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38) 죽음을 명상한 길쌈하는 소녀 이야기

<법구경(138) 죽음을 명상한 길쌈하는 소녀 이야기>

 

<서산 천장암>

부처님께서 알라위 국 악가왈라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길쌈하는 한 소녀와 관련하여 게송 174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알라위 국의 한 마을에 초청을 받아 가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시고

공양 공덕을 회향하는 법문을 베푸셨다.

 

이 법문에서 부처님은 오온이

허무하게 변한다는 진실을 말씀하시면서

대중에게 죽음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할 것을 간곡하게 권하셨다.

 

죽음을 바르게 인식하고 철저하게 이해함으로써

마침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행자는
"내 생명은 확실하지 않으나, 죽음만은 확실하다.

인간의 생명은 매우 불안정한데 비해 죽음만은 확정되어진 진실이다."
라고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이같은 진실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죽음의 순간이 닥쳐올 때 두려움에 떨며

소리 지르거나 정신을 잃게 마련이다.

 

그래서 마음이 어두워져

자기가 죽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숲 속을 지나다가

갑자기 독사를 만나 두려움에 떨며

소리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죽음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수행을 쌓아 준비하면

그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게 된다.

 

그는 고요하게 안정된 마음으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맑은 정신으로 지금 어느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숲 속을 지나갈 때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다가 독사가 나타나면

지팡이로 머리를 쳐서 굴복시킨 다음

그 독사를 멀리 내던져 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내용의 설법으로

죽음에 마음을 잘 집중하라고

대중에게 간절하게 타이르셨던 것이다.

 

그러나 법문을 들은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바쁘고

자기 생업에 매달려 있어서

법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수행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나이 열여섯이 된 길쌈하는 소녀 하나만이

부처님의 법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죽음'에 대한 마음 집중 수행을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었다.

 

<서산 천장암 경허 선사 기념탑>

부처님께서 알라위 국의 그 마을을 다녀가신 지

삼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지혜의 눈으로

시방 세계를 두루 살펴보시다가

길쌈하는 소녀가 그동안 열심히 수행을 하여

이제 수다원 과를 성취할 시기가 성숙했음을 아셨다.

 

그와 동시에 부처님께서는

그 소녀의 수명도 다했음을 아셨고,

그 소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법의 진리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도 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비구 오백명을 거느리시고

알라위 국으로 가시기 위해 기원정사를 떠나셨다.

 

알라위 국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두 번째로

방문해 주신 것을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 일행을 환영했다.

 

이때 길쌈하는 소녀는 부처님께서

다시 알라위국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제 몸에서 오색 광명이 찬란히 빛나시는

스승님을 다시 뵐 수 있겠구나.

어서 거룩하신 부처님을 뵈러 가야지.

지난번 설법을 들은 이래 나는 그동안 열심히 수행하여

제법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여쭐 것이 많은데 이제 기회가 왔구나.'

 

소녀는 기쁨에 들떠 부처님을 뵙는 날만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아침 베 짜는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로부터 빨리 북실을 감아오라는 전갈이 왔다.

 

소녀는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법문을 듣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분부를 듣지 않으면 아버지가 화를 내며 자기를 때리고

여러 날 동안 고통을 가할 것이니 그 일도 바쁘다고 판단하여,

빨리 북실을 감아 그것을 아버지께 가지고 가는 길에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듣기로 생각을 정했다.

 

이날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고 나서

예전 같으면 곧 공양 공덕을 찬탄하는 설법을 하실 텐데도

웬일인지 그날은 잠잠히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 설법을 요청해 보았지만,

부처님께서는 아직 법문을 들어야 할 중요한 사람이 오지 않았으며,

잠시만 더 기다리면 그 사람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처님과 비구 대중 오백 명이

모두 침묵하며 앉아 있게 되었는데,

부처님의 침묵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신자들 중 한 사람도 기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조용히 말씀하시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경허 스님 참선방>

 

잠시 후 아버지에게 가지고 갈 북실을 다 감은 소녀가

북실을 담은 바구니를 옆에 끼고 급한 걸음으로 나타났다.

 

소녀는 부처님과 대중이 침묵하고 계시는 법당의 맨 뒤에서

부처님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기쁨에 젖어 있었다.

 

이 때 부처님께서 그윽이 소녀를 바라보시자,

가까이 오라는 부처님의 뜻을 눈치 챈 소녀는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부처님 앞으로 다가갔다.

 

소녀는 공손히 엎드려 세 번 절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물으셨다.

이에 대해 소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질문 : 너는 어디서 왔느냐?
답 : 저는 모릅니다.

질문 : 너는 어디로 가느냐?
답 : 저는 모릅니다.

질문 : 너는 알지 못하느냐?
답 : 아닙니다. 저는 압니다.

질문 : 너는 알고 있느냐?
답 : 부처님이시여, 저는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소녀의 모든 대답을 다 들으시고 나서

소녀가 여래의 질문에 잘 대답하였다고 칭찬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청법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 이 소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돌하게 여래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였다고 생각하여

건방지다거나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 먼 사람이니라.

그는 법을 이해하는 눈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달마와 혜가 선사 이야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소녀에게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방금 여래와 주고받은 대화의 의미를 설명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자 소녀는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제가 저희 집에서 출발하여

이 곳에 도착한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부처님께서는

제게 네가 과거 전생의 어느 곳으로부터

태어났느냐고 물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제게

너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신 것은

제가 죽게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태어날지 아느냐고 물으신다고 생각하여

저는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는

제게 네가 언젠가는 꼭 죽는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으신 것으로

생각하여 저는 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는

네가 언제 죽을지 아느냐고

물으신 것으로 생각하여

저는 그것을 모른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소녀가 자세하게 설명하자

부처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중은 어린 소녀의 당돌한 대답에 어리둥절했으리라.

무릇 무지한 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 있나니,

그들은 마치 눈이 없는 소경과 같으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세상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한다.
오직 몇몇 사람만이 내적 현상을 볼 뿐.
마치 몇몇 새들만이 그물을 벗어나듯
적은 수의 사람만이 천상에 태어나며 열반을 이룬다.

 

<경허 선사 벽화>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소녀는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그런 다음 소녀는 아버지가 옷감을 짜는 곳을 향해 떠나갔다.

 

소녀가 아버지에게 도착했을 때

소녀의 아버지는 베 짜는 틀 위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는 딸의 인기척에 깜짝 놀라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엉겁결에 북줄을 힘껏 당겼다.

 

그 바람에 북이 베틀에서 튀어나오면서

뾰족한 북끝이 소녀의 가슴을 찔렀고,

소녀는 그 자리에 쓰려져 죽고 말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자기 잘못으로

딸이 죽었다고 크게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부처님을 찾아가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여

비구가 되었으며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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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선사 벽화>

 

1. 대기 설법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부처님이 너무 빨리 열반에 드신다고

슬퍼하는 아난 존자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연 있는 중생들은 모두 제도하셨다고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포교를 시작하신 45년 동안

부처님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셨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신 배경은 무엇일까요?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은

단순히 4성제 8정도에 대한 자각뿐 아니라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이라는 3명(明)의

능력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번뇌가 없어진 맑은 눈으로

중생의 번뇌를 바르게 통찰하시고

중생들의 근기와 업의 흐름을

살필수 있는 능력이 계셨기에

시의 적절하게 각각 중생들의 번뇌와 근기에 맞는 

맞춤(대기) 설법을 하실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45년의 세월 동안

왕과 장자, 천민에 이르는 다양한 신분과

남녀노소 출재가를 막론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에게

근기에 맞는 가르침을 베푸러 수행의 과위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길쌈하는 소녀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녀가 수다원 과를 이룰 인연과

그녀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할 인과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설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불법에 귀의할 인연을 보시고

맞춤 설법을 하신 것입니다.

 

'죽음'과 '무상'에 대한 첫번째 설법을 통해    

소녀가 불법의 진리에 환희심을 얻은 것을 보고

그 주제를 통해 2차로 수다원 과에 오를 가르침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죽음에 대한 명상

 

부처님은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너는 알고 있느냐? 알지 못하느냐?"

 

이 선문답 같은 질문에 대해

소녀는 부처님의 질문 의도가

죽음과 윤회에 대한 질문임을 파악하여

자신의 생각과 앎을 솔직하고 당돌하게 이야기합니다.

 

참 인상적입니다.

 

선문답 같은 질문이지만,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 담백하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어떤 덧붙임과 거짓이 없이 자신의 앎 그대로를 말합니다.

 

소녀의 대답이

부처님의 질문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듣는 청중들로 하여금 죽음과 무상에 대한

이해를 선명하게 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생에서의 먹는 것, 입는 것, 명예와 같은

오욕락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죽음과 내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내생에 대한 명상과 정리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찾고

이 생에서 바르게 수행하여

좋은 윤회나 해탈을 꿈꿀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언제 닥쳐올지 모릅니다.

 

부처님을 만나 수다원 과를 얻은 훌륭한 소녀도

불의의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그녀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족도, 길쌈 기술도,

바쁘게 살아온 삶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수다원 과를 얻은 수행의 결실과

세상과 인과를 보는 바른 인식이

그녀가 앞으로 맞이할 윤회에 정말로 도움이 됩니다.

 

지금 건강하고 잘 살고 있다고 자랑하며

오욕락에 취해 사는 삶이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잘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그 진실을 보고

수행의 가치를 깨닫고 수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죽음과 내생에 대한 명상과 정리가 필요합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명상은

참으로 중요한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