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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생애

새로운 수행의 길(부처님의 일생6)

by 아미타온 2023. 8. 5.

<새로운 수행의 길>

 

<붓다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는 수행자>

1. 고행의 포기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구하는

해탈의 길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몸을 괴롭히는 고행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은 결코 육체적 욕망에 의하여

고행을 포기할 분은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육신이 버텨낼 수 있는 

최고의 고행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고통이

뼈와 살을 파고들수록

참된 나의 실체가 드러나는

시원한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고통에 빠져듬을 직시하셨습니다.

 

부처님은 6년 고행을 점검하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은

육체의 극복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에 대한 집착을 더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붓다가야 마하보디대탑>

 2. 2가지 잘못된 극단의 길

 

아울러 출가 이후 걸어온 수행의 길을

관조하며 진지하게 돌이켜 보았습니다.

 

출가전의 궁중 생활은 안락하고

쾌락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민의 날’과 ‘사문유관’을 통해

노병사의 고(苦)의 실상을 발견하고

고뇌에 빠졌으며 윤회를 벗어나는

길을 찾아 출가의 길을 나섰습니다.

 

출가 수행자가 된 후 제사장 계급인

브라만 사제들의 신에 대한 제사의 모습,

수행자의 권위를 얻고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고행하는 모습,

우주의 궁극의 실체인 아트만과 합일하기 위해

깊은 선정을 수행했던 모습,

육체를 극복하고 완전한 정신과 하나 되는 해탈을 위해

진지하게 고행했던 모습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원하는 해탈을 위해

어떤 길을 새롭게 걸어갈지에 대해 모색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세상에 수행자가 걸어야 할
2가지 잘못된 극단의 길이 있다.

하나는 욕망이 이끄는대로

애욕의 기쁨에 빠져
욕망과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누리는 것이며,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

무익한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육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하여
고행에 빠지는 것이다.

지나친 고행은 육체의 극복이 아니라
육체에 대한 집착을 더해
심신이 모두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이는 수단과 목적을 전도한

출가자가 하는 짓이며
출가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에

위반되는 것이다.

이 2가지 길은 스스로

이익을 얻지 못하고
남에게도 이로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의 길을 버리고
새로운 중도의 길을 찾아야겠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포기하고 목욕하신 네란자라강>

3.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

 

부처님은 극도의 고행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비틀거리면서 고행림 근방의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였습니다.

 

목욕을 한 후 몸이 상쾌해짐을 느꼈습니다.

 

몸은 상쾌했지만,

오랜 기간 단식으로

힘은 없고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 우루벨라 마을 촌장의 딸인 

"수자타"라는 여인이

부처님께 우유죽을 공양했습니다.

 

우유죽을 공양받은 부처님은 비로소

몸에 생기가 돌고 체력이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부처님은 당신이 이 때 받은

우유죽 공양이 최상의 공양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체력을 회복한 부처님은 어린 시절

<농민의 날>에 명상에 들었던 장면을

떠올리셨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며 고통을 헤매는

가엾은 존재들에 대한 깊은 연민심 속에서

생사의 문제에 깊은 의문을 품고 명상하며

그 이유를 사유하던 시절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부처님의 사유를 형상화한 반가 사유상>

4. 연기적 사유를 통한 명상

 

부처님은 <농민의 날>에

“왜 모든 존재는 죽고 죽이며

고통에 빠지는가?”라는 의문 속에

진지하게 사유하며 명상하셨던 것처럼

“왜 모든 존재는 노병사의 윤회의 고통을 겪는가?

어떻게 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연기적인 사유를 통한 명상으로

수행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고행하셨던 부처님이 목욕을 하고

우유죽을 드시는 모습을 본 고행자들은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했다고 비난하며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들을 말리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명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체력과 좋은 명상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체력을 충분히 회복하신 후

명상하기 좋은 곳을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붓다가야 근방의

어느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다음과 같이 결심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나무 아래 좌선하는 수행자>

5. 깨달음을 향한 금강심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의 금강과 같은

굳은 결심에 마왕은 크게 놀라

부처님의 깨달음의 열정을 방해하기 위해

예쁜 딸과 군대를 보내 위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금강 같은 깨달음의 열정에

마왕의 딸은 할머니로 변하고

군대가 던진 화살은 연꽃이 되어 떨어졌다고 합니다.

 

과연 부처님은 어떤 사유를 통한

명상의 길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성취하셨을까요?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부처님 생애(6) 새로운 수행의 길>

https://youtu.be/6Jf3dwTYJkc?si=EUwcuQwfkv942Ptb