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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출가동기 (부처님의 일생3)

by 아미타온 2023. 8. 2.

<출가 동기 (부처님의 일생3)>

 

지난 시간에 부처님의 출가 동기인

‘사문유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붓다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

1. 노병사의 문제

 

저는 대학 시절

부처님 생애를 처음 읽었을 때

'사문유관'이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의 결단을 하고,

힘든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시고,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가르침을 펼치는 모습은 감동되었지만,

왜 ‘노병사’의 문제 때문에 고뇌하시는지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행복한 삶이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잘 사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 아닌가?

 

이러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생애를 공부하고,

나고 죽는 생사를 되풀이한다는

불교의 윤회관을 받아들이면서,

차츰 노병사의 문제로 고뇌하는

부처님의 생각에 관심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든지 간에 ‘노병사’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괴로움의 문제는

피할 수 없습니다.

 

생사의 우물 속에 살아가면서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고

오욕락의 꿀맛에 사로잡힌 사람이

바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생사의 괴로움의 실상을 자각하여

죽음을 벗어나고자 헛된 욕망을 버리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니

부처님의 ‘사문유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브라만 사제들>

2. 부처님의 문제 의식

 

아무튼 왕자로서의 삶을 버리고

출가를 선택하신

부처님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하면 노병사를 되풀이하는

윤회고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처님 당시에도 브라만교를 비롯한

종교와 사상가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이들 종교와 사상의

가르침을 살펴보시며

노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탐색하셨습니다.

 

그러나, 브라만교의

전통적인 제사의식이나

가르침을 따르면서 사는

왕자나 왕의 삶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출가 수행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깨달음을 얻은 후 어떻게 전할까?

 

깨달음을 전하는 일은 당연히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곧바로 전법의 삶을 택하신 것을 볼 때,

전법이 출가동기의 하나였음이 분명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문제 해결에만

연연하신 것이 아니라,

생노병사를 되풀이하는 ‘윤회’라는

공통의 괴로움을 겪는 존재들에게

그 해결책을 전하겠다는 의지가

처음부터 세워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 생노병사의 윤회고를 해결하기 위한

부처님의 선택은

출가 수행자의 삶으로 시작됩니다.

 

인류에게는 ‘위대한 가출’이기도 한

이 역사적인 사건은

부처님 개인에게는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은 많았고

부처님께서 그들의

논리와 수행 체계를 따라했으나

결과는 매번 틀렸다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지 못했기에

홀로 그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셨지요.

 

전인미답의 길이었습니다.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그 길을 간다는 것은

적당한 지점에서 안착하거나 타협하고 싶은

유혹과 좌절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유혹에 굴복하시지도

타협하시지도 않으시고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치열한 여정을 보내실 수밖에 없으셨는데,

이것은 또 당시 인도의 시대 상황과

수행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갠지스강에서 강가 여신에게 제사지내는 모습>

3. 브라만교의 가르침

 

먼저 부처님 당시의 주류 종교인

브라만교의 가르침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브라만교는 신을 찬양하는 '베다'라는

경전의 암송과 제사 의식이 핵심입니다.

 

‘베다’는 이 세상을 창조한 ‘브라흐마’라는

신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신들에 대한

지식과 찬양의 경전입니다.

 

브라만교에 있어

신(브라흐마)은 창조주이지만

재미있게도 비활동적인 측면을 갖습니다.

 

창조는 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자유의지와

자유경쟁을 주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는 했는데,

카스트’라는 차별적인 창조 행위를 했기에,

창조 부위에 따라 인간의 삶은 출발선부터 차별이 이루어집니다.

 

‘브라흐마’의 입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브라만 계급은

성직자가 되어 군림하는 것이고,

‘브라흐마’의 발에서 창조된

수드라 계급은 노예가 되어

윗계급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거지요.

 

결국, 인간의 행불행이 출발부터

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겁니다.

 

왜 브라흐만 신의 의지에 따라

왜 그 따위로 창조 행위를 했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는 각자의 필요와 역할이 있고,

그 역할과 필요대로 하는 것이

진리에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얼마나 세뇌를 잘해놨는지,

21세기의 인도사회는 아직까지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는 브라흐마의 발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현생은 어쩔 수 없이

봉사하는 의무를 다하고,

그 업으로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수드라 계급의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아무튼 브라흐마는

이렇게 창조부위를 달리해놓고는

그 다음부터는 일절 신경을 끊습니다.

 

이번에도 무조건 끊은 것은 아닙니다.

 

하위 신들을 시켜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답니다.

 

그래서, ‘베다’라는 경전에 적혀있는

여러 기도문을 외우고,

또 복잡한 제사 의식을 행하면

수많은 신들이 이렇게 저렇게

인간을 돕는다고 합니다.

 

베다의 가르침은

결국 신의 의지에 의해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면 모두가

부처님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봅니다.

 

신체 부위에 따른 창조행위로 인한

인간 계급의 차별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다면 열성적으로

신에게 해탈을 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부처님은 이 길은 아니라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출가하신 후

브라만교로 가지 않으시고

다른 가르침을 펼치는

사상가(수행자)들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면 ‘노병사’의 윤회고를 벗어나기 위한

다른 사상가(수행자)들의 가르침을

부처님은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3) 출가 동기>

https://youtu.be/TkLEo90KiS0?si=ZJceuG4oHddlA77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