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국 근대선의 중흥조 경허 선사(3) / 경허 선사의 무애행

경허 선사는 한국 근대 선불교의 새벽을 연 선사로 높이 평가됩니다.
경허 선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에 열중하는 치열한 수행자의 모습과
한국 근대 선불교의 거장이 된 많은 제자들을 지도하는 스승의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경허 선사는 계율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무애적 대자유의 삶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경허 선사의 무애행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참다운 극락 왕생
경허 선사가 서산 천장암에 머무실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경허의 형인 천장암 주지 태허 스님이
인근에 사는 갈산 김씨네 사십구재를 올리려고
장을 크게 보아다가 온갖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라
동네에 큰 제사나 잔치가 있다고 하면
떡과 과일을 얻어먹으려고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천장암에서 갈산 김씨네 사십구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천장암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법당 안에 차려놓은 온갖 떡과 과일에
동네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군침부터 삼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사십구재를 올리려고
주지 태허 스님이 법당으로 들어오고 경허 선사도 법당에 들어섰습니다.
지극정성으로 사십구재를 올려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려고
갈산 김씨네 가족들도 엄숙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사십구재를 올리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법당 밖에 구름처럼 몰려와서
법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경허 선사는 느닷없이 법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그러더니 떡과 과일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들고는
법당 밖에 서 있던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닥치는 대로 나눠주었습니다.
주지 태허 스님이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아직 제사도 지내기 전에 떡과 과일을 나눠줘 버리다니!”
상주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이때 경허 선사가 한마디 했습니다.
“제사는 바로 이렇게 지내는 게 제대로 지내는 것입니다.
영가께서 극락왕생하려면 좋은 일, 착한 일을
많이 베풀어야 하는 법이거늘,
여기 모인 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과 과일을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 공덕으로 영가께서는 반드시 극락왕생하실 것이오.”

(2) 스님인가? 거렁뱅이인가?
당시 스님들은 신도의 시주가 귀했기 때문에
주로 탁발을 많이 다녔습니다.
서산 천장암에 기거하던 스님들은
누구나 바랑을 메고 멀리 해미읍까지 탁발을 나가곤 했습니다.
물론 경허 선사도 직접 탁발을 나갔습니다.
하루는 경허 선사가 해미읍 어느 솟을 대문 앞에서
탁발을 하려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참 동안 목탁을 두드리니 이윽고 대문이 열리더니
밥술깨나 먹고 행세깨나 하고 살 법한 양반이
거드름을 피우며 경허 선사께 말했습니다.
“우리 집 대문 앞에 와서 목탁을 치는 것을 보니
곡식이라도 좀 얻어가자는 것 같은데,
그대는 과연 중이란 말인가?
거렁뱅이란 말인가?”
경허 선사는 합장하여 예를 갖춘 후에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절에서 살며 수행하고 있으니 중이 분명하옵고,
오늘은 양식을 탁발하러 왔으니 거렁뱅이 또한 분명한가 합니다.”
경허 선사가 이렇게 대답하자
양반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양반은 범상치 않은 스님의 기품에 눌려
무례를 사죄하고 극진히 안으로 모셔 크게 시주했습니다.

(3) 걸망이 무겁더냐
하루는 경허 선사와 제자 만공 스님이
함께 탁발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여름날 두 스님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 다니며
몸은 무겁고 걸망은 탁발한 곡식으로 채워져 무거웠습니다.
무거운 걸망을 메고 절로 돌아오는 길에
만공 스님은 짊어진 걸망이 무거워서 불평하며
경허 선사에게 쉬어가기를 청했습니다.
불평하는 제자 만공 스님에게 경허 선사가
"두가지 중에 한가지를 버려라."라고 하자 만공 스님이 그 뜻을 물었다.
경허 선사가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든지
아니면 걸망을 버리라고 하니
만공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에이참! 스님도 하루 종일 고생해서
탁발한 곡식을 어찌 버리라 하십니까요?
또한 무거운것은 무거운건데 그생각을 어찌 버리라 하십니까요?"
그래도 경허 선사는 들은체도 안하고 휘적휘적 앞서기 시작하니
만공 스님은 허겁지겁 숨을 헐떡이며 뒤따라 갔습니다.
"스님! 정말 숨이 차서 그렇습니다.
잠시만 쉬었다 가시지요?"
이에 경허 선사는 만공 스님에게
저 마을 앞까지만 가면 힘들지 않게 해줄테니
어서 따라 오너라 하고 걸어갔습니다.
만공 스님은 마을 앞까지만 가면 힘들지 않게 해주신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스승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습니다.
마을 앞에는 우물이 있었고,
그 근처 논밭에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한 아낙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를 이고 스님들 앞을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허는 느닷없이 아낙의 젖가슴을 만지며
입에 키스를 해 버렸습니다.
이 때 아낙은 비명을 지르고 물동이는 박살이 났습니다.
이를 지켜본 동네 사람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저 중놈들, 잡아라"고 외쳐 대며 달려왔습니다.
참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자 만공 스님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죽을 힘을 다하여 뛰었습니다.
스승 경허 선사는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려 동네 사람들이 쫓아오지 않을 무렵
저만치 솔밭에서 경허 선사는 만공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허! 너도 용케 붙잡히지 않고 여기까지 왔구나."
이때 만공 스님은 스승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스님! 속인도 해서는 않되는 짓을 왜 하셨습니까요?"
경허 선사는 제자에게 답하기를
"그래! 그건 그대 말이 맞다."고 하시며
"도망쳐 올적에도 걸망이 무겁더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ㅡ에~~~~"
그순간 만공 스님은 "일체유심조"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몸으로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4) 단청 불사
경허 선사가 제자 만공 스님과 만행을 하면서
단청 불사 권선을 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갑잡스런 스승의 제의에 놀랬지만
두 사람은 권선문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모았습니다.
"이만하면 단청불사하기에 넉넉하겠군. 그래."
경허 선사는 다시 주막으로 들어섰습니다.
불사금으로 모은 돈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단청이 되어가지! 만공."
"스님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런 짓을 하십니까?
부처님을 팔아서 시주금으로 술을 먹다니 말이나 됩니까?"
만공 스님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경허 선사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아.
이 이상 어떻게 단청불사를 한단 말인가?"
경허 선사의 얼굴이 저녁 노을처럼 붉은 단청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5) 너는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느냐
시냇가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물을 건너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마침 길을 가던 경허 선사와
그를 따르는 젊은 수도승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처녀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젊은 스님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스님은 처녀에게 정색을 하며 화를 내었습니다.
"우리 불가에서는 여자를 가까이 하면
파계라 하여 내쫓김을 당하는데
어찌 젊은 처자가 그런 요구를 하십니까?"
난처해진 처녀는 노승 경허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경허는 선뜻 등을 내밀며
"그거 어려울 것 없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경허 선사는 처녀를 등에 업어다
건너편에 내려주고는 계속해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뒤따라가는 젊은 스님의 마음에는 갈수록
온갖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땡중이 아닐까?"
젊은 스님은 자기의 스승 경허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이를 꾹 참고 십리 길을 더 갔습니다.
마침내 젊은 스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스님,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수도하는 스님이 어떻게 젊은 여자를 업을 수 있습니까?"
젊은 제자의 화난 목소리를 듣던 경허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끼 이놈!
나는 벌써 그 처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네놈은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느냐?"

(6) 아낙과의 동침
경허 선사가 가야산 해인사의 조실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경허 선사는 이미 술과 육식을 거리낌 없이 하는 터라
젊은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매우 추운 겨울,
수건으로 얼굴을 뒤집어쓴 어느 젊은 아낙이
경허 스님 조실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경허 큰 스님은
아낙과 한방을 쓰고 그 아낙과 겸상으로 공양을 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승려들 사이에서는 더 말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리 도통했다는 스님이기로
곡차에, 육식에, 이제는 여색까지 탐하다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가자
제자들이 참지 못하고 스승께 읍소했습니다.
“스님, 제발 그 여자를 그만 내치소서.”
제자들이 하도 읍소를 하니,
문제의 아낙이 드디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아낙은 나병에 걸려 코도 없고 얼굴도 문드러진 중환자였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낙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따뜻한 방에 재워주시고,
따뜻한 밥 먹여주시고,
고름까지 닦아주셨으니
이제 곧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낙은 정처 없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경허 스님도 걸망 하나 메고 해인사를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인연 없는 중생들은 어쩔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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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경>의 '보각보살품'에는
'좋은 스승'에 대한 이야기로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선남자야.
말세의 중생들이 큰 깨달음을 얻으려 하거든
먼저 선지식을 구하여 수행해야 한다.
어떤 분이 좋은 선지식인가?
일체 바른 지견을 가진 사람이니
마음이 상(相)에 머무르지 않으며
성문과 연각인 소승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의 티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지만
마음이 항상 맑고 깨끗하며,
온갖 허물이 있는듯 보이나
범행(깨끗한 행)을 찬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그릇된 율의에 물들게 않게 해야 하느니라.
만약 이러한 선지식을 구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
선남자야.
수행을 하는 이는 목숨이 다 하도록
선지식을 공양하고 섬겨야 되나니,
그 선지식이 자신에게 잘 해주고 칭찬을 하더라도
교만하거나 흡족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며
선지식이 멀리하거나 성내지 않아도
한을 품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선지식의 모든 행위를 허공 같이 여기고 공경 공양해야 하느니라."
경허 선사의 모습은 이와 같은 선지식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행을 보이며 갖가지 티끌의 모습을 나타내고
온갖 허물이 있는 것 같지만,
바른 지견을 가지고 제자들을 지도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고정된 상(相)을 깨뜨리게 합니다.
경허 선사의 기행의 모습은
함부로 흉내낼 것은 아니지만,
상(相)에 매이지 않고
방편에 자유자재한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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