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천은사>

1. 삼척과 두타산
삼척 천은사.
삼척은 시멘트 산지로 유명하지만,
죽서루와 같은 문화 유산이 있는
강원도 동해안의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천은사는 죽서루에서 내륙 쪽으로 들어와
해발 1400m 두타산(頭陀山) 자락에 있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욕망을 끊고
소욕지족하는 불교 수행이 ‘두타행’인데,
두타산 천은사는 ‘두타행을 닦는 산에 있는
하늘의 은혜를 받은 절’이라는 뜻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때 인도에서
온 두타행을 닦던 세 명의 두타 선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금련(金蓮), 흑련(黑蓮), 백련(白蓮)의
세 연꽃을 가지고 왔는데,
그 중에 백련을 심고 '백련대'라고 한 곳이
지금의 천은사 위치라고 합니다.

2. 천은사의 역사
통일 신라 말기에 강릉에서 태어나
9산선문 중 하나인 사굴산파를 만든 범일 국사가
백련대가 있던 이 곳에 극락전을 세우면서
가람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이 곳에 은거하면서 <제왕운기>를 짓고
10년 동안 대장경을 읽고 나서
'간경사(看經寺)'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 때는
서산 대사가 한 때 이 곳에 주석했는데,
절 뒤의 봉우리가 검다고 해서
'흑악사(黑岳寺)'라고 했다가
고종 때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穆祖)의 명복을 비는 왕실의 원당 사찰이 되어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의 '천은사(天恩寺)'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25동란 때 소실되었다가
새롭게 중창한 절로서
삼척 지방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도량이 바로 천은사입니다.
천은사가 있는 두타산 들어가는 길은
태백산맥의 높은 기운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3. 극락보전
천은사의 중심 전각은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입니다.
삼층 석탑과 함께 서 있는 극락보전입니다.
극락보전은 아미타 부처님을 본존으로
관세음 보살님과 지장 보살님을
협시 보살로 모시고 있습니다
. 조선 초기에 조성된 아미타 삼존불인데,
중후한 기운의 불보살님입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하고 계신
수인이 하품중생인입니다.
하품 중생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잘못과 악업을 저지른 중생을 말합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하품 중생들도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여 염불하며
아미타 부처님을 구하면
극락으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품중생인을 보면서 아미타 부처님의
깊은 자비와 원력을 생각하게 됩니다.
극락보전 오른쪽에는
약사전이 있습니다.
푸른 소나무와 하얀 학으로
문창살을 예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서방의 극락정토의 부처님이라면
약사 여래 부처님은 동방의 약사유리광 세계의 부처님입니다.
병고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여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부처님으로
아미타 부처님과 가장 친하신 부처님이십니다.
극락보전에서 계단을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칠성, 독성, 산신님을 모신 삼성각이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 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지고
삼성각에 힘겹게 올라가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옛날 할머니들게 수명을 연장해주고,
재난과 악귀로부터 수호해주는
칠성님, 독성님, 산신님의 존재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4. 동안사와 이승휴
천은사 바로 밑에는 고려말 이승휴가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지은 장소에
'동안사(動安司)‘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우리 민족의
역사적 자부심을 노래한 서사시로
시험에 나왔던 '제왕운기'입니다.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는 삼척 출신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벼슬길에 오르자 말자
몽고의 침략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고향인 삼척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7년 정도를 은거하다가
고려가 몽고에 항복한 후에 비로소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강직한 성품으로 권문세가의 부정을
탄핵하는 글로 파직과 복직을 거듭했고,
고려왕이 죽었는데 몽고에 인질로 가 있던 세자가
몽고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원나라에 직언을 해서
고려 복식으로 갈아입고
제사를 지내게 할 정도로 강직했다고 합니다.
이승휴는 문장이 뛰어나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부터
글을 잘 썼다고 합니다.
고려 충렬왕 때 벼슬을 그만두고
삼척으로 내려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제왕운기를 지었습니다.

5. 제왕운기
제왕운기를 쓴 목적은
왕이 중국과 우리나라 왕들의 위업을 알아서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잘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제왕운기는 중국 편과 우리 한국 편으로 나누어
제왕의 위업을 시로 노래했는데,
우리 역사는 단군을 시조로 삼고 삼국과 발해를
아우르는 왕들의 역사와 위업을 시로 노래했습니다.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은 것은
제왕운기가 처음이고,
우리 역사의 찬란함을 노래하여
민족의 자부심을 드높인 서사시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었다면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지요.
이승휴는 유학자이면서
불교에 심취해서 천은사 바로 옆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가져와 10년 동안 경전을 읽고
자신이 살던 집까지 희사하여 절 이름을 '간경사'라고 했습니다.
이승휴의 불교 이름이 '동안 거사'라서
이승휴가 머물던 장소에 동안사가 세워진 것입니다.
강원도 태백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도량이 있고,
이 장소에서 고려말 몽고 침략기에
이승휴가 민족의 자부심을 노래한
제왕운기를 짓고 불도를 닦았던 것입니다.
삼척에 가면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삼척 천은사>
https://youtu.be/6ruPkhqP6Ug?si=9H7D9rWBJqS3k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