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고행 (부처님의 일생5)>
1. 부처님의 고행
이번 시간에는 부처님의
‘6년 고행(苦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후
인도에서 해탈을 위한
수행의 두 트랜드인
‘고행’과 ‘선정(명상)’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행’을 통해
천상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하셨고,
선정(명상)을 통해 특별한
정신 집중의 경지에 오르셨지만
원하시던 해탈의 경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해탈에
이르는 길을 찾으셨는데,
고행(苦行)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시고자 노력하셨습니다.
보통 ‘6년 고행’이라고 부를 정도로
부처님은 고행을 통한 해탈에
공을 들이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고행을
대충 넘어 가는 경향이 있는데,
부처님이 어떤 이유로
고행을 하셨는지를 잘 이해해야
쾌락과 고행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고행과 쾌락
고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불교에서도
3000배나 장좌불와,
또는 티벳의 오체투지 순례와
같은 고행적 수행 방편이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고행의 반대는 쾌락입니다.
쾌락은 자신의 감각적 욕망이든,
좋아하는 정신적 가치든,
욕망의 대상을 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망의 대상에
지나치게 탐착하게 되면
중독이 됩니다.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얻어도 항상하지 못하는 괴로움,
끝없는 갈애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괴로움이 따릅니다.
고행은 참는 것입니다.
쾌락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최소화하여
참는 것을 말합니다.
고행은 우리가 윤회하는 것은
욕망에 중독되어
쾌락을 추구하는데 있으므로
고행을 통해 욕망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욕망에 중독되면
얼마나 벗어나기 힘든지를
우리는 게임에 빠진
요즘 아이들을 통해 봅니다.
게임에서 벗어나려면 힘들어도
게임을 하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수행에는 이처럼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이겨내는 고행적 측면이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3. 고행의 철학적 배경
그런데, 이러한 고행의
철학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왜 부처님은 고행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셨을까요?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는 ‘자이나교’라는
유명한 고행자 그룹이 있었습니다.
고행자 그룹은 ‘물질’과 ‘영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바(jiva)’라는
참된 영혼이 있는데,
물질적 욕망을 탐하는
‘업(業)’이 참된 영혼에 접착제처럼
끈끈하게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윤회하는 것을
업 때문이라고 보았고,
업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해탈은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업을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고행을 통한 열로
업을 태워버리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부처님은 이 가설을
일단 받아들이셔서
고행 수행을 하십니다.
즉, 앞의 박가바 선인처럼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고행을 하신 것이 아니라,
고행을 통해 업을 태워버려
‘지바’든 무엇이든
참된 자아가 드러나게 함으로서
해탈을 얻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4. 부처님의 고행과 고행상
고행에는 여러 고행법이 있지만,
가장 극단적인 고행법은
먹지 않는 단식(斷食)과
숨을 쉬지 않는 지식(止息)입니다.
둘 다 부처님께서
주로 행하셨던 수행법입니다.
부처님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드시고,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호흡만 하면서
업이 소멸되어
해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고행을 하셨는가 하면
6년간 고행하는 동안 늘
죽음이 곁에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나 이전에도 지금도,
나 이후에도 이보다 더한
고행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실 정도로 철저한 고행을 하셔서
죽음 직전까지 이르셨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처절한 <고행상>이
부처님의 진지한 고행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처절한 고행에 대해
경전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갗은 아직 익지 않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았으며,
수족은 갈대와 같았고,
드러난 갈비뼈는 부서진 헌집의 서까래와 같았으며,
척추는 대나무 마디와 같았다.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손을 들어 목을 만지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졌다.
해골이 드러나고 눈이 깊이 꺼졌으며
일어서려면 머리를 땅에 박고 쓰러졌다...
그러나, 오직 눈만은 깊은 우물 속의 별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5. 무서운 신념과 정진력
부처님의 몸은
고행으로 쇠약해졌지만,
해탈을 향한 무서운 신념에서
나오는 정진의 열정만이
눈을 통해 별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처절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업이 씻어졌다는
현상은 못 느끼셨고,
참된 자아가 드러나는
해탈을 얻지 못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자이나 교도는
몇생을 두고 고행을 통해
업을 태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까지
업을 태워야 하는가?’
그리고, ‘업을 태우면
참된 자아가 드러나고,
그 참된 자아가 드러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참된 자아가
과연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부처님은 가지시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행을 포기하고
새로운 수행의 길로 드시게 됩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떤 새로운 수행의 길을
가시게 될까요?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일생(5) 6년 고행>
https://youtu.be/73H8PtyNtik?si=Gr2BCR5f09L8dB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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