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련사>
1. 백련사와 동백꽃
남도의 강진 백련사.
우리나라에서 봄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 도량입니다.
백련사 올라가는 길은 1,700그루의
운치있는 동백 나무가 숲이 있습니다.
남도의 겨울은 동백나무의 자르르
윤기 나는 잎들로 봄처럼 포근한 느낌입니다.
붉은 동백꽃이 피는 2월의 백련사 숲길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백련사 입구에
만경루와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백련사를 오르면 호수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강진만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습니다.
극락의 연못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평화롭고 안온합니다.
2. 백련 결사와 요세 스님
백련사는 작은 도량이지만,
정토행자인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도량입니다.
바로 고려 시대 때 염불 수행 운동인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이루어진 도량이기 때문입니다.
만덕산 자락의 백련사는 고려 시대에는
원래 ‘만덕사(萬德寺)’라는 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말 ‘원묘 국사 요세(1163~1245)’라는
천태종 스님이 만덕사에 들어왔습니다.
요세는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보조국사 지눌이
주도한 선(禪)을 닦는 '정혜결사'에 참여했지만,
‘삼생지법화사(三生持法華師)’이자 법화행자로
자신의 수행 정체성을 확고히 했던 분입니다.
‘삼생지법화사(三生持法華師)’란
지난 3생을 법화행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써
능히 법화경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3. 요세 스님의 정토 수행
백련사의 원묘국사 요세의 비석입니다.
요세는 하루 1번 법화경을 독송하고,
하루 12번 53불에게 예불과 참회를 하며,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며 극락왕생하여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기를 염원했다고 합니다.
53불 신앙은 이 법계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다불(多佛) 신앙에서 온 것으로
아미타 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전
법장 보살로 계실 때까지
53불의 과거불이 있으셨고,
과거불인 53부처님을 예경하고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는 것으로써
성불을 이룬다는 수행이자 신앙입니다.
아무튼 요세는 염불뿐 아니라
참회, 예불, 경전 독송을 통한
수행과 신앙을 함께 닦으며
극락왕생을 발원한 선지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세의 위대한 점은
스님들뿐 아니라
강진의 호족, 백성들까지 동참하여
훨씬 대중적인 수행 결사의 장을 펼쳤다는 점입니다.
즉, 함께 극락 왕생의 길을 닦는
수행공동체를 만들어
출가와 재가가 함께
수행하는 장을 만든 것입니다.
염불 결사 운동의
위대한 선지식의 향기가
가득한 도량이 바로 백련사입니다.
4. 원교 이광사의 현판
백련사에는 조선 후기 명필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만경루의 두 현판입니다.
소론 가문 출신이었던 이광사는 영조때 노론이
집권하며 귀양과 고난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금부도사가 이광사를 잡으러 오는 것을 보고
멸문지화가 닥쳤다고 생각한 이광사의 부인은 자결했습니다.
이광사는 눈물을 흘리며 그 고통과 한이
천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고통과 회한의 세월을 이광사는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자신의 서체를 완성하기 위해 정진하였습니다.
이광사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그 마음 세계가 존경스러운 문인입니다.
5. 백련사 대웅보전
이광사가 쓴 현판인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으로
아미타 부처님과 약사여래 부처님의
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800년 전 이곳에서
예불, 참회, 염불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했던
백련결사 정토행자들의
엄정한 기운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2월의 초봄에 동백꽃이
필 즈음 동백길을 걸으며
극락보전에 들어가면
붉은 동백꽃처럼
아미타 부처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뜨거운 신앙심을 느낄수 있습니다.
6. 백련사와 차(茶)
한편,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아
'다산(茶山)'이라고도 부릅니다.
다산 정약용이 그 산길을 돌아
백련사의 혜장, 초의 선사와 사귀며
법담을 마셨습니다.
만경루 앞 만경다실에서 다산의 차향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강진 백련사>
https://youtu.be/xN8cv9_UjhI?si=qAYdQx7rxumdn2w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