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 (부처님의 일생40) >
1. 바이샬리에서의 마지막 안거
갠지스강을 건너 부처님께서는
밧지족의 수도인 바이샬리를 향하셨습니다.
바이샬리는 갠지스강의 교통 요충지에
자리잡아 상업이 번성했으며,
마가다국의 아자투삿투왕이 침략하려고 하자
부처님께서 ‘7가지 쇠망하지 않는 법’을
설법한 모델이 된 도시였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자주 방문하셨던 바이샬리는
인도 최초로 절대 왕정이 아닌
협의체적 공화제의 선진적인 정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도 민주 의회 개원식에도
매년 바이샬리의 성수(聖水)를 떠놓는 의식을 할 정도입니다.
브라만교로부터 자유로웠고,
계급 제도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았으며,
서로 다른 종교와 사상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자유로운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민주적 공화정을 실시했고,
학문과 상업이 융성했고,
사회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바이샬리를 자주 칭찬하셨습니다.
바이샬리는 불교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부처님께서 당신의 이모이신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비구니 승단의 출가를 허락하신 곳이 바이샬리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후
100년이 지나 계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10가지 논쟁"이 벌어져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유명한 경전으로
재가자 성불을 설하는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 거사도 바이샬리 출신으로 나옵니다.
이와 같이 불교 역사에 있어서도 진보적인
새로운 물줄기가 일어난 곳이 바로 바이샬리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의 벨루바 촌에서
안거(安居)를 보내셨습니다.
안거(安居)는 인도에서
비가 많이 오는 우기(雨期)에
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은 우기 3개월 동안에는
동굴이나 사원에서 수행에만 전념하였는데,
이를 우안거(雨安居)라고 합니다.
이 전통을 본받아 한국 불교도
음력 4월 15일에 시작하여
7월 15일에 마치는 하안거(夏安居)와
음력 10월 15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1월 15일에 마치는 동안거(冬安居)를 실천합니다.
부처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안거를
바이샬리에서 보내셨던 것입니다.
바이샬리에서 안거를 하는 도중에
부처님은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는 병에 걸리셨습니다.
부처님은 당신께서 지금 열반에 드심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며 마음을 챙기고
정진의 힘으로 고통을 누르며 병을 가라앉혔습니다.
이 때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크게 놀라고 슬퍼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병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 다가와 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승가에 아무 말씀도 없이
대열반에 들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바란단 말이냐?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무엇을 더 당부한단 말인가?
아난아.
이제 나는 늙어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2. 자등명 법등명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의 설법을 하셨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아 밝히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自歸依),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아라.
내가 설한 진리(法)를
등불로 삼아 밝히고(法燈明),
내가 설한 진리(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法歸依),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아난아. 누구든지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내가 설한 진리(法)를 등불로 삼고
내가 설한 진리(法)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공부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더욱 간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 게으름없이 정진하라
“참으로 이제 나는 당부하노라.
모든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
오래지 않아 여래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동요함이 없이
아난과 후학들에게 다른 사람과 다른 것,
심지어 부처님의 육신까지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깨달음과 불법의 진리에
의지하여 살아가라는 말씀을 간절히 하고 계십니다.
아울러, 모든 것이 소멸함을 알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의 진리(불법) 속에서
자신의 각성(자등명)을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3개월 후에
열반에 드실 것이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3개월 후에 열반에 드신다는 말을 듣고
아난 존자는 크게 슬퍼하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부처님의 뒤를 따르며
부처님께서 가시는 열반의 길을 지켜주셨습니다.
바이샬리 대림정사에는 이와 같은
아난 존자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아난 존자 스투파(탑)가 세워져 있으며,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은 부처님의
열반 행로인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를 떠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아름다운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구나.”
그리고, 고향 카필라성이 있는
북쪽을 행해 길을 떠나셨습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40) 자등명 법등명 가르침>
https://youtu.be/SFufP3NHOaA?si=TLhRfAcT_L02qv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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