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비암사>
1. 백제 고토에 세워진 비암사
정부 청사가 들어선
세종시의 고찰 비암사(碑巖寺).
'불비석(佛碑石)의 바위가 있는 도량'
이라는 뜻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가장 중요한 지역은
바로 한강 이남이었습니다.
누가 한강 이남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주도권이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 한강 유역은
기름진 땅과 많은 인구,
중국과의 교역에 용이한 지리적 이점 등
다방면의 이점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한강을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는
삼국 중 백제였습니다.
백제는 현재 송파구에 위치한
풍납토성,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한강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 걸친
고구려의 영토 확장으로
충청도로 내려와 웅진(공주) 백제시대를 거쳐
사비(부여) 백제 시대를 보내게 됩니다.
웅진, 사비 백제의 중심이었던 충청도 일대에는
백제의 불교 문화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데,
세종시(옛 연기군)에 있는 비암사(碑巖寺)도
그 중 하나입니다.
2. 비암사와 극락보전
비암사는 행정 신도시가 자리잡은
세종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전의면 운주산 자락에 포근히 감싸여 있습니다.
충청도 특유의 온화한 산세 탓에
유난히 포근한 느낌이 드는 도량입니다.
계단을 올라 비암사를 오르면
큰 느티나무가 있고,
느티나무를 지나면
대웅전, 극락보전, 지장전, 산신각, 요사채 등의
도량이 안온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비암사의 중심 전각은
보물로 지정된 극락보전입니다.
극락보전 앞마당에는 고려 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3. 비암사의 창건 이유
이 삼층 석탑 기단부는 1982년 복원하여
몸통 부위와 색이 다름을 알 수 있는데,
1960년 삼층석탑의 꼭대기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세 점의 불비상(佛碑像)이 발견되었습니다.
비암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세 점의 불비상은
국보 제 106호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비상’,
보물 제 367호 ‘기축명 아미타불비상’,
보물 제 368호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입니다.
이 세 점의 국보급 유적은
현재 모두 청주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비암사의 창건에는
세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번째,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이
백제의 부흥을 바라며
백제왕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천도사찰이며 백제의 마지막 사찰이라는 설입니다.
그래서인지 현재 비암사에서는
매년 양력 4월 15일 괘불을 걸고
백제대제를 거행하며
백제의 마지막 사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통일신라 초기 백제 유민인
혜명법사가 전 씨 등의 도움을 받아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세 점의 불비상입니다.
세 번째는 통일신라 말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인데,
비암사 창건과 관련된 아직 확실한
역사적 기록이 나오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4. 계유명 전씨 아미타 불비상
아무튼 비암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제의 고찰이며,
국보급 불비상이 세 점 출토된 유서깊은 도량입니다.
불비상(佛碑像)은 비석처럼 돌을 다듬어
앞면이나 전후좌우의 네 면에 불상을 조각한 비석으로
‘사면군상(四面群像)’이라고도 합니다.
불비상은 중국 북위시대부터(386-534)
만들어 지기 시작하여
수나라, 당나라(618-907)까지 제작되는데
우리나라 불비상의 제작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불비상은
충청남도 연기군을 중심으로
총 7점이 발견되었는데
조각 솜씨와 그림의 양식이 비슷하며,
현 세종시(옛 연기군) 일대에서만 발견되어
‘연기파(燕岐派) 불비상’이라고도 합니다.
그 중 제일 유명한 불비상이
바로 비암사에서 발견된 국보 제 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입니다.
‘계유년(673년(문무왕 13년))에
전씨 일가가 제작한
아미타부처님 불비상’이라는 뜻의
이 아미타불비상은 아미타부처님이
새겨진 직사각형 비석 형태로
4면이 전부 조각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7점의 불비상 중
가장 다양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면에 앉아 있는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보살, 금강역사(절의 문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호신),
나한(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은 성자) 등이 배치되어 있고
부처님과 권속들 아래로 연꽃잎으로 장엄하였습니다.
작은 부처와 불꽃무늬로
커다란 이중 광배를 가득 채웠고
가장자리에 테두리를 둘러 감실같이
보이는 효과를 내었습니다.
이중 광배와 테두리로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양쪽 측면에는 연꽃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과 용이
즐겁게 노닐 듯 표현되어 있고
뒷면에는 작은 부처가 5구씩 4단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불비상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하는 기록인
명문(名文)이 남아 있어
그 유래를 통해 불비상의 스토리를 짐작할수 있습니다.
명문에 따르면
“내말(乃末), 대사(大舍) 등의
신라 관등과 함께 백제에서 신라로 귀순한
전씨, 진씨, 달솔 등의 백제 성씨와 관등을 가진
일가 50여명의 사람들이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보살을 함께 만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불비상은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13년 후인 673년 백제 유민들이
제작한 불비상인 것입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많은 백제인들이 죽거나 잡혀갔고,
일부는 신라와 힘을 합쳐
당나라와 싸웠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가엾게 돌아가신
백제의 형제자매들의
내생의 극락왕생과 행복을 기원하는 불비상인 것입니다.
그냥 보면 단순한 문화재이지만,
이 조각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가 윤회와 인과를 믿는 불교인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괴로움을 겪고 가엾이 죽은
부모형제와 지인들이 더 이상 다음생에서는
고통스런 삶을 맞이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이고득락의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 오는 것입니다.
5. 기축명 아미타 불비상
그리고, <기축명 아미타 불비상>은
앞의 불비상과는 달리
돌의 위쪽을 둥글게 긴 타원형으로 만들었으며,
앞면에는 부처님을 뒷면에는 글자를 조각하였습니다.
중앙에 아미타 부처님을
그리고 양 옆으로 금강역사, 보살, 나한 등이 배치되어 있고
아미타불 아래에 난간과 계단이 새겨져 있는데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정토를 그리고 있습니다.
난간과 계단을 올라 극락세계로 들어가면
잔잔한 물결의 연못이 나타나는데
연못 가운데 연꽃 향로가 아미타불을 받치고 있습니다.
이 불비상은 우리나라에서 극락 정토를
표현한 회화성이 뛰어난 가장 오래된 작품입니다.
향로 좌우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공양상이 앉아 있는데,
아미타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며
극락 왕생을 발원하는 진실된 마음이 느껴집니다.
뒷면에는 명문이 있는데
“기축년(己丑年) 2월 15일에 7세 부모 등을 위하여
아미타불과 제불보살상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689년(신문왕 9년) 제작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이처럼 비암사는 백제 시대부터 이 땅에
정토 신앙이 대중들에게
깊이 신앙되었슴을 알려주는 도량입니다.
6. 비암사 아미타 부처님
비암사 극락보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17세기에 조성된 크고 힘있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계셔서
정토 도량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바로 옆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최근에 조성되어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을 함께 모시고
기도드릴 수 있는 좋은 도량입니다.
7. 산신각
극락보전과 대웅전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신각이 있습니다.
산신각에서 바라보면
충청도의 온화한 산들이 펼쳐져 아름답습니다.
산신 기도를 하실 분들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크진 않지만,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끼기
좋은 도량이 바로 비암사입니다.
비암사와 함께 청주 박물관의
3점의 불비상을 함께 보시면
이땅의 정토 신앙의 향기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세종 비암사>
https://youtu.be/u4HZnkGFFXI?si=5fWt-5NqPgiTzMd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