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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녹자모 강당을 공양한 위사카 부인 이야기 (부처님의 일생36)

by 아미타온 2023. 10. 7.

< 녹자모(鹿子母) 강당을 공양한 위사카 부인 이야기 - 부처님의 일생(36)  >

 

<녹자모 위사카 부인>

 

1. 위사카 부인과 시아버지

 

위사카는 마가다 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부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함께 법회에 참석하여

부처님 법문을 듣고

부처님에 대한 깊은 귀의심을 갖게 되었고,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습니다.

 

위사카는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코살라국의 대단한 재산가인

미라가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 미라가는 외도인

자이나교를 믿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미라가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비구 스님 한 분이 문 앞에 와서 탁발을 청했습니다.

 

미라가는 그 비구를 보자 못마땅해하며

몸을 집 안쪽으로 돌려 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위사카는

그 비구 스님에게 다가가 이렇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하오나 저의 시아버지는

식은 밥을 잡숫는 분이라 밥을 드릴 것이 없습니다.”

 

미라가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노하여

위사카에게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위사카는 말했습니다.

 

“시아버님. 한 비구 스님이

탁발을 오시어 문밖에 계셨는데,

아버님께서는 몸을 돌려 버리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시아버님은 금생에 들어서도

새로운 공덕을 지으려 하지 않고 

다만 전생에 지으신 공덕으로

따뜻한 밥을 드시고 사시는구나.

 

저는 그 비구 스님에게 공양을

드리지 못하는 변명을 하다 보니

말이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했습니다.

 

“시아버님,

저는 마음 속으로

부처님을 깊이 공경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공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앞으로도 비구 스님들께 공양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저는 친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부처님과 비구대중>

 

2. 미라가의 귀의

 

미라가는 할 수 없이

며느리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위사카는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양 때가 되자 시아버지에게

직접 공양을 올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자이나 교를 믿고 있던 미라가는

선뜻 마음이 나지 않아 앞에 나서지를 못하고

병풍 뒤에 숨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병풍 뒤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미라가는

부처님 법에 대한 깊은 환희심을 갖고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는 부처님과

며느리 위사카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미라가는 이후부터 며느리 위사카를

어머니처럼 존경하여 위사카를

"미라가마따(Miragmata:미라가의 어머니,

한문으로는 鹿子母:녹자모)"라고 불렀습니다.

 

위사카는 열 명의 아들과 열 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인도의 옛 사원터>

 

3. 녹자모 강당의 보시

 

위사카는 값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보석을 잔뜩 박은 코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결혼 기념 선물로 준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기원정사를 방문하여 부처님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코트를 하인에게 들고 있게 했는데,

하인이 그것을 잊는 바람에 코트를 기원정사에 놓은 채

그냥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하녀를 시켜 기원정사에 가서

자신의 코트를 기원정사에서 보관하고 계시면

그것을 승단에 시주한다고 말하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비서였던 아난 존자는

값비싼 코트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위사카는 외투를 팔아서라도 시주를 하려고 했지만

너무 값이 많아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스스로 거금을 지불하고

외투를 산 것으로 계산하여

억만금으로 부처님과 승가에 절을 지어 드렸습니다.

 

이렇게 위사카 부인의 시주로

조성된 도량은 승려들이 정진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위사카 부인의 이름을 따서 ‘녹자모(鹿子母) 강당’이라고 하였습니다.

 

녹자모 강당은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더불어

가장 크고 훌륭한 도량이었습니다.

 

위사카는 녹자모 강당을 완공한 뒤 부처님과

비구 승단에 도량을 기증하는 의식을 봉행하였습니다.

 

의식이 끝나고 그녀는 가족을

다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소원하던 바를 모두 다 이루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다.”

 

이렇게 말한 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게송을 읊으며 녹자모 강당 주위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러자, 어떤 비구들은 위사카 부인이

지금 노래를 부르며 돌고 있다고 부처님께 보고 올렸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사람이 변하여

노래를 부르면서 수도원 주위를 돌고 있다면서,

위사카 부인이 정신이 돈 것이나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오늘은 위사카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원을 다 성취한 날이니라.

그녀는 지금 그 성취감 때문에

매우 만족하여 훌륭한 게송을 읊으며
수도원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며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다.

위사카는 과거 여러 생을 통하여

언제나 널리 베푸는 시주자였고,
과거의 부처님 때부터 불법을

열성적으로 포교하는 사람이었느니라.

그녀는 언제나 착한 행동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으며,
전생으로부터 많은 선업을 쌓아 왔던 것이니라.

그것은 마치 화훼 전문가가

농장에서 꽃을 꺾어서
많은 꽃다발을 만드는 것과도 같이

아름다운 일이었도다.”

 
<경전을 독송하는 재가 불자>
 

4. 공양의 환희

 

 

수다원은 초기 불교 수행 경지 중 하나로서

불법승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귀의로

중생계로 떨어지지 않고 성스러운 성자의 흐름에 든 존재라는 뜻입니다.

 

위사카 부인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다원 과에 올랐으며,

외도를 믿고 있는 시아버지도 교화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하여 수다원과를 얻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승가를 위한 도량인

녹자모 강당을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었을 때

얼마나 환희로웠을까요?

 

그 환희로움이 얼마나 컸으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였을까요?

 

 위사카 부인이 부처님과 수행자를 위한

수행과 포교의 공간의 중요성을

얼마나 깊이 자각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위한 수행과 전법의 공간을

최선의 정성을 다해 보시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공경하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자체를

지극히 환희로워 하는 위사카 부처님의 마음이야말로

공양하는 자의 진실한 귀의심의 마음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36)  녹자모 강당을 보시한 위사카 부인 이야기>

https://youtu.be/BVy3HVeOVno?si=MK-xggTK5KrYFw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