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12) - 사찰의 위치>

만해 한용운 스님은 산간 벽지에 위치한 사찰의 위치가
승려의 사상과 불교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임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산간 벽지에 있는 사찰(절)이
사람들이 사는 도회지로 많이 진출하여
세상과 호흡하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기를 바랬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만해 스님이 <유신론>에서 주장한
'사찰의 위치'에 대한 항목을 살펴보겠습니다.

1. 환경의 중요성
<유신론>에서 만해 스님은 '사찰의 위치'와 관련하여
길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해 스님은 승려의 낙후성이
승려 개인의 자질이 못해서라기보다는
사찰의 위치에 그 원인이 있다고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산간벽지에 물러앉은 사원의 위치를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까지 인용하며 혹독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나는 일찌기 불교의 세력을 확장할 뜻을 품고 있으면서
언제나 승려의 사상이 다른 사람들만 못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똑같은 불성과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승려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것은 교육을 받지 못해서라고 말하는데,
교육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보다 승려들의 사고력이 더 떨어지는 것은
역시 이상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 원인은 처소를 선택함이 올바르지 못한데 있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어진 이가 사는 곳을 택해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로와질수 있겠는가' 하였다.
...............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물의 성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통하게 만들고
산의 성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막히게 만들며,
물의 형세는 사람으로 하여금 합치게 만들며
산의 형세는 사람으로 하여금 떨어지게 만든다 하였는데
과연 그렇다고 하겠다.
나는 풍수설은 배운 적은 없지만
이제 사찰의 위치와 사상 및
사업의 길흉 관계를 하나하나 판단해보려고 한다.
만해 스님은 산간 벽지에 숨어 있는 사찰의 위치가
승려들의 낙후된 사상에 미치는 영향 4가지를 열거하며
불교적 사업의 한계에 미치는 영향 6가지를 열거하며
사철의 위치가 불교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논술하였습니다.
첫째, 사찰의 위치가 산간에 있기 때문에
진보적 사상이 위축되었다.
밤낮 산속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피는 꽃을 즐기다보니
진보적 기상이 저절로 위축되었다.
둘째, 무모험적(無冒險的) 사상이다.
바닷가에 살면 사람은 모험을 하게 되지만,
움직이지 않는 산에 살면 아무래도 모험심이 생기지 않는다.
셋째, 무구세적(無救世的) 사상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무리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구제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옛날에 소부나 허유(도가 수행자들)같은 인물들은
산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염세주의에 빠졌다.
지금 사원의 위치는 염세주의에 알맞을뿐 구세주의에는 부적당하다.
넷째, 무경쟁적 사상이다.
깊은 산속에 떨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시대의 조류와는 멀리하게 되니
치열한 경쟁에는 끼지 못하게 된다.

2. 사찰의 위치의 개혁
이 밖에도 만해 스님은 사원의 위치가 산속에 있기 때문에
1) 교육에 불리하고 2) 포교에 불리하고
3) 교섭에 불리하고 4) 통신에 불리하고
5) 단체활동에 불리하고 6) 재정에 불리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과 일을 꾀함에 불리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불교는 불교의 구세적, 포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큰 도시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아울러 그 대안으로 다음과 같이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면 절간의 위치를 고칠 수 있겠는가?
세 가지 방책이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산속에 있는 사찰 중 오직 기념할 만한 몇 곳만 남기고,
그 나머지는 한결같이 모두 철거한 다음
새로 각 군(郡)이나 각 항(港)의 도회지에 세운다면
이것이 상책(上策)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크고 아름다운 사찰은 남기고,
작은 절과 크고 황폐한 것은 철거하여
큰 도회지에 옮겨 지으면 이것이 중책(中策)이 될 것이다.
또, 다만 암자만을 폐지하여 본사에 합하고
한 도(道) 혹은 몇 개의 군(郡)에 있는 사찰들이 합동하여
요지에 한 출장소를 두어 그 포교와 교육 따위의 일을 처리할 경우,
이것은 하책(下策)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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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스님은 불교 세력이 미약한 원인을
승려의 사상, 의식이 속세의 사람보다 못함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사찰이 궁벽한 위치에 있으므로
나타나는 네 가지의 요소,
거기에서 비롯된 사업상 부진의 여섯 요소로 정리하여
환경에서 연유된 바가 크다고 날카롭게 진단하였습니다.
이를 요약해보면 우선 사원의 위치가 궁벽함으로써
진보사상이 없다, 모험적인 사상이 없다,
구세의 사상이 없다, 경쟁하는 사상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업상 구체적으로는
교육, 포교, 교섭, 통신, 단체활동, 재정에서도 불리하여,
부진을 야기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3가지 방략을 제시하며
불교가 산중에서 나와 사람들이 사는
도회지로 나와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만해 스님의 말씀은 십분 공감이 됩니다.
말이 크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크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보고 듣고 그들의 욕망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릇이 커지고 세상보는 눈이 확장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그들의 고뇌와 아픔을 이해하며
구세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행터로서 좋은 자연과 명당에 위치한
사찰의 존재가 일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산중에서 <템플스테이>와 <문화재 관람>이
현대인이 불교와 접하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할까요?
만해의 사찰 위치에 대한 주장에 대한 유신은
근·현대불교 100여 년간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만해 스님의 주장을 세심히 살펴보면
만해 스님이 얼마나 날카로운 혜안을 가진 사람인지 알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대부터 수행터는
세상과 약간 떨어져 명상에 적합한 조용한 장소이지만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수 있어 가르침을 받기 용이한 장소인
포교의 적합성이라는 위치에 신경을 써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통의 발전과 함께 일반인들이 느끼는
현대의 사찰의 지리적인 위치 문제는 많이 해소된 측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도회지에서 사람들이 불교와 함께 접하기 위한 장소는
여전히 적고 문턱은 높습니다.
승려들의 의식도 여전히 19세기에 머물러 있고
세상과 호흡하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의지는 약합니다.
보다 많은 재가 불자들이
이러한 포교의 역할을 담당할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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