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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근대사

4. 한국 근대선의 중흥조 경허 선사(4) / 경허 선사의 잠적과 열반

by 아미타온 2025. 11. 9.

4. 한국 근대선의 중흥조 경허 선사(4) / 경허 선사의 잠적과 열반

 

<경허 선사 영정>

 

(1) 선풍의 진작 

 

무애행과 걸림없는 방편으로 제자들을 제도한

경허 선사는 충청, 영호남의 여러 사찰을 순례하며

선원을 재건하고 많은 제자들에 영향을 주었고 선풍을 휘날렸습니다.

 

경허 선사의 교화의 전성기는

1899년부터 1904년까지 약 5년간입니다.

 

경허선사는 송광사를 비롯하여

화엄사·천은사·백장암·실상사·

영원사·벽송사·쌍계사·태안사·송계암 등 

호남 일대에 선원을 창설하기도 하고,

범어사·통도사·내원사·백운암·표충사 등

영남의 여러 주요 사찰을 디니며 선풍을 크게 떨쳤습니다.

 

그리고, 대승사·윤필암·동화사·파계사 등 경북에도

선원을 창설하기도 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며 

결사의 이념을 홍포하기 위하여 전국을 두루 편력하면서

선을 실천하고 도반을 규합하면서 납자들의 안목을 열어주었습니다.

 

경허 선사의 전법 제자로는 '경허의 세 달'로 불리는

수월, 혜월, 만공 그리고 혜봉이 있으며

이 밖에도 한암, 침운, 남전, 제산 스님 등이 법을 이었습니다.

 

한편, 경허 선사의 선풍은 한국 근대 선불교를

개척한 많은 인물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월, 학명, 진하, 태수 등의 선사가 대표적입니다.

이분들은 모두 선원의 조실로서 한국 선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920~30년대 선학원 운동과

해방 이후 정화 운동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조계종단 형성의 단초를 마련했을 뿐더러

한국 불교에서 선불교가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근세의 유명한 불교학자인 권상로(1879∼1965)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경허 선사를 칭송했습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주장자를 잡고 면벽(面壁)하는 이들은

모두 그 문풍을 승습(承襲)할 뿐 아니라

승니(僧尼)로 하여금 선의 면목을 알게 하고

일반으로 하여금 선법이 있는 줄을 알게 된 것은

모두 경허 선사의 힘이다.

……

이는 우리 나라 선학을 말하는 데에는

선사를 중흥조로 존앙(尊仰)하지 않을 수 없는 바이다."

 

그리고,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 스님은

<경허 행장>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축산 양산 통도사에서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 송광사는

모두 화상이 잠시 머무시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을 다투어 개설하고

발심한 납자 또한 감화를 입어 구름이 일듯 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의 광명을 빛내고

사람의 안목을 열어주심이 융성하던 때는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풍 진작에는

해인사에서부터의 수선결사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실 경허의 수선결사 이전 조선 후기에는

화두선을 하는 스님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경허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길없는 길'>

 

조선 후기 최고의 불교 학자로 일컬어지는

이능화(1869∼1945)는 다음과 같이 당시 불교계의 동향을 말했습니다.

 

"오늘날 조선의 승계(僧界)를 보건대

혹은 계율로, 혹은 강수(講授)로, 혹은 선학으로,

혹은 사공(事功)으로, 혹은 이행(異行)으로써 

각각 그 소장(所長)을 제멋대로 하여 이른바 선교양종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 30본산의 주지와 기타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선강제승(禪講諸僧)의 행리의 대략을 열거하고

그 종지를 조사하여 본즉

경교(經敎)가 가장 많아서

염불이나 송경(誦經) 송주(誦呪)를 일삼고 있으며,

참선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

 

제방(諸方)의 선교의 승려 수를 비교하여 보면

30본산의 전후 주지 50여인 가운데

선종에 속하는 자는 불과 3, 4인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교종에 속한다.

 

만약 조선의 승려 7,000인을 들어서 말하면

10중 8, 9는 모두 교종에 속하며,

선도 아니고 교도 아닌 사람이

실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능화에 의하면 조선 불교는

외형적으로는 선교양종을 이루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나,

심지어 주문(진언)을 외는 불교는 성행했지만

참선하는 경우는 희귀하다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선 수행 기풍은 점점 사라지고

염불 등과 혼합된 교종 불교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뚜렷한 종지가 없이

선과 교, 염불이 함께 행해지던 조선 후기의 불교계는

구한말 일제의 침략과 함께 들어온 일본 불교의 침투와 함께

위기를 맞이하면서 한국 불교의 선종적 전통이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경허 선사 이후 배출된 선사들에 의해

화두선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선불교가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 선불교는 종래에 드문 융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1976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에서 조사한 ‘전국 선원 현황’에 의하면

전체 45개소의 선원과 비구 533명과 비구니 396명을 합해서 

950명의 선승들이 선원에서 정진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1982년에는 비구 602명과 비구니 950명,

합계 1552명의 선승들이 선원에서 정진하는 것으로 집계되었고,

1999년의 ‘전국 선원 정진대중 명단’에 의하면

총림 5개소, 비구 선원 42개소, 비구니 선원 30개소, 전체 77개소의 선원과

총림의 148명, 비구 선원 714명, 비구니 선원 778명 모두 1,640명의 선승들이

선원에서 정진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현대 한국 불교에서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선불교의 융성의 출발점에 경허 선사가 서 있는 것입니다.

 

경허 선사는 이처럼 충청, 경상, 전라 지역에서

정혜 결사와 선원의 복원을 통해 선풍 진작을 하였고,

참선을 권장하는 여러 대중 가사들과 선시를 지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앞 장에 나오는 <참선곡>입니다.

 

<스승 경허 선사를 찾아 북방 함경도로 간 제자들 (서산 천장암)>

 

(2) 수수께끼 같은 북방 잠적

 

 한편, 약 5년간 영호남을 돌아가며

정력적인 활동을 하던 경허 선사는 홀연히 북으로 사라졌습니다.

 

경허는 1904년 자신의 보림처인 서산 천장암에 잠시 들른 다음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 함경도 쪽으로 올라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다, 10년후 제자 수월 스님이

북으로 간 스승 소식을 듣고 자취를 더듬어 찾아

천신만고 끝에 경허 선사를 찾았습니다.

 

경허 선사는 "박란주(朴蘭洲)"라는 이름으로 환속하여

함경도 갑산에서 훈장 노릇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월 스님이 스승 경허 선사에게 인사하였으나,

경허는 모르는 사람인양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수월 스님은 스승 경허 선사 주위를 맴돌았다고 하며 

1912년 경허 선사가 열반에 들자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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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 열반후 제사를 지내는 제자들(서산 천장암)>

 

                

오늘날 한국 선불교의 중흥에

큰 영향을 미친 경허 선사!

 

경허 선사는 삼남 지방을 다니며

수많은 선원을 만들고 제자들을 양성한후

홀연히 머리를 기르고 북방으로 잠적합니다.

 

경허 선사가 왜 북방으로 잠적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합니다.

 

승속에 무애한 보살의 입전수수라고 말하는 분도 계시고,

할일을 다한 도인이 자유롭게 길없는 길을 갔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경허 선사는 원효 대사처럼 승속에 걸림없고,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 무위대도의 삶을 사셨다고도 합니다.

 

아니면 이제 스님 생활 그만두고,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경허 선사 나름의 자유의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홀연히 함경도로 떠난

경허 선사께 끝까지 공경을 다하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스승이 배척해도 스승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공경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경허 선사의 선지식으로서의 매력과 법향을 느끼게 합니다.

 

선종은 사자전승,

즉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이어지는 가르침입니다.

 

스승에 대해 끝까지 공경을 다하는 제자들의

사자전승의 모습이 또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