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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근대사

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19) - 사원의 통할 (統割)

by 아미타온 2026. 1. 7.

< 5. 만해 한용운과 조선 불교 유신론(19) - 사원의 통할 (統割) >

 

<충남 서천 성북리 석탑>

 

마지막으로 만해 스님은

사찰을 일정한 원칙에 의해 통할(統割)해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사찰의 통합과 분할을 통해

적절하게 지휘 체계를 갖추고

의식과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불교계의 힘을 모으려는 종단 운영이라는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유신론>의 마지막 유신안인

사원의 통합에 대한 만해 스님의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원 통할(統割)의 필요성

 

만해 스님은 불교계 내부를 살펴보면

의식이나 제도가 서로 다르고,

불교계의 변화가 일정한 원칙이나 목적 없이 이루어지므로

힘의 결집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안타까와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찰들에 대한 지휘와 통할이 이루어지지 못함이므로

통할을 통해 불교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불교계 내부를 살펴보건대,

한가지 일도 제대로 정제(整齊)된 것이라고는 없다.

 

의식이 서로 다르고 규모가 서로 다르다.

또 절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고 날마다 달라지고 해마다 달라진다.

 

어찌 그리 서로 다름이 끝이 없는가.

헛되이 변하기만 하면서 변화의 조리가 없는 것은

변화시키지 않는 것만 못하다.

.....

 

불가(佛家)의 변화는

변화와 불변이 처음부터 목적이 없이

우연히 변하거나 갑자기 변하여

그 변화하는 속에 있으면서도

역시 스스로 그 변화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이것이 집착하는 마음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되겠는가?

 

심하다.

서로 다름이여!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통할(統割)이 없는 까닭이다.

 

통할이 없기 때문에 일정한 지휘가 없고

일정한 지휘가 없기 때문에

각기 스스로 지휘함으로써 서로 다르게 되었다.

 

서로 다르게 되면 불화하기 마련이고

서로 불화하면 뭉치지 못하고

뭉치지 못하면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불교에 힘쓰려고 하건대

통할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2. 혼합 통할과 구분 통할

 

만해 스님은 통할의 구체적 방법으로

'혼합(混合)통할'과 '구분(區分)통할'으로 나누었습니다.

 

'혼합 통할'은 불교 전체를 한 통할권 안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이 방안의 장점은 사람과 재물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에

일을 처리하는 데 유리하고,

일을 할 때 전부가 일치하기 쉬워서

피차에 넘치고 부족한 차이가 없으며,

대립이 없으므로 피차간에 알력의 폐단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둘 이상으로 구분하여 분할 통치하는

구분 통할의 장점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서로 간에 질투 혹은 경쟁이 나타나 

이 요인이 진보성에 효과를 기할 수 있다, 피차간에 견제하고

꺼리는 요인으로 마음대로 정하는 나쁜 폐단을 차단할 수 있으며, 

회의·교섭이 비교적 간편하고 쉬울 수도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내가 저 통할하는 도리를 생각해보니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첫째는 혼합통할(混合統割)이요,

둘째는 구분통할(區分統割)이다.

 

혼합통할이란 무엇인가?

불교계 전체로 하여금 모두 한 통할권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분통할이란 무엇인가?

불교계 전체를 모아서 두 개 이상의 부분으로 나누어서

분할 통치하는 것이 그것이다.

 

혼합통할과 구분 통할은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대개 다음과 같다.

 

혼합통할의 장점

 

1) 사람과 재산이 한 곳으로 집중될 것이므로

일을 주관하는데 편리하다.

 

2) 일을 시행할 때마다 전체가 일치하기 쉬워서

서로간에 넘치고 모자라는 차이가 있다.

 

3) 서로 대립이 없음으로 피차간에 알력의 폐단이 없다.

 

구분통할의 장점

 

1) 민지가 미개한 사회는 분열을 좋아하고 단결을 싫어하며,

서로 돕는 마음이 적고 서로 이기려는 마음이 많아서 서로 대함에

질투,경쟁으로 흐르기 쉽다.

질투,경쟁이 서로간에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일을 힘쓰는대로 진보하면 크게 유효할 것이다.

 

2) 피차에 서로 견제하고 꺼리는 까닭에

일을 제멋대로 처리하는 악폐를 저지를 수 없다.

 

3) 회의, 교섭 따위의 일이 반드시 간편하고 쉬워질 것이다.

 

 

3. 어떤 통할을 할 것인가?

 

양자의 장단점을 살펴본 후 만해 스님은

원칙적으로 혼합통할을 마땅히 시행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불교계의 수준을 볼 때 

혼합 통할을 시행할 여건이 미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구분통할을 하게 되면

불교계를 갈라 놓아서 점차 분열하는 정황이 될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만해 스님은 불교계의 통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두 방안의 장단점, 현실적인 여건을 분석하고도

당시 불교계의 수준과 여건상 뚜렷한 방책을 내놓지 못하고

숙제로서 남겨 놓았습니다. 

 

이상은 혼합 통할과 구분 통할의 장단점의 대강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큰 원칙을 가지고 논한다면,

세상 일이 단합을 존중하고 분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니

혼합 통할이 당연히 좋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불교가 있은 이래로

오늘날까지 산만함을 정제하지 않아

처음부터 통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승려 가운데 당분간 통할을 맡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사찰마다 지식 수준이 낮은데다 공덕심이 결여되어

갑자기 혼합통할을 재빨리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구분통할을 시행하려 한다면

불교계에 분열을 조장해서

점차 오이를 가르고 콩을 쪼개듯이

쉽게 갈라 놓기만 하는 형세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만 하다.

.......

 

나도 통할의 문제를 앞에 놓고서

그 통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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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시대의 불교는 국가 권력에 철저히 탄압을 받아

종단은 권력의 힘에 의해 강제로 통폐합되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는 종단이라는 것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불교는 특별한 종풍이나 종지도 없이 생존에 급급했습니다.

 

만해 스님은 이러한 당시의 불교의 모습을 보며

불교계가 목적성(종풍과 종지)을 분명히 갖추고

힘과 역량을 결집시킬수 있는 단합된 조직력과

지휘 체계를 가진 불교로서 거듭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만해 스님의 "사원의 통할"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해 스님이 조선 불교를 일본 조동종에 예속시키려고 한

이회광을 비롯한 친일 승려들의 책동에 반대하며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세를 규합하여 임제종이라는 종단을 만들어 

불교운동을 벌인 것도 이와 같은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해 스님은 통할의 방안으로

'혼합 통할'과 '구분 통할'의 두가지를 제시하였지만,

당시 조선 불교계의 상황에서 구체적 통할의 방법에 대해서는

제시하지를 못하였습니다.

 

현재 한국 불교의 종단 체계를 보자면,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이라는 거대 종단을 중심으로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의 50여개의 많은 종단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계종을 보더라도

총무원을 중심으로 하는 혼합 통할과 함께

30개의 본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적인 구분 통할의

2가지 형태의 통할로 종단이 운영되고 있슴을 알수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만해 스님이 이야기한

통할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할이 생긴 역사적 배경을 보자면 

1950년대부터 노골화된 비구-대처승 간의 갈등과 함께

'정화운동'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조계종-태고종의 종단 분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밖의 종단들도 그 이름에 걸맞는

종지와 종풍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그 이외의 목적으로 형성된 측면이 강합니다.

 

그리고, 총무원과 본사, 

총무원과 종정 간의

다툼과 싸움으로 점철된 종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만해 스님이 원했던 '사원의 통할'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만해 스님은 '평등주의'와 '구세주의'라는

대승불교를 목적으로 하는 종단을 중심으로

불교계의 제반 문제들을 개혁하고

사회 속으로 불교가 동참할 수 있는

조직적, 재정적 역량을 통합할 수 있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과 호흡할 수 있는

사원의 통할을 희망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해 스님이 제시한

사원의 통할의 과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시대에서 공룡 종단으로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담을 수 있는

혼합통할적 방식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종단이나 단체일지라도

처음에 적은 수의 사람들이 씨앗을 뿌리더라도

만해 스님이 희망했던 불교의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화합하고 단합해서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종단과 단체가 많아지는 것이 어찌보면

미래에 불교의 발전에 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