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보문사(普門寺)>
1. 보문사와 의상대사
예천 보문사.
예천, 안동을 둘러싸고 있는
해발 880m의 학가산이 있습니다.
‘학이 앉았다 날아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학가산(鶴駕山)'이라고 합니다.
학가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보문사는
의상 대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배워 와서
화엄10찰을 세우고 3천 명의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영주, 안동, 예천의 경북 북부에는
창건주로 의상 대사를 모시고,
화엄 불교와 정토 신앙이 융합되어 있는 도량이 많습니다.
2. 극락보전
영주 부석사가 화엄 10찰 중의 하나이고,
안동 봉정사가 의상의 제자 능인 화상이 세운 절이며,
예천 보문사 또한 의상 대사를 창건주로 모시고 있습니다.
보문사 극락보전입니다.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전각입니다.
현재의 극락전은 1700년대 후반기에 중수했습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 부처님, 대세지 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의 세 분의 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작은 체구지만,
중생들의 마음 세계를 꿰뚫어 보시는 듯
예리하고 위엄 있는 힘이 느껴지는 부처님입니다.
무늬없는 보관을 쓰신 두 분의 보살님은
그 상호가 아미타 부처님과 많이 닮아
마치 쌍둥이 아들처럼 느껴집니다.
아미타 삼존불께 삼배를 올리고
염불 기도를 했습니다.
극락보전 좌측에는 영가단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 두분이 협시하고 있는 사이로
남녀노소 여러 영가들의 사진이 걸려져 있었습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의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의 사진까지 있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태어난 자는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죽음입니다.
수행자는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의 문제를
잘 명상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제가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에 대한 믿음으로
염불하는 정토 신앙자의 길을 가는 것도
결국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제가 내린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의 여러분들의 지장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인도로
극락으로 가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3. 보문시현 관세음보살님
극락보전에는 관세음보살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53선지식 중의 한 분으로도 등장합니다.
보타락가산을 찾아온 선재 동자에게
자비로운 대비행법(大悲行法)의 가르침을 설하는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입니다.
‘보문사(普門寺)'라는 절 이름도
어느 때 어느 곳이라도 중생들을 위하여
대비의 행법을 나타내시는 '보문시현(普門示現)'의
관세음보살님을 상징하는 '보문(普門)'에서 나왔습니다.
4. 염불당과 적묵당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염불당(念佛堂),
오른쪽에는 적묵당(寂黙堂)이 있습니다.
보통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이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예배터이자 염불 수행터의 역할을 하지만,
염불당은 염불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세운 염불 전용 수행 공간입니다.
적묵당은 고요하게 참선에 집중하는 곳으로
초심자들이 참선하는 선방을 '적묵당'이라고 한다.
보문사는 좌 염불당, 우 적묵당으로
염불과 참선의 두 전용 수행 공간이
함께 있는 독특한 도량입니다.
5. 조사당
보문사에는 조사당(祖師堂)이 있습니다.
조사당에는 세 분의 조사 스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중앙에는 개산조인 의상 대사,
좌측에는 중창조인 보조국사 지눌,
우측에는 최근 보문사에서 입적한
담연당 도명 선사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보문사는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3년간 주석했고,
보조 국사 지눌이 중창주로서 여러 전각을 새로 세웠습니다.
보문사는 경북 내륙 골짜기에 위치하여
왜구를 비롯한 외적의 침략 위험성이 작은 곳이었습니다.
6.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깨달음
그래서, 고려 시대 때 사고(史庫)가 있었고
대장경을 열람하고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 때는 선종과 교종의 다툼이 심했는데,
보조 국사 지눌은 선종과 교종의 화합을 주장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했습니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선정과 지혜를 다같이 공부하여 만행을 닦아야 한다.
어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어리석은 선객과 글만을 찾아
헤매는 미친 혜자(慧者)에 비유하리오."
보조 국사 지눌은 서로 다투는 선종과 교종을 각각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어리석은 선객'과
'글만을 찾아 헤매는 미친 혜자'에 비유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 나가는 수행을 겸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예천 보문사에서 정혜쌍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예천 보문사에서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이통현 장자의 <화엄론>에 나오는
"만약 마음이 열리고 맑아지면
한 올의 머리털과 온 우주가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여(眞如)의 지혜지만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할 뿐이다."
이 대목에서 보조국사 지눌은 큰 깨달음을 얻어 감격에 겨워서
책을 머리에 이고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영어로 'enlightment' 라고 합니다.
어둠에서 불이 켜지듯 ‘밝아진다’는 뜻인데,
깨달음은 이처럼 밝은 각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는 밝은 각성(깨달음)에 대한
열망으로 깨달음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염불하는 우리들도 정토 교학에 대한 공부를 통해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도
밝은 각성의 깨달음을 염원하는 불교 수행자이기 때문입니다.
보조 국사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좋은 공부 도량에서 염불하면
밝은 각성의 인연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삼층석탑
응진전 앞에는 3층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보문사의 전각은 다 불타서
보조국사 지눌의 시대의 전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석탑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저 단단한 석탑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석탑처럼 단단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정토 행자를 염원할 수 있는 도량이
예천 보문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