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시자 아난 존자 - 부처님의 일생 41>
1. '환희' 라는 뜻의 아난다
오늘은 부처님과 마지막 열반의 여행길을
함께 걸으셨던 아난(阿難) 존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하여 십대 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립니다.
아난 존자는 세속적으로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부처님보다 30살 연하였습니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출가 후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
석가족의 카필라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난 존자의 출생 소식을 들은 큰 아버지 정반왕은
"오늘은 환희로운 날이구나.
이 아이의 이름은 아난다(Ananda)라고 하리라"라고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난 존자의 이름인
‘아난다(Ananda)’는
‘기쁨’, ‘환희’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후
고향인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을 때
석가족의 왕자들과 함께 출가했습니다.
2. 부처님의 비서 실장 아난 존자
어린 나이에 부처님의 제자가 된 아난 존자는
불교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첫째는 부처님의 시자(侍者)로서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까지 보필한 일입니다.
둘째는 여인의 출가를 부처님께 간청하여 받아 낸 일입니다.
셋째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경전의 결집(結集)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불교 교단이 성장함에 따라 부처님을
옆에서 보좌할 사람(시자)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초반에 여러 제자들이 부처님 시자를 맡았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개인적 수행을 위해 부처님 곁을 떠나는 시자도 있었고,
부처님의 뜻을 거스르는 시자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큰 제자분들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자
젊은 나이의 아난 존자가 적임자라고 추천했습니다.
처음에 제안을 받은 아난 존자는 주저했습니다.
부처님의 시자의 역할은 누군가맡아야할 중요한 임무지만,
시자를 맡게 될 때의 몇가지 문제점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난 존자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시자의 제안을 수락하였습니다.
첫째, 재가 신자들이 부처님께 보시한 의복을
자신에게 나누어 주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부처님께 바친 공양(음식)을 자신에게
나누어 주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비시(非時, 때가 아닐 때)에
부처님과 단둘이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재가신자가 부처님을 초대해서
특별한 음식과 좋은 옷을 공양 올릴 때
비서실장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자라면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할 수 있는데,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함부로 이용해서
교단의 구설수나 부처님께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려 깊은 생각으로 부처님의 시자가 된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정성껏 시봉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아난 존자의 시봉 덕분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제자들과 재가 신도들을 만나 지도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난 존자는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다 보니,
부처님 말씀을 빠짐없이 듣게 되었습니다.
한때 종기가 나서 의사가 칼을 대었을 때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환희심에 아난 존자는 그 아픔을 몰랐다고 합니다.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칭호가
단순히 아난 존자의 특별한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법문을 듣는 데서 진정한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3. 여성의 출가를 간청한 아난존자
한편, 다정다감한 성격의 아난 존자는
불성을 가진 인간이 남녀 간의 수행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신념 속에 여성의 출가를 부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비구니가
석가족의 여인들과 출가를 간청하기 위해 바이샬리로 왔을 때
여인들의 곤란을 모른채 할수 없었던
아난 존자는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인도 출가하여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한다면
성과(聖果:성스러운 수행의 과위)를 이룰 수 있습니까?"
"그렇다. 아난아. 여인도 법에 귀의하여
지성으로 수행하면 성과(聖果)를 얻을 수 있느니라."
이러한 아난 존자의 간청과 노력 끝에
부처님도 여인의 출가로 인한
교단 안팎의 문제점을 줄일 수 있는
단서 조항을 제시하고 마침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셨습니다.
4. 경전의 결집
마지막으로 아난 존자는 부처님 열반 후
경전의 결집을 주도하였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불교 교단의 혼란이 발생함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전하고 지켜내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갈래 분산되어 수행하던
수행승들 중 대표자들이 모여(結)
그들이 기억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아서(集)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려는 운동을
‘결집(結集)’이라고 합니다.
결집에 참가한 수행자들은
모두 해탈을 얻은 아라한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수행에 정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고 수다원과에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던 아난 존자는
반드시 결집 모임에 참여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후세에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아난 존자는 결집이 예정된 며칠 사이에 절벽 위에서
혼신의 정진력으로 수행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난 존자는 결집 회의에서
25년 동안 부처님을 모신 시자로서
자신이 들은 부처님 말씀을 외워 보인 뒤 결집에 참가한
500아라한의 지지 속에 경전(sutra)을 성립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오늘날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상용구처럼 따라 다니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라는 말은 바로
아난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그 말씀에 대한 증거인 셈입니다.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을 잘 시봉하고
환희심으로 설법을 듣고 기억했던 아난존자!
다정다감한 성품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여성의 출가를 간청했던 아난존자!
부처님 열반 후 경전의 결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신 아난 존자!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하며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공경심과
오늘날 우리들에게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신 아난존자는 현대의 우리들이
가장 고마워 해야 할 부처님의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41) 부처님 시자 아난존자>
https://youtu.be/BV33pYQjlBU?si=zXeVhRUPn1cIAp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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