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9) - 승려의 교육>
만해 한용운 스님은 서론에서 '평등주의'와 '구세주의'를
불교의 주의라고 자신의 불교관을 표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교관을 바탕으로
당시 불교계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합니다.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승려의 교육 문제입니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수행 문제로서
참선의 본질로 돌아갈 것과 염불당의 폐지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만해 스님이 바라본 승려 교육과
수행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승려 교육의 중요성
만해 스님은 첫머리에서
"교육이 성하면 문명도 흥하고
교육이 쇠하면 문명도 쇠약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명은 교육에서 발생하니
교육은 문명의 꽃이요
문명은 교육의 열매이다.
.......
교육의 정도에 따라 발전하고 쇠퇴하는 것이 문명이다.
따라서 배움이 귀중함을 깨닫고 그 배움을 놓쳐서는 안된다.
또한, 삶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먹고 입고 잠자고 일어나고 하는 일 외에 따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들이 피안(彼岸)에 도달하려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배움에는 지혜와 진리와
자유로운 사상의 3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중에서도 자유로운 사상이 없다면
자유로운 인격이 없는 것이므로 노예의 학문이다.

2. 사상의 자유의 중요함
만해 스님은 이와 같이 자유로운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불교 승단은 지혜와 박학과 더불어
사상의 자유조차도 없는 것이
승려의 학문이 땅에 떨어지게 된 까닭이고
승단 전체에 쇠망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배움에도 또한 요령이 있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요령은 지혜로서 자본을 삼고
사상의 자유로 법칙을 삼고 진리로 목적을 삼아야 한다.
배우는 이는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외하면 안된다.
비록 그러나 지혜가 없거나 진리가 없는 것은
어느정도 괜찮지만 사상의 자유가 없는 것은 안된다.
왜냐하면 지혜가 없거나 진리가 없는 사람이라도
사상의 자유가 있으면
그를 비록 학자라고 부를 수는 없으나
자유로운 인격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우직(愚直)한 사람은 될 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사람은 그 학문의 정밀함과 그렇지 않음을
논할 필요도 없이 한마디로 노예의 학문이라 잘라 말할수 있다.
노예란 무엇인가?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으나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배우는 이가 글을 대할 때
나의 지혜로 그것을 검토한 다음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비록 위대한 성인이나 큰 철인의 이론이라 해도
그것을 버리기를 헌신짝처럼 하고,
내 마음에 맞다면 어리석은 자의 매우 미미한 말일지라도
진기한 꽃을 감상하듯이 하여야 한다.
........
그러므로 사상의 자유는 사람의 생명이요,
학문의 중요한 기틀인 것이다.
슬프도다.
조선 승려의 배움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기에
노예의 처지로 들어가게 하였는가.
........
배우는 사람들이 연구하고 논하는 것이
이상스런 장구(章句)를 찾아 짧막한 주석이나 달 뿐이요,
논쟁에 있어서는 오직 다른 사람을 꺾고
자신의 사견(私見)만을 내세우려고 하는 것뿐이다.
사상의 자유가 어찌 구차한 장구의
훈고(訓古)와 남과 나의 사견에 그치겠는가.
사상이 한번 부자유스러워지면
아무리 지혜가 있고 박학하더라도
모두 다 노예 노릇을 잘 하는 도구가 많아지는 까닭이다.
그 지혜와 박학과 더불어 사상의 자유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승려들의 학문이 땅에 떨어지게 된 까닭이다.
그리고, 조선불교의 장래를 위하여
승려 교육이 급선무임을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교육안을 제시했습니다.

3. 승려 교육의 세 단계
그 안에 의하면 승려 교육은 세가지 단계로 나뉩니다.
첫째, 보통학(普通學, 기초 교양 과정)의 과정을 주장합니다.
만해 스님에 의하면 '보통학'이란
"사람이 매일같이 입고 먹는 의복이나
음식처럼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명 시대에 살아가려면 최소한 지녀야할
교양 과목이나 상식도 이 보통학 과정에서 습득됩니다.
그리고, 이 보통학은 전문적 지식을
연구하기 위한 예비 과정도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둘째, 사범학(師範學)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여기서 사범학은 '자연(自然) 사범'과 '인사(人事) 사범'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만해 스니믄 사범학의 개념을 상당히 넓게 잡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범 교육 및 인문 과학을
만해 스님은 '인사 사범'으로 보았습니다.
또, 자연 사범을 설명하면서
콜럼부스의 지구학, 뉴턴의 인력학,
와트의 증기학, 다윈의 진화학을 예거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자연 과학에 대한 지식 습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만해는 불교학 외에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져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설 수 있고
교육적 자질을 갖추어 세상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불교 지도자(스승)의 필요성을 만해는 희구했던 것입니다.
만해 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상은 크고 학문의 세계가 넓거늘
후배들이 무슨 죄로 이런 무식하고
후안무치한 자들의 지도를 달게 받아
그 전철을 밟아서 제 2의 뽕나무 벌레가 되어야 하겠는가?
어찌 그 후생에 비치는 해독이 끝이 있겠는가?
이런 실정을 덮어버리려 한다면
마땅히 먼저 사범학교를 설립하여
승려 가운데 15에서 40세까지의
약간 재덕 있는자들을 뽑아서 배우게 하고,
그 과정에 있어서는 보통학,사범학과 불교학을
적절하게 하여 가르치면
.....
불교계의 모습이 전날과 같지 않아 사람들이
한번 보고 문득 구역질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세째, 외국 유학을 주장합니다.
1910년대에 조선 불교계에서
감히 외국 유학을 주장했다는 사실에
만해 스님의 탁월한 선견지명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승려 교육을 논하는 항목의 결론
역시 격렬한 어조로 맺고 있습니다.
그렇거늘 낡고 부패한 늙은 무리들이
젊은이의 신교육을 백방으로 방해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로다
.....
큰 소리로 이 같은 무리들을 꾸짖어야 한다.
교육을 저해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교육을 일으키는 자는 마땅히 불도를 이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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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스님은 서론에서 자신의 불교관을 피력한 다음에
조선 불교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제일 첫 번째로 지적하고 가장 심각하게 바라본 것이
바로 바로 승려의 교육 문제였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출재가를 포함한 불교지도자들의
교육 수준을 짚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해 스님은 교육이 보급되면 문명이 발달하고,
그 반대로 교육이 보급되지 못하면 문명은 쇠해진다는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즉, 문명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히 교육(배움)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그 배움에 있어서는 지혜(자본), 사상의 자유(법칙),
진리(목적)의 세 요소가 절대 긴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승려들은 이 중에서도
'사상의 자유(자기화한 불교와 참다운 비판정신)'가
가장 결핍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승려 교육의 특색인 연구와 논강도
이러한 사상의 자유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질타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은
승려 교육의 급선무를 보통학, 사범학, 외국유학으로 대별하였습니다.
보통학(기초 교양 과정)과 사범학(자연 과학, 인문과학)은
문명화된 시대의 필수적인 배움으로서,
불교계 밖의 현실에 대한 관심,
보편적인 인간, 사회, 자연학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승려 학인들은 보통학, 사범학 보기를
원수같이 하는 형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지도를 대하면
소경이 그림을 대하는 것같고,
생존 경쟁의 설을 대화하면
어쩌다가 귀머거리가 음악을 듣는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기초 교양 지식과 불교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으므로
세속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고 따라서 세속 사람들을
구제할수 있는 능력 없는 승려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만해 스님은 우선 사범학교를 세워
15∼40세 승려 중에서 재덕이 있는 자를 가려서 배우게 하고
그 과정에서 보통학, 사범학, 불교학을 가감, 조화시켜 가르치자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사찰에서 설립한 소학교의 교사 양성과 함께
나아가서는 불교 지도자인 승려들의 자질 향상을 함께
도모하자는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지적한 것은 외국유학(폭넓은 경험)입니다.
만해 스님은 외국에 유학하여
불교의 교리 및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불교 발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내용은 불교학 이외의
여타 종교의 연혁, 현황, 역사 등을 배워
불교의 미흡한 부분을 보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승려 교육에 대한 만해 스님의 지적은
주로 보통학, 사범학과 해외유학(폭넓은 경험)으로 나타납니다.
당시 승려의 불교학 공부 전반에도 많은 모순이 있었겠지만,
불교학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승려 및 사찰의 사회의식 및
세상을 보는 눈이 낙후된 현실을 개탄하였기에
그에 연계된 분야만 집중 분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만해는 교육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불교계의 노후하고, 부패하고, 완고 비열한 무리가
새로운 교육을 저지하고 구습을 고수할 뿐
새로운 진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통렬하고 맹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만해 스님의 지적은 불교 지도자로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영혼과
비판 정신을 가지고 깨어나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세상을 보는 눈을 닦아나감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현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이들의 언어로 불교적 교육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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