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곡부 태산 여행 후기(11) - 금성옥진 공연>

1. 금성옥진 공연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대학당 대극장에서
<금성옥진(金聲玉振)>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실내 공연장이었지만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최신 시설을 갖춘 현대식 극장으로,
공연을 보기 전부터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2017년 중국 서안 여행 때
양귀비가 목욕했던 화청궁에서
정예모 감독이 연출한 <장한가> 야외 공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양귀비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화청궁과 뒤편 여산 전체가 무대가 되었고,
산을 비추는 조명과 수많은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금성옥진>은 실내 공연인 만큼
<장한가>와 같은 거대한 스펙터클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와이어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역시 중국다운 화려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성옥진>은 단순히 공자의 일생만을
소개하는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공연은 우주의 혼돈과 천지의 생성으로 시작됩니다.
긴 중국 문명의 역사 속에서 학문과 예를 집대성한
공자의 위상을 하나의 대서사시처럼
풀어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금성옥진(金聲玉振)'이라는 말 자체도
요·순 시대부터 주공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중국 문명을 공자가 집대성하였음을 찬탄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공연 전체가 웅장하게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장한가>처럼 압도적인 규모는 아니었지만,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배우들의 세련된 연기와
무대 연출은 충분히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공자의 시대를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어린아이가 글을 배우고 예를 익히는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 간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습니다.
순간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연은 바로 이러한 공자의 배움의 정신을
대중들에게 쉽고 감동적으로 전달하려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는 유교에서 말하는 성년식인 관례(冠禮),
혼인을 의미하는 혼례(婚禮)가 이어졌고,
유학의 대표적인 교육 과정인 육예(六藝) 가운데
예(禮), 악(樂), 사(射) 등을 표현하는 장면도 등장했습니다.
공묘에서도 활쏘기를 의미하는 '사(射)'를 표현한 조형물을 보았는데,
공연 속에서도 활을 쏘며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활쏘기(궁도)가 공자 시대부터 이어져 온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오랜 수행 전통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활은 단순한 무예가 아니라 사람을 수양하는 하나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공연은 결국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난 인간이
배움과 예를 통해 군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아름답게 표현한 무대였습니다.

2. 공자 부흥
한편, 중국은 니산성경 조성 사업에 약 1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거대한 공자상과 대학당, 광장과 호수, 연수시설과 호텔은 물론이고,
이처럼 대규모 공연까지 제작하며 아낌없는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절에는 공자를 봉건 사상의 상징으로
철저히 부정했던 중국 공산당이
왜 지금은 이렇게 거대한 공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을까?'

제 생각에는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물질주의와 부정부패, 빈부격차, 도덕성 약화 같은
사회문제가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산주의 이념만으로는 사회를 하나로 묶기 어려워지면서,
질서와 조화, 공동체와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는
유교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공자는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진시황이나 모택동보다 공자가 세계인들에게
훨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간디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공자를 내세우려는 의도가 느껴졌습니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버렸다기보다,
중화 문명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공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공자의 본래 가르침은
단순히 개인의 예절과 수양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지도자는 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며,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자에게 더욱 엄격한 도덕성과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중국이 공자를 활용하고 있다고 해서
공자의 본래 사상과 현재의 정치체제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중국이 어디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공자를 국가 브랜드로 활용할지는
결국 시대의 흐름과 국가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3. 니산호월 드론쇼
낮에는 니산성경 곳곳에서
수학여행을 온 초등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6월 초순이 중국의 중요한 대학입시 기간이라
중·고등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였다면 훨씬 많은 학생들로
북적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중국은 어린 학생들에게
공자를 단순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중화문명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는 상징으로 적극 교육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레이저쇼와 드론쇼, 분수쇼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에서 모였는지 수많은 아이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니산호월(尼山皓月)'.
'니산을 비추는 밝은 달'이라는 뜻입니다.
공자를 찬탄하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화려한 야간 공연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분수가 솟아오르고 화려한 레이저쇼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밤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에게는 대학당 전시보다
이런 레이저쇼와 드론쇼가
훨씬 더 강렬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올 겨울 부산 광안리에서
드론쇼를 본 적이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 드론쇼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 광안리 드론쇼가
드론의 숫자나 연출,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한 단계 앞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국도 앞으로는 드론쇼 분야에서는
부산의 연출을 참고하면
더욱 멋진 공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드론으로 세계를 주유하는
공자의 모습이 밤하늘에 펼쳐졌습니다.
레이저와 드론, 음악이 어우러진 무대를 바라보며
현대 중국이 그리고 있는 공자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론쇼를 보고 내려오는 길.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공자상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공묘와 공부, 공림에서
2,5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속의 공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후와 밤에는 니산성경에서
현대 중국이 새롭게 해석한 공자를 만났습니다.
하루 동안 같은 공자이지만,
서로 다른 두 얼굴을 모두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묘한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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