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야나기 선생은 평생 아름다움을 연구한 미학자였습니다.

 

야나기 선생 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건너와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졌습니다.

 

단순함과 소박함의 미, 

조선 백자와의 만남을 계기로

야나기 선생은 미학의 길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의 세계적인 불교 철학자이자 선사인 

스즈키 다이세츠의 영향을 받아 불교 철학에도 집중합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정립합니다.

 

야나기 선생은 말년에 ‘미의 법문’(美の法門)'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습니다.

 

이 책은 ‘미의 법문’, ‘무유호추의 원’(無有好醜の願),

‘미의 정토(美の浄土)', ‘미와 법’(法と美)'의

4개의 수필로 구성된 책입니다.

 

정토 사상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4편의 수필을 통해

야나기 선생은 자신의 독특한 미학을 펼쳐나갔습니다.

 

야나기 선생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미(美)'와 '추(醜)'를 구별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합니다.

 

즉, 진정한 미는 '불이(不二)'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미'와 '추', '나'와 '너'라는 차별에서 벗어난

어떤 묘한 미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나기 선생은 조선 백자를 계기로

민중들의 생활 공예품인 민예에 깊은 애정을 가졌습니다.

 

일본 최초로 민예 예술품만을 전시하는

'민예관'을 만든 사람이 바로 야나기 선생입니다.

 

민예는 특별히 뛰어난 예술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평범한 범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범부의 손으로 대량 생산한 일상 생활용품인 민예 속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건강한 작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야나기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서툴면 서툰대로 아름다운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이도다완>

 

2. 이도다완

 

대표적인 민예품이 바로 일본 국보인

'이도다완'입니다.

 

야나기 선생은 조선의 막사발인

이도다완을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라고 칭송했습니다.

 

막사발은 우리 조상들이 밥그릇, 국그릇, 막걸리 사발로

 이용하던 값싼 서민들의 일상 용품입니다.

 

그런데, 대량으로 만들어진 막사발 중에서 이 막사발에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묻어 있다고 말합니다.

 

범부가 만든 하품의 그릇에서

놀라운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정토적 표현으로 하자면

왕생을 해서 성불에 이른 물건이라고까지 칭송합니다.

 

야나기 선생은 여여(如如)하고 무심(無心)하며

자재(自在)하고 적적(寂寂)함으로부터

진정한 아름다움은 탄생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만든 물건에는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기운이 남아 있기 마련인데,

이 막사발에는 어떤 순수하고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힘이 묻어 있다는 것입니다.

 

야나기 선생은 이 막사발의 기운은 

꾸밈 없는 무념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도 다완은 조선의 이름 없는 범부 도공이

끝없는 반복의 작업 속에서

투박한 듯 하지만 자연스러운

천하의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워지려는 욕심을 가지고

꾸밈에 꾸밈을 더하고

의도적으로 미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야나기 선생의 미학은

범부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소박한 아름다움,

즉, 민예론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범부들이 만들고 만들고 

자꾸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갖는

불가사의가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미'와 '추'의 경계를 떠나, 

'자력' 속에 '타력'의 어떤 힘이

더해져 있는 것과 같은 

묘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석굴암과 야나기 선생>

 

3. 범부의 성불

 

야나기 선생이 <나무아미타불>을

쓰게 된 인연은 정토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미학을 정립하는데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예품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문을

정토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나기 선생은 정토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감사하고 따뜻한 가르침은

바로 '범부의 성불'에 있다고 말합니다.

 

민예품의 묘한 아름다움이야말로

'범부 성불'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누구라도 아미타 부처님을 믿고 좋아해서

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10번만이라도 염불하면 극락 왕생으로

이끌겠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제18원은

바로 범부들을 구원(성불)의 길로 이끌겠다는 서원입니다.

 

특별한 조건 없이 아미타 부처님을 믿고

극락 왕생의 마음을 내어 염불하면 된다는

쉬운 길을 만들어주신 것은

범부들도 쉽게 행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나기 선생은 제18원을

'범부 왕생의 원'이라고 말합니다.

 

상품의 사람만이 성불할 수 있다면,

중생의 생활은 어두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범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범부가 성불할 수 있는 진리를

설하는 것이 바로 제18원입니다.

 

정토 행자는 어떻게

범부 성불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가?

 

18원을 믿고 근성 있게 멈추지 않고

염불하는 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범부임을 인정하고

반복과 노력 속에서 정토를 향해 나아가는

염불의 길 속에서 범부 성불의 명품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야나기 선생은 반복과 반복을 거듭하면서

물건은 정토를 향해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끊임없는 반복의 작업을 통해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 불가사의한 힘이 붙는다고 말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마음으로

극락 왕생에 대한 염원을 갖고

염불하고 또 염불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민예의 아름다움이 터져 나오듯

'범부의 성불'과 같은

정토의 묘한 아름다움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